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일생동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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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woojuin114] 쪽지 캡슐

2001-06-25 ㅣ No.2241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면 사랑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마치 신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내기라도 한 사람처럼 결코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사실이긴 해도 진실은 아닌 일이 많습니다. 그대에게 결코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한 일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그건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나의 울타리에 당신을 가두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일’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보다 더 어려워요.

표현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랜 세월을 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것을 내 삶의 목표로 삼을 것입니다.

내가 이승의 삶을 다 마칠 때까지도 그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더라도 좋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대에게 그 흔한 사랑을 말로 하지 않고 일생 동안 천천히 성취해가는 것으로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채로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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