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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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6-12 ㅣ No.5068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22/07/01

 

근묵자흑(近墨者黑)과 근주자적(近住者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쁜 친구를 사귀거나 나쁜 환경에서 생활하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좋은 친구를 사귀거나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면 좋은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라는 세리를 발견하시고는 제자로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마태 9,9) 그래서 마태오는 주님을 따라나섭니다. 제자를 새로 받아들인 축하의 파티라도 하는 듯이, 그 자리에 새로 부른 세리와 그 친구들 그리고 그 당시 죄인으로 취급되는 이들도 와서 함께 자리를 하고 식사를 합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세리가 여러 가지 사정상 제때 세금을 못 내는 이들에게 미리 세금을 대납해주고, 추후에 대납해준 납세자에게 고율의 이자를 받음으로써, 부정한 수익을 취한다는 이유로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바라본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시시비비를 겁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11)

 

이 바리사이들의 시비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병든 이들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응수 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12-13)

 

세상을 살면서 안 좋다고 여기는 것은 피하고,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좋고 나쁜 사람을 선택하여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정작 좋은 것만 찾고,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 조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찾고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좋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여, 경멸하거나 낙인을 찍고 무시하고 저주하며 멀리하려고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좋지 않은 것을 좋은 것으로 삼아줄 수는 없지만, 좋지 않은 상황과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도 인정해 주고 이해하며 존중해 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꺼이 좋은 상황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도 우리의 소명이라고 이르시는 목소리를 따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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