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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의 방향은 새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에페소 1,10 1444_piety 1293_evangelize 912_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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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1 ㅣ No.161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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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복음화(evangelization)"의 방향은, 당신의 부활 이후부터 "새 창조(the New Creation)"를 주관하고 계시는 성자 하느님이신, " 아담(the New Adam)"인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피조물들을 되돌아가게/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에페소 1,10; 우리말본이 아닌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30항; 제518항; 제538항; 제772항; 제1138항; 제1043항; 제1161항; 제2748항).

 

1-2. "재-복음화(re-evangelization)"의 방향도, 당신의 부활 이후부터 "새 창조(the New Creation)"를 주관하고 계시는 성자 하느님이신, " 아담(the New Adam)"인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피조물들을 되돌아가게/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1-3. "새로운 복음화(the new evangelization)"의 방향도 또한, 당신의 부활 이후부터 "새 창조(the New Creation)"를 주관하고 계시는 성자 하느님이신, " 아담(the New Adam)"인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피조물들을 되돌아가게/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2

2-1. 한편으로, 지성(intellect) 및 자유 의지(free will)를 지니고 있는 있음(beings)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존재(existence)(credere Deum)를 인정할 경우에, 결국에, 2자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i) 그 중의 한 분은, 이 세상에 있어 윤리적 질서(moral order)의 유일한 결정적인 원천이신, 바로 이 [창조주] 하느님(God), (ii) 당사자 피조물인 한 인격(a person)인 나(I), 그리고 (iii) 통상적으로 너(you)로 불리는, 피조물인 다른 인격(another person), 영적 있음(spiritual beings)들인, 천사(angel) 혹은 악마(devil)라는, (i), (ii)(iii) 바로 이 세 개의 말단(末端, terminations)들을 가지는, 3자(three persons)들 사이의 관계로 귀착되는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입니다.

 

2-2. 다른 한편으로, 지성(intellect) 및 자유 의지(free will)를 지니고 있는 있음(beings)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존재(existence)(credere Deum)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 결국에, (i) 당사자 피조물인 한 인격(a person)인 나(I), 그리고 (ii) 통상적으로 너(you)로 불리는, 피조물인 다른 인격(another person), 영적 있음(spiritual beings)들인, 천사(angel) 혹은 악마(devil)라는, (i), (ii) 바로 이 두 개의 말단(末端, terminations)들을 가지는, 2자(two persons)들 사이의 관계로 귀착되는 한 관계(B)입니다. 

 

게시자 주 2-2: 

(1) 결국에, 오로지 피조물들인 2자(two persons)들 사이의 관계(B)만을 인정하는 어떤 공동체(a community)에서는, 말하자면, 합리주의(rationalism)에 근거한, 즉, 한 분이신 하느님의 영원한 법(the eternal law)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어떤 무신론적 자연법(a atheistic natural law)과 이 법에 기초한 어떤 인정법(a human positiv law)만이 어떤 윤리적 질서(a moral order)의 원천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특히, 한 결과로서, 모두가 획득하고자 욕망하는(desire) 진정한 행복, 즉, 참 행복(true happiness)이 무엇인지가 정의될(defined) 수가 없을 것입니다.

 

즉, 결국에, 오로지 피조물들인 2자(two persons)들 사이의 관계(B)만을 인정하는 어떤 공동체(a community)에서는, 소위 말하는, 유일한 초기 객체(the initial object)와 유일한 최종 객체(the final object)들 모두가 이 공동체 안쪽에 존재할 수 없기에, 그 구성원들 다수가 획득하고자 욕망하는(desire) 진정한 행복, 즉, 참 행복(true happiness)이 무엇인지가 해당 공동체 안쪽에 존재하는 그 무엇인 바로 결코 정의될(defined)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에, 오로지 피조물들인 2자(two persons)들 사이의 관계(B)만을 인정하는 어떤 공동체(a community)에서는, 하느님의 현존를 인지하지 못하므로 오로지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love)[ 즉, cupitidas, cupitidy]을 나(I) 혹은/그리고 너(you)가 추구하게 될 것인데, 이 사랑(love)에는 돈, 권력, 명예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2) 위의 제2-1항제2-2항에서처럼, (i) 하느님이 한 말단인 3자(three persons)들 사이의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ii) 오로지 피조물들인 2자(two persons)들 사이의 한 관계(B)로 구분함으로써 이들 두 종류의 기본 관계 설정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성경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대단히 유익할 것입니다.

