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가출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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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숙 [joanchoi] 쪽지 캡슐

2001-05-18 ㅣ No.2451

멋지게 계획을 꾸미며 속으로 으뭉하게 웃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무거운 것들을 아무도 모르게 슬쩍 흐흐흐.... 마침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못이기는 체 무거운 온갖 멍에들을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나는 캐나다로, 미국으로, 짜잔 ㅡ ㅡ날아 갔지. 그러나 황홀할 것 같았던 그 여행길에서 자꾸만 어긋나고, 헷갈리고, 화 나고, 결국엔 챔피언 싸움 닭 같이 벼슬을 세우며 언성을 높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가방도 잃어 버린 채 호텔 로비에 앉아 마구 마구 이 사람 저 사람을 원망하던 중에 못자리 안 병철 신부님께서 축수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그래, 하느님을 버리고, 할 일도 버리고, 쫄다구들도 다 팽개치고 왔으니 발병이 나도 열번은 더 나야지!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으셨던 일을 억지로 했으니... 그 날 부터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가출 소녀처럼 내면의 지옥은 시작되어 "주님, 제게 주신 그 모든 일과 사명이 바로 보물이었군요. 당신의 집이 바로 제가 있어야 할 곳임을, 사랑이 가득한 그 곳이 천당임을 이제야 알겠나이다. 이제 다시 돌아 가면 이 몸 바수어져 가루가 되어도 오로지 당신 만이 주님이심을..." 회개의 눈물을 머금고 하느님을 다시 찾아 이렇게 기도하며 용서를 청하였다. 무거웠던 부담의 일정도 주신 선물로 여기게 되고 정화된 영혼의 가벼움으로 기뻐하며 방랑의 시간들을 접으니 이제 그리운 집으로 컴백 홈! 컴백 홈!. 속 모르는 남편은 "웰컴"이래. 덤으로 이제는 가출(냉담) 의 속앓이도 미루어 알게되고 동병상련의 이해심까지 얻구서. 그 다음 날부터 내게는 시차도 없고 게으름도 없고 오직 부르시는 음성만으로 사기 충천이었다. 모두 내게 쉬고 와서 힘났다고 하지만 아니다. 결단코 주님을 떠난 그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젠 알기에 "주님, 제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말씀드릴수 있다. 안 신부님께 떡메 치는 소리가 나도록 등짝을 얻어 맞아도, 계속 되는 망자 소식에도, 그저 좋기만 하다. 그 동안 그렇게 좋은 몫을 주셨음에도 눈멀고 귀먹어 투덜거린 나의 삶이 빈 의자로 증명되고 불협 화음으로 보여 진 오늘, 진심으로 돌아 온 탕자 되어 아버지께 " 제 탓이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를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드린다. 이렇게 밤이 야심해도 하느님이 좋아 마냥 돌아다니며 만나고 있으니 이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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