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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jealousy; 질투 = envy (嫉妒, invidia) 1035_시기vs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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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vs질투 -17 [218.55.90.*]

2014-04-23 ㅣ No.154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4) 아래의 사진은 제1530번 글을 공개한지 30분도 경과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에, 동일한 ip(인터넷 접속 주소)를 사용하면서, 한 명이 한 개 이상의 id를 사용하여, 반대적어도 두 번하였음을 보여준다는 생각입니다. 조회 2건반대 3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누군가 한 명이 동일한 ip(인터넷 접속 주소)로 접속하게 되는 단체 혹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한 개 이상의 자신의 가족들 혹은 단체 구성원들의 id을 사용하여 고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였다면, 악의적 의도를 지닌 자가 아니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인터넷 게시글 대화의 환경이므로 다른 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을 것이라는 대단히 잘못된 판단과 무지 때문에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서 위와 같은 추한 행동을 하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자 때문에라도,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은 유의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표준국어 대사전: 나쁜 일을 아무리 남모르게 한다고 해도 오래 두고 여러 번 계속하면 결국에는 들키고 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는 속담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됩니다.

 

 

 

+ 찬미 예수님!

 

 

 

 

0. 들어가면서

이번 글은 다음의 글[제목: 하느님의 시기(jealousy)의 대상은 누구?]의 한줄답변들과 이들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답변들의 모음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09.htm

 

ㅂㅈㅇ님의 반론:

[시기는 남의 것을 나는 가지지 못 해서 느끼는 감정이고
질투는 내가 가진 것을 남이 뺏어가서 느끼는 감정이지요.
그게 심리학에서 둘을 나누는 기준입니다.

하느님은 만물의 소유자이니 시기는 할 수가 없어요.
질투는 하시죠. 특히나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가 연인이나 부부로 흔히 묘사되니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질투하는 신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수사적으로도 자연스럽지요.]

 

<----- 위의 반론에 대한 답글:

 

1. 위의 ㅂㅈㅇ 형제님의 말씀에서, "시기"를 "질투(envy)"로 교체하고 그리고 "질투"를 "시기(jealousy)"로 교체하면, 형제님의 말씀은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바와 동일합니다.

 

즉, ㅂㅈㅇ 형제님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jealousy" "envy" 의 차이점에 대하여, 예를 들어, 영어(English)로 대화를 하면, 아무런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2. 그런데, "질투" 라는 한자 단어는,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시기"의 의미를 나타내는 "envy(라틴어 invidia)"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서 이미 중국의 명나라 말기에 예수회 소속의 마테오리치 등의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채택이 되었고,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중국의 천주교 교리서, 판토하 신부님 저술의 수덕서인 "칠극"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 "질투(envy, invidia)"는 앞으로도 국내의 천주교 내에서 보존되면서 계속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있는 졸글을 읽어 보십시오. 인문학 분야의 전공 교수들과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를 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9.htm

 

"jealousy"를 자신의 느낌에 따라, (i) "시기"로 번역하는 분들과, (ii) "jealousy"를, "시기" 대신에, "질투"로 번역하는 분들이 50:50 정도였다는 생각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어 보십시오.

 

5. 그리고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시기(jealousy)" 에는 "하느님의 시기(divine jealousy)"(2코린토 11,2)처럼 "선한 시기(good jealousy)" 도 있고 그리고 로마서 1,29에서처럼 "악한/나쁜 시기(evil/bad jealousy)"도 있기에(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2코린토 11,2에 대한 해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질투(envy, invidia)"는 항상 "나쁜 시기(bad jealousy)"에 포함되므로,

"질투(envy)"를 "시기(jealousy)"와 무작정 동일시하면 아니 됩니다.

 

6.
6-1. "새 번역 성경" 의 구약과 신약 본문에서, 칠십인 역(LXX)을 경유하여 동일한 그리스어 어근(root)을 가지는 단어(영어로 "jealousy") 를 구약 본문에서는 "질투" 로 번역을 하고, 그러나 신약 본문에서는 "시기"로 번역한 것은, 원 용어의 자구적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의 당연한 요건인 일관성 유지를 상실하였기에,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으며,

 

6-2. 그리고,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예를 들어, "envy(invidia)"를 임의적으로 "질투(심)"(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앞부분인 제391항과 제412항) 혹은 '시기(심)"(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뒷부분인 제2583-2540항)으로 번역한 것은, 원 용어의 자구적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의 당연한 요건인 일관성 유지를 상실하였기에,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일부 성직자들께도 말씀들을 드리면서, 바로 이러한 문제점들의 해결을 위하여 작성된 그동안의 필자의 글들은, "문헌들에 근거하여 고찰한 바를 기록으로 남기는 글들"이자 또한 여러분들께 "보고를 드리는 글들"이지, 결코 논쟁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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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님의 답글:

[† 찬미 예수님! 소순태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 '질투'를 쓸 자리에 '시기'를 쓰면 안되지만, (질투 「1」의 의미가 없기에)
'시기'를 쓸 자리에 '질투'를 써도, '질투「2」'의 의미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명확해 보입니다.
그래서 국어 어법상으로만 보면,
소순태형제님의 본글중 “당부의 말씀”에서 "시기"를 쓸 자리에 "질투"를 쓰셨던 것이며,
그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했던 것은 저의 “오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소순태형제님께는 사과를 드리고,
ㅇㅂㅅ 님께는 감사를 드립니다.]


<-----  ㅇㅅㅇ 님의 답글에 대한 보충의 글:

 

ㅇㅅㅇ 님 감사합니다.

 

1. 다음의 주소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질투"를 검색한 후에, "질투" 글자를 다시 한 번 더 클릭하면, "질투"에 대한 다음과 같은 3개의 설명들이 나옵니다:

 

(발췌 시작)

질투

「1」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강샘ㆍ모질03ㆍ투기06

「2」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3」『가톨릭』칠죄종(七罪宗)의 하나.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일을 이른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칠죄종(七罪宗)의 하나인 질투가 시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설명되고 있음에, 즉 질투가 시기에 포함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민감한 사안의 경우에 있어 발췌를 할 때에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되도록 전문을 발췌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그런데, 성경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은 가톨릭 교회의 번역서들이므로,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위의 「3」항의 설명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즉, 번역서들인 우리말본 "새 번역 성경",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에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 사용 중인 "질투"의 의미는 마땅히 위의 「3」의 설명/의미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즉,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가톨릭』칠죄종(七罪宗) 중의 한 개인 "질투"의 의미를 마땅히 따라야 할 것입니다.

 

3.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은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라는 문장 중의 "질투하는" 이라는 표현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을 대입하면, 이 문장은 "하느님은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하느님이다"가 되는데,

 

그런데 하느님보다 "우월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기나 합니까???

 

따라서, 탈출기 20,5는 "하느님은 시기하는 하느님이다"로 마땅히 번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문장이 번역서인 성경의 본문이므로, 이 문장에서의 "시기하는"의 의미도 오로지 세속의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에만 의존하면 아니 됩니다.

 

이렇게 세속의 우리말 국어사전과 국내의 한자자전에 주어진 "질투" 와 "시기"에 대한 설명에만 오로지 의존하여,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로서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이들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문제임을, 이 글의 본글인, 아래의 글의 제3항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0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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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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