 

질문 1:  그런데, 결국에, 하느님이 한 말단인 3자들 사이의 관계로 귀착되는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욕망하는 참 행복은 무엇인지요? 예를 들자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나누는 돈, 권력, 명예 등일까요???

(이상, 게시자 주 2-2 끝)

  

2-3.

2-3-1. 그러므로, "복음화(evangelization)"란, 결국에, 2자들 사이의 관계(B)의 한 말단인 자(you)를, 하느님이 한 말단인 3자들 사이의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의 한 말단인 한 인격(I)이 이 자(you)와 어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인간 관계(a constructive and positive human relationship)를 형성함으로써 이 관계를 과도적(過渡的)으로(transitively) 경유하여(go through), 3자들 사이의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의 한 말단(末端, termination)인 You로 초대하는(invite), 그리하여 그 결과,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God)과, 당신의 피조물들인 나(I)와 너(you) 사이에 3자들 사이의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처음으로/최초로 자리잡도록/형성되도록 인도하는(lead), 어떤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a morally good act)에 의하여 시작될 것입니다.

 

2-3-2. 그러므로 "재-복음화(re-evangelization)" 가,

(i) 바로 위의 제2-3-1항에 언급된 과정을 거쳐 이미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자[즉, 이미 3자들 사이의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 안에 있는, 피조물 인간인 나(I)와 피조물 인간인 너(You) 둘 다]를을 그 대상으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3자들 사이에의 한 관계(A)[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에 있는 한 말단인 하느님 당신 자신이 "(재-)복음화"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떄문입니다.

 

(ii) 그리고 위의 제1-2항에 기술된 원의(原意, original intention)에 따라, 이미 3자들 사이의 관계(A) 안에 있는 피조물 인간인 나(I)와 피조물 인간인 너(You)인 그리스도인들의 성화(sanctification)를 위한 "재-복음화(re-evangelization)" 는, 일련의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a morally good act)들, 즉, [윤리적] 선행([moral] good works)들,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하여 마태오 복음서 6,1-18에서 직접 거명된, 따라서,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의 형태[formas pietatis, the forms of piety, les formes de piété (aumône, jeûne et prière, cf. Mt 6, 18)]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75항)탁월한 선행들로도 불리는, "세가지 의로운 일들, 즉, 기도(prayer), 단식(fasting), 그리고 자선 제공(almsgiving)을 필수적으로 포함하는 의로운 일(righteous deeds)들"로 이루어진, 그리하여, 기도 생활, 성사 생활, 그리고 실천 생활이 마땅히 그리고 당연히 포함된, 어떤 윤리적 활동(a moral activity)에 의하여 지속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iii) 그런데, 이러한 "재-복음화(re-evangelization)" 가 설사 외면적으로/외형적(外形的)으로/가시적으로 더구나 열성적으로 새롭게 진행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내면적으로/내형적(內形的)으로/비가시적으로, 예를 들어,

 

"하느님의 말씀",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 "그리스도의 복음(Gospel of Christ)",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 "교회(Church)" "속량(Redemption)", "옛 계약", "새 계약", "새 창조", "총귀/총괄복귀(recapitulatio, recapitulation)", "새 아담(the New Adam)", 새 하와(the New Eve)", "삼위일체 교의", "위격결합 교의", "강생 신비", "신앙의 신비" "성변화(transubstantiation)", "양성론" "양의론", "통공(communion)", "연옥 교의", "예정론", "일곱 성사들", "성모님에 대한 네 개의 교의들", "사말 교리";

 

"신앙의 유산(deposit of faith)", "성전(Sacred Tradition)/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 "성경(Sacred Scriptures)", "교도권(Magistrium)", "사도계승(Apostolic Succession)";

 

