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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서강대) 신부님께서 요청하신 글 -사랑하는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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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2011-05-29 ㅣ No.7415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아들아 !       

 

네가 한 줌 흙으로 지내고 있는 성지에 친구들이 흔적이라도 남겨두고 싶다 하더라.

그래서 꽤 알려진 작가 분께 자그만 석재 조각품을 특별히 부탁해 두었었지,

수개월이 지나 완성된 작품을 등에 지고 너를 찾았을 때 내 마음이 참 즐겁고 평온했었다.

산길을 오르면서도 등에 진 돌이 이상하리만치 하나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더구나.

작품을 설치하고 돌아내려오는 동안에도 “아빠 고마워!..” 하면서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네가 계속 내 곁을 맴도는 것 같아 결국 세 번씩이나 너에게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지만 아빠도 그렇게 좋은 기분을 느껴보기는 네가 떠나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문득 다섯 살 쯤에 새로 갖게 된 자전거를 해질 무렵까지 타고 놀며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며 기뻐하던 일이 생각났었다.

동네에 다른 아이들이 맛있는 것을 먹을 때에도,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도 어린 너는 엄마 아빠에게 떼쓰지도 않고 ‘괜찮아’ 하며 어른들도 참기 힘든 절제의 표양을 보여주었다.

그 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뒤에서 아빠는 네게 해주지 못하는 부족함들 때문에 애써 눈물을 감추고 있었다는 고백을 지금에야 하게 되는구나 그렇게 너는 이해심 많은 착한 아이로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며칠 뒤 5학년이었던 네가 1학년 교실을 찾아와 ‘은영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네 동생이 달려가 오빠에게 안겼다면서 오빠 자랑을 숨넘어가듯 하더구나. 생애 처음으로 오빠의 든든한 어깨를 실감한 날이기도 했겠지,

은영이에게는 오빠가 세상 누구보다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위인이었고 인기 스타였으며, 스승이었고 사춘기에 맘 놓고 고백할 수 있는 수도자이기도 했다. 어쩌면 아빠의 자리를 대신해 준 그 삶을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이 아빠이고 또 네 앞에 감히 부끄럽기도 하구나

 

네가 열아홉 살 때였던가? 태풍이 휘몰아치던 무섭고 두려운 긴 밤을 맞았던 적이 있었다.

그 날 넌 성서모임에 간다고 나간 후 자정이 넘어서도 귀가를 하지 않았다. 연락도 되지 않고 알만 한 집에 모두 전화해 보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었다. 네 엄마가 안절부절 못하고 한숨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혹시 무슨 변이라도 당했을까봐 전쟁터에나 있을 수 있는 있는 그런 절박한 모정을 지켜보았다.

속옷까지 모두 적셔 돌아온 네가 잠자리에 들어서야 엄마는 감긴 네 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불을 끈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그 때 아빠는 네 엄마에게서 자식을 대신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끔직한 모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날이 지나고 오늘까지도 우리는 “왜 그랬냐?”고 네게 묻지 않았다. 그것은 엄마 아빠가 널 믿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너에게 사제가 되어주기를 바랬던 것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네가 남은 학점을 포기하고 음악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굳히기까지 네가 겪어야 했을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던 부모의 불찰도 크게 느껴지기도 해 마음 한 구석 아픔이 밀려온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픈 몸으로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공연을 하던 때에도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임동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입니다.”라고 하였니?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오월 마지막 날 박근호 신부님, 김찬미 신부님과 함께 성모병원에서 우리가 봉헌했던 미사도 주님께서 마련해 주셨던 것일까?

하느님께서 너를 데려가신다고 알려주는 입술이 떨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꼭 이렇게 하셔야만 됩니까? 하고 주님을 원망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평화의 인사인지, 고별의 인사인지를 나누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말씀에 ‘주님의 뜻대로....’ 성모님처럼 너 역시 담담하게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함께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울먹였는데.... 그렇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전례에서 우리는 모두 울고 또 울었다.

아마도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복음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 (루카 1,49) 이었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 책상, 네 악기, 네 연습실, 네 성당은 아직도 그대로이나,

유난히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전해져 이 세상을 좋은 향기로 피어오르게 한 것과 더불어,

네가 추구하며 남기고 간 “용서”와 “사랑” “껴안음”의 메시지들로 신자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이 큰 위로로 다가온다.

그렇게 네 좋은 마음들이 이어지고 되살아나 오늘도 “동욱이 형이..., 동욱이 오빠가...” 로 시작되는 사연들을 모으며 자식농사의 결실을 담고 있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불렀던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라는 노래가 네 엄마의 눈물샘이 되어버린 지금, 나 또한 너 보고 싶음에 울먹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랑스런 네 정신을 가슴에 묻고 싶구나.

엄마 아빠는 30년 동안이나 네가 우리 아들이었음에 감사한다.

천사의 모습을 감추고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장한 아들로 머물러 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네 마지막 유언 “나 하느님 곁에 있을꺼야 엄마 아빠 은영이 지켜줄게....”라고 한 말

정말 고맙다.

 

2011년 부활대축일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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