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님은 떠나시고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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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01-05 ㅣ No.3276

지난 12월 31일 밤 11시55분. 캐나다 토론토에 계시는 고마태오 신부님께 국제전화를 했습니다. TV를 크게 켜놓고, 5분후 2005년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려드리면서 외로우신 75세의 노신부님과 함께 2005년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서...

그러나 토론토 스카보로 양노원 402호실 전화는 끝내 받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튼날 1월1일 새벽에 캐나다에서 온 전화는 그방 주인 고마태오 신부님이 그날 아침(한국시간 31일밤 9시 40분)에 심장마비로 주님 품으로 가셨다는 부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신 분에게 전화를 드린 셈이었습니다.

 

국토의 분단선, 38선에 위치한 마을에 있는 독실한 신자 집에 태어나서 6.25전쟁때 해병대 상사가 되기까지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한라산 공비토벌, 해병대戰史에 기록된 도솔산전투, 사천강전투에서 아군과 적군의 시체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하느님이 계시다면 동족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이 자리에 오셔서 말씀 좀 하세요. 나는 지금껒 주님을 믿어왔지만 이젠 아닙니다. 당신은 원래부터 없으셨습니다"하며 하느님을 외면했던 그 사나이가 휴전 후에 제대를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참으로 주님이 하시는 일은 위대하고도 오묘한 일이지요.

국민학교 졸업이 정규학력의 전부인 그가 신학교에 간 것도 그렇고, 그 실력으로 어려운 라틴어를 익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佛語라고는 읽지도 못하는 그가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에 유학. 낭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제서품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게 없는가 봅니다.

첫 부임지가  캐나다 몬트리얼 소재 프랑스성당 보좌신부, 때마침 독일광부 출신, 간호원 출신, 미싱공 등 한국인들이 직업이민으로 캐나다로 몰려오고.... 곧 이민 붐이 일어 한국인 신자들이 모여들자 韓國語미사를 집례하던 것이 단초가 되어 오늘날 교우 3천명의 몬트리얼 한인성당을, 교우 7천명의 토론토 한인성당을 설립 또는 발전시키며 미국 산호세 한인성당등 주로 해외교포사목에 40여년을 헌신하신 분이시죠.

 

한때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부름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셔서 북한선교를 위해 애쓰셔서 잠시 인연을 맺기도 하셨지만 나중엔 결국 버림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캐나다로 에트랑제처럼 떠돌아 다니시다가 98년에 토론토 성 김안드레아 본당 주임에서 은퇴하시어 그후부터 양노원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신 분이십니다.

고마태오 신부님은 앞에서 열거한대로 노력형이시어서 불어로 "모든 길은 신에게로"라는 소설(6.25때 신을 부정했던 사나이가 다시 하느님을 찾아 신학생이 되는 과정을 그린 自傳소설; 안응렬 교수 번역)을 내서 히트를 치자 "사랑의 지도" "예수없는 십자가" "이 세상의 이방인"등 자전적 소설에서부터 "잔느 수녀님께""조국과 민족은 하나인데" "교회와 조국 사이에서" 등등 신앙서적에 이르기까지 20권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신부님이시기도 하답니다.

 

저는 작년 추석연휴에 우리본당 신부님이셨던 이기정 신부님의 소개로 그분을 처음 뵈었습니다. "당뇨합병증으로 눈도 잘 안보이시고 이젠 글씨도 제대로 못쓰시는 어른이 굳이 책을 쓰시겠다 하니 권형제가 좀 해 드렸으면 좋겠다" 하시면서 제게 부탁하셨지만 저는 안됩니다 했습니다. 제가 메인 몸이라 바쁘기도 했고 솔직히 얘기해서 일반인 책 대필해주면 최하 2천에서 3천은 받는데 신부님들 한테 돈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헌데 노신부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하시는데...그것도 3일에 한번씩 꼭두 새벽에 전화를 걸어 오시는데.....좀 그렇더라구요.  

