응암동성당 게시판

부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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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5-20 ㅣ No.2636

부활 제5주일(나해. 2003. 5. 18)

                                             제1독서 : 사도 9, 26 ~ 31

                                             제2독서 : 1요한 3, 18 ~ 24

                                             복   음 : 요한 15, 1 ~ 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은 행복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까요?  사람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 합니다.  더욱이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주는 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마 세상이 모두 아름다울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사고 싶은 사람은 그 사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제물이 행복하게 해줄 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또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능력과 권력, 명예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행복지수가 제일 높은 나라가 어딘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방글라데시’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작은 나라이며, 세상의 어떤 나라보다 가난합니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260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위스(GNP $44,350), 노르웨이(GNP $34,510), 덴마크(GNP $32,100) 등 최첨단 복지 국가라고 하는 나라들은 행복수지가 최하위권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서로 위하고 아끼는 마음과 참고 절제하는 자세가 없을 때 가슴은 공허하고 불만과 불평 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십니다.  바싹 말라 있던 나무 가지들이, 봄이 되어 물이 오르고 유연해집니다.  그러나 나무줄기에 붙어 있지 않은 나무 가지들은 봄이 되어도 그냥 그대로 바싹 말라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어야 새싹도 나고 꽃도 피우고 열매도 열리게 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해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과의 일치를 강조하십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은 우리를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행복합니다.  인간과 행복이 불가분의 관계이듯이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고자 하는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알고 행복합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한 가지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생긴 가지, 못난 가지, 열매를 잘 맺는 가지, 그렇지 못한 가지 등 여러 가지가 한 나무에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울(바오로 사도)은 자신이 예루살렘 신자 공동체에 끼어 보려고 노력했으며,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전도하였고, 유다인들이 죽이려하자 교우들의 도움으로 다르소로 피신하였습니다.  그 후에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얻게 된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이의 모습이며 열매입니다.  요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라고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 가까이 머물러 주는 것입니다.  옆에 있어 주면서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그 사람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게 간절한 사랑으로 일치하기를 워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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