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지란지교를 꿈꾸며(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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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성 [theresa9] 쪽지 캡슐

2000-06-20 ㅣ No.1156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희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 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은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 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데도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었다 해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리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 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뭍인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 이 글을 읽으며(지금 까지 5번 읽었음) 항상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난 참 행복하다. 이 글처럼 나를 아껴주는 친구가 있으니..." 여러분도 자신을 아껴주고, 나의 눈빛만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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