"영혼(soul)", "몸(body)", "지성(intellect)", "심장(heart)", "마음(mind)", "형상(form)", "질료(matter)", "가능태", "현실태",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욕구(appetites)들", "의지(will)", "욕망(desire)", "자유 의지(free will)"; 

 

"윤리(morality)",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 법(laws)들", "평화(peace)", "죄(sin)", "원죄(the original sin)",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윤리적 선(moral evil)", 선행(good work)", "덕(virtue)", "악덕(vice)", "정(passions)들", "칠죄종(the seven capital sins)들", "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ience)", 시기(jealousy)", 질투(envy)", "완미(perfection)"; 

 

"은총(grace)", "성령칠은(the 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 "은사(charism)",  "하느님의 사랑(God's love)", "사랑(love)/인간의 사랑(human love)";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cupidity, cupiditas)", "믿음/신덕(faith)", "하느님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love)/애덕(charity, caritas)", 희망/망덕(hope); 

 

"사추덕들(the four cardinal virtues)", "현명(prudence)", "정의/의덕(justice)" 

 

등의 일부 성경 용어들과 그리고 초자연적 개념들을 나타내는 성경 용어들을 설명할 때에 사용되는,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에 근거한 고유한 용어 정의(definition)를 가지고 있는,  기본 교리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여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예를 들어, 단순 암기식 "교리 문답 책자"에 담긴 내용들의 재-암송 등의 수준의 교리 교육에만 의존하는 등의, "과거에 고착시켜져 존속하게 하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기존의 방식들에만 오로지 의존하는, "재-복음화(re-evangelization)" 는, 설사 수십 년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또 실천애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처럼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어느 시점 도달하여, 례 당시의 자기 자신을 별로 변화시키지 못하였음을 성화의 대상인 당사자 스스로가 결국에 깨닫게 되는, 반드시 지양(止揚)하여야/회피하여야 하는, 한 종류의, 잘못된 방식의, 재-복음화(re-evangelization)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질문 2: 바로 위의 제2-3-2항에서 말씀드린 "재-복음화(re-evangelization)" 의 과정 (i), (ii), 그리고 (iii) 의 어느 단계에서 실제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2-3-3. 그러므로 "한 개의 새로운 복음화(a new evangelization)"란,

(i) 비록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로부터 이미 떠나버린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계 없이 살고 있는 이들에게 주되게(principally) 향해지므로(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

 

(ii) 그 열정에 있어, 그 방법들에 있어, 그 표현들에 있어 새로운(new in its ardor, in its methods, in its expressions)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John Paul II)Discourse to the XIX Assembly of CELAM, Port-au-Prince, 9 March 1983, n. 3] "재-복음화(re-evangelization)".(#2)이고,

 

(iii) 그리므로, 이 복음화교회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 자들 쪽으로 특별히 향하게 됩니다(2012년 10월, 제13차 통상 세계 주교 대의원회, Proposition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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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다음의 글의 제1항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0.htm

 

(#2) 게시자 주: 다음의 글의 제2항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0.htm

 

(#3) 게시자 주: 2013년 11월 24일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교황 권고[제목: 복음의 기쁨]의 각주로 제시되고 있는, [10] <--- 여기를 클릭하거나, 혹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5_EG_ftn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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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그러나, "한 개의 새로운 복음화(a new evangelization)" 라는 표현에 있어, "새로운(new)" 이라는 형용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개방되어 있습니다, 즉, 확정적 혹은 최종적으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즉, 특정 시기 및 특정 장소에 위치한 각 지역 교회의 동시대의 여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질문 3: 그런데, 전교 대상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복음화(evangelization)", "재-복음화(re-evangelization)", 그리고 "새로운 복음화(the new evangelization)", 이들 각각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하는지요, 아니면, 이들 셋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하여야 하는지요?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중요한 내용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참고 자료 1: "복음화(evangelization)"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CCC 10, 905, 927, 929, 1072

 

참고 자료 2: "복음을 전하다(evangelize)"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CCC 333, 429, 848, 852, 1122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4월 23일]

3.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이번 글의 결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8_four_principles_of_Evangelization.htm <--- 필독 권고

 

생업 관계로 대단히 바쁜 와중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서술된, 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 전문을 읽으실 것을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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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4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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