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성당 게시판

[청년연합회]어느 달팽이의 비참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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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joyous] 쪽지 캡슐

1999-09-18 ㅣ No.1536

^^ 유니텔에 들어갔다가 퍼온글입니다. 읽어보세요!!

 

< 어느 달팽이의 비참한 최후 >

 

기억의 꼬리는 작년 이맘때쯤의 무더운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엄마는 상추를 씻고 계셨다. 갑자기 엄마가.

’달팽이다. 넘 귀엽다’

후다닥 달려가 달팽이를 구경했다. 정말 귀여웠다. 강아지 한마리 못키우게 하는 우리집은 나를 달팽이 하나에도 관심을 보이며 부리나케 달려가는 소심한 놈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귀여운 새까만 두개의 오물락거리는 눈은 너무너무 앙징맞았다.그리구 반투명한 소라껍질같은 집이 달팽이의 보금자리였다. 그 속에 들어가 있다가 가만히 모양을 지켜보고 있을라 치면 빼꼼히 눈을 빼고 두리번거리다가는 서서히 정말 천천히 몸을 반쯤까지 내민다. 정말 너무너무 귀엽다.그리고 이 달팽이는 여느 달팽이와는 달리 눈이 엄청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땐 자기 몸집보다 빼꼼히 빼든 눈길이가 더 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이 나를 사로잡는 것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다른 곤충은 사람이 손을 대거나 바람을 불면 쏙 들어간다거나 죽은척한다거나 날아가버린다거나 오므린다거나.. 다들 이런식이다. 비겁한 놈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사람이 눈에다가 손을 대면 눈으로 더듬더듬 손가락을 살피더니 이내 손가락을 풀잎으로 착각하는지 기어오르기 일쑤였다. 정말 귀엽다. 한번 눈길을 주면 결코 떼기 싫은 나만의 귀여운 애완곤충이었다.

항상 상추잎을 구해와서 듬뿍듬뿍 놓아주고 분무기로 물도 자주 주면서 달팽이의 생활환경에 맞추려 무진장 애먹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나였다. 달팽이도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주었다. 물론 몸집이 커진것도, 눈길이가 더 길어진 것도 아니다. 단지 예전보다 못할것은 없었단 얘기다.

 

하지만 사람은 일회성 동물인가부다. 가까운 가족이 죽어도 이내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금방 지워버린다. 아침에 정한 약속도 30분 지나면 잊어버린다. 이건 나에게만 해당하는 얘긴가??

하물며 곤충에게야...

학교다니기 바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바뻐 아침일찍 나가면 달팽이생각은 아예 하지 않게 된다.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피곤한 몸으로 달팽이에게 신경쓸 에너지로 잠한숨이라도 더 자구 만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도 달팽이는 묵묵히 정말 묵묵히 건강함을, 그 액티브한 모습을 유지해 주었다.

달팽이는 원래 음지곤충이라 빛을 싫어한다. 잎속에서도 될 수 있으면 어두운 뒷면에 자리를 깔고 오므리고 잠을 자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끔 잠자고 있는 달팽이한테 분무기를 들이대며 괴롭히기 시작하면 녀석은 금새 집을 박차고 나와 나를 반긴다. 좀 꾸물떡대기는 하지만...

 

하지만 나의 무관심은 정말 무서웠다. 하긴 친한 친구생일도 안챙겨주는 게으른 나인데 오죽했으랴... 녀석은 주인을 잘못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녀석에게 다행인것은 하수구 속으로 들어가 지렁이와 동거동락을 하는 것보단 훨씬 상팔자가 아니겠느냐고...어설픈 나에게로의 위로다. 난 나뿐 놈이다.

녀석은 꿋꿋히 참아주고 있었다. 나의 무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젠 무의식적으로 지긋지긋해 하며 주던 물도 안줬다. 창가에 놔둔 덕에 가끔 비가 올때 한두방울 튀어들어오는 빗방울 몇가닥이 녀석의 목축임을 위한 생계수단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녀석은 하수구의 고달픈 인생역경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단 낫다. 끈질긴 녀석...

 

녀석은 드디어 하수구에서의 삶의 마감보다 더 비참한 생의 최후를 맞이했다.

 

 

녀석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소지하고 다니던 손수건하나라도 없어지면 난리가 나는 법이다. 하물며 무의식적으로 내팽개쳐져있던 달팽이야..... 녀석은 손수건보단 나은 놈이었다. 그건 내가 인정한다

 

우리는 식구가 하나가 되어 내 방을 벌집 쑤셔 놓듯이 했다. 엄마도 맨처음의 달팽이를 하수구의 인생에서 반전시켜 호강하게 만든 사람으로 어지간한 관심을 기울였다. 오빠도 가끔 내 어깨너머로 분무기 뿌리는 걸 구경하며 관심을 보였던 식구로 ’달팽이 구조하기’에 동참하였다 - 이건 정말 달팽이 호강하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또 지나가는구만.....

하지만 녀석은 사라졌다. 백방으로 뒤져봤지만 가구 밑에서나 쇼핑백속에서 나오는 것은 죽어서 뻣어있는 왕파리뿐이었다. 이 놈이 잡아먹고 죽은건가?

 

어쨌건 우리는 녀석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군가를 추억으로 떠올리고자 할때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게 된다. 절친한 친구가 죽거나 멀리 가면 녀석과 과자고르느라고 싸우던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성적 쪼까 좋게 나왔다구 질투하며 이를 갈던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친구와 뜀박질하며 꺄르르 웃었던 추억뿐....

 

녀석,,,, 정말 좋은 녀석이었는데....

 

얼마후 우린 이사를 갔고 녀석은 먼지 더미속에서 뒹굴다 새 장판과 새벽지속으로 파묻혔을 것이다. 하수구 속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녀석은 그래도 낫다.

무관심한 인간들속에서 부대끼며 살아봤으니까 어둔 하수구보다야 훨낫지... 또다시 나에게로의 위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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