집사람한테 "어젯밤에 집에 안 들왔다 그래라"고 거짓말을 시켜서 몇차례 모면 했지만  집사람이 "그분은 50년을 주님께 봉헌했는데 당신은 겨우 5개월이면 끝난다는 책 하나 주님한테 봉헌 못하면서 천주교신자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는데 못한다고 대답했다가는 교회는 커녕 집에서 밥도 못 억어먹을 것 같더라구요.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지 40일 밖에 안되기에 "캐나다까지 비행기타고 시차적응할라면 내몸이 안 따라줘서 못간다" 하니까 "주님이 도구로 쓰실 때는 건강도 함께 축복해 주신다"하면서 대 드는데 이건 진짜로 안 갔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더라구요.

용기를 내서 토론토까지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아! 글쎄 노신부님이 휠체어를 타고 공항대합실에 나오셨더라구요!! 얼마나 죄스럽던지.... 남이사 보든 말든 대합실 그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대리석 바닥에 무릎 팍 꿇고

"신부님 고백성사 주십시요"하고 큰소리로 성호를 긋고 "성사본 지 약.....제가 너무 계산적인....(생략)..."하며 내 입에서 한달음에 따발총처럼 나가니까 오히려 고신부님이 놀라시더라구요. 어쨌든 관중들이 보는데서 고백성사를 보며 눈물을 짰다는 것 아닙니까. 결국 그렇게해서 용서를 빌고, 사함 받고..........

이튼날부터 10여일 거의 함께 생활하며 고신부님 육성을 녹음해 와서 그분께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다"고 소원하셨던 그 책을 지금 쓰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그분께서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으로 가신 것입니다.

참으로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저는 어제 저녁미사에 고마태오 신부님을 봉헌해 드렸고, 어제 밤 1시, 그곳 시간 오전11시에, 5일장으로 토론토의 성 김안드레아 본당에서 몬트리얼 교구장 암브로직 추기경님과 20분의 사제님들의 공동 집전으로 고신부님 장례미사가 있었답니다.

멀리 뉴욕, LA, 산호세에서까지 교포신자들이 찾아오고 주정부 지사, 개신교 목사님들까지 오셔서 주일 敎衆미사보다 규모가 큰 장례미사였다고 보도됐군요.

"권 선생. 내년 부활절에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도록 어서 써 줘" 하시던 음성이 귀에 쟁쟁한데 그 말씀이 제게 남긴 유언이셨으니 안 쓸 수도 없는 일아닙니까?

 

그분은 책이 잘 팔려서 저작권인 인세 수입이 상당했으나 여주 라파엘의 집 등 맹인선교회에 저작권을 몽땅 기부하시고 정작 본인은 캐나다 교우들이 '고마태오 신부 후원회'를 만들어 양노원비용, 용돈까지도 얻어 쓰실 정도로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책 2백권, 캐나다 돈 270불, 한국돈 3만원(그건 제가 드린 것인데...한국돈 보신 지 하도 오래된다 하시기에 빠닥빠닥한 걸 제가 드렸거든요) 뿐, TV도 냉장고도 양노원 것이고.....떠나실 때 가벼워서 좋으셨을 꺼에요. 아내와 자식 들이 없으니 미련 둘 것도 없으시고....그분 형제 누이들은 모두 이북에 사시다가 돌아 가시고 캐나다에 한 분 오셨다가 먼저 저세상으로 가셨다더군요.

신자들이 안 찾아주면 1주일 동안 모국어인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 외국인 양노원에서 쓸쓸히 노년을 보내시다가 감기로 입원하셔서 거의 퇴원하실 무렵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눈을 감으셨다니 그 고독한 양노원에 다시 들어가는 것 보다는 하느님 품이 좋으셨나 보지요 뭐. 천국에 가셔서 편히 쉬시리라 생각하면서 위로 삼고 살아야죠.

 

끝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사랑하는 답십리교우 여러분. 혹 제가 그분 일을 하다가 꼬이거나, 그분 생각이 나서 본당에 미사를 봉헌 하거든 함께 기도해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사제님들 한테, 때에 따라서 맘에 안 들더라도 잘 해 드립시다. 샬롬,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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