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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복음을전하기위해서는무슨일이라도하고있습니다(1고린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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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영 [oteresa] 쪽지 캡슐

2000-02-04 ㅣ No.979

(나해) 연중 제 5 주일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1고린 9,23)"  

 

복음.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예수님의 여정을 되돌아봅니다. 많은 고통, 견딜 수 없는 외로움, 끝이 없는 버림의 시간들 .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을 가장 치열하게 하셨던 분. 그리스도인의 입지가 좁아지는 요즈음, 예수님의 복음 선포자로서의 자세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복음 선포인지를 확인하게 합니다.  

 

 

복 음 (마르 1,29-39)

얼마 뒤에 예수께서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에 들어 가셨다. 때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사정을 예수께 알렸다. 예수께서 그 부인 곁으로 가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리고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해가 지고 날이 저물었을 때에 사람들이 병자와 마귀들린 사람들을 모두 예수께 데려 왔으며 온 동네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 들었다. 예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시며 자기 일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마귀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그 때 시몬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다니다가 만나서 "모두들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근방 다음 동네에도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찾아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며 마귀를 쫓아내셨다.

 

 

제 1 독서 (욥 7,1-4. 6-7)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의 생애는 품꾼의 나날 같지 않은가? 해지기를 기다리는 종과도 같고 삯을 기다리는 품꾼과도 같지 않은가? 달마다 돌아 오는 것은 허무한 것일 뿐, 고통스런 밤만이 꼬리를 문다네. 누우면 "언제나 이 밤이 새려나" 하고 기다리지만 새벽은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아 밤이 새도록 뒤척거리기만 하는데,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덧없이 사라져 가고 만다네. 잊지 마십시오. 이 목숨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이 눈이 어찌 다시 좋은 일을 보겠습니까?

 

 

제 2 독서 (1고린 9,16-19. 22-23)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보수가 있겠습니까? 보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길라잡이

 

새해가 시작되는 듯하더니 어느덧 2월이 되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인물인 욥은 이렇듯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잠깐 눈에 보였다 사라지는 입김에 비유하며 덧없고 허무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피부병과 싸우는 욥은 자기가 받고 있는 고통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기를 기억해달라며 하느님께 구원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욥의 모습은 그 뜻을 묻는 현대의 많은 고통받는 이들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고통의 뜻을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하심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자를 치료하고 마귀를 몰아내는 예수님의 활동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불행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 현존해 계시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권세가 이미 세상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열병으로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가 예수님의 손길로 일어나 시중을 들었다는 기사는 ’복음의 축복’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복음 전파가 곧 당신의 ’일’이라고 말씀하시며 기도로서 당신의 일인 선교사명에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바오로는 자기가 본래 자유인이었지만 복음 전파를 통해 종이 되었으므로 복음 전파는 마땅히 해야 할 직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이었으나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밝은 빛으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된 후 주님께서 보내신 아나니야의 도움으로 다시 눈을 뜨고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주었던 빛과 구원을 복음의 축복으로 경험한 그는 사랑과 감사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외쳤다고 생각됩니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며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신도들의 선교활동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선교에 대한 사랑과 인식을 깊게 하며, 또 자기 가족과 가톨릭 단체, 학교 등에 소명을 고취하며 더 나아가 자기들의 공으로 받은 신앙의 은혜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모든 류의 원조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4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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