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사순1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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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yk1004] 쪽지 캡슐

1999-02-27 ㅣ No.133

1999년 2월 21일 사순 제1주일 강론

 

제1독서: 창세기 2, 7 - 9; 3, 1 - 7.

제2독서: 로마 5, 12 - 19.

복음: 마태오 4, 1 - 11.

 

   "사람은 홁에서 났으니 홁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교형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회개'의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 또는 머리에 재를 얹어 주면서 사제가 신자들에게 해 주는 이 말씀은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원죄를 지은 인간에게 앞으로의 벌을 내리시면서 마지막으로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흙이란 것, 그리고 재의 수요일에 우리 머리 위에 얹었던 '재'라는 것, 그것은 쓰임새가 많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흙이란 것은 뭇사람의 발에 밟히는 것이고, 재라는 것은 다 태워서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보잘 것 없다는 의미로, 쓸모가 없다는 것의 의미로 흙이나 재를 예로 드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존재의 예로는 '갈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빠스칼은 그의 저서 '빵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 우주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완정 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 물 한 방울, 가스 한 모금도 인간을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전 우주보다도 위대하다. 인간은 우주의 막강한 능력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우주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도 연약하다는 점에서는 갈대와 같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생각한다'는 것은 연약한 인간을 전 우주보다도 위대하게 한다."

   빠스칼은 생각한다는 점에 인간의 위대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 만드셨지만,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고 또 하느님의 숨결로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빠스칼 식의 논리대로 한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숨결 때문에, 하느님의 모습 때문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원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뱀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에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욕심 때문에 인간은 자기 주제를 잊어 버리고 하느님과 맞서려고 했고 그것 때문에 인간 안에서 하느님를 닮은 모습은 파괴되고 결국 인간에게 남게 된 것은 진흙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진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흙도 대지의 일부라는 자신의 위치를 지킬 때에는 커다란 쓰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찌꺼기를 받아들이고 그 찌꺼기를 생명의 자양분으로 바꾸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흙이 대지의 일부라는 자신의 본연의 위치를 지키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악마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1차적인 욕구를 대표하는 식욕, 그래서 악마는 돌로 빵을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가지고자 하는 욕구인 소유욕을 대표하는 권력욕, 그래서 악마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대표하는 명예욕, 그래서 악마는 높은 데서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 이러한 욕구들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칠 때에는 사람을 망치는 것들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인간존재가 받는 유혹 전체를 대표합니다.

   이 유혹들을 이겨내는 예수님은 회개하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죄 말고는 인간과 같았다.'라고 오늘 제2독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가 죄의 반성과 통회에만 머무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회개할 필요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흙에서 나온 인간이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아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는 것도 회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 넣으신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진흙으로 빚어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사랑을 느끼고 그것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회개에 동참하신 예수님은 유혹을 받음으로써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 주심과 동시에 유혹을 이겨냄으로 해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 하느님의 위대성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육체적인 눈은 바깥 세상만 볼 수 있지만 마음의 눈은 자신의 내면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진흙으로 빚어진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겸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의 반성에만 회개의 의미를 둔다면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자신의 본래적인 모습을 잊지 않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계속성의 성격을 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사순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회개는 이런 지속적인 '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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