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김용화 바오로 신부님을 떠나보내면서....

인쇄

김우용 [michael] 쪽지 캡슐

1999-09-19 ㅣ No.777

다음 글은 일원동 신자를 대표하여

이춘욱 스테파노 형제가 이임하시는 김용화 바오로 주임신부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김용화 바오로 신부님을 떠나보내면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아들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대로 길을 떠났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신부님,

  당신은 꽃샘 추위 속에 개나리 꽃이 막 피기 시작한 어느 봄에 일원동으로 홀홀 단신 오셨습니다. 마치 창세기에서 아버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길을 떠나, 아버지께서 일러주신 곳일원동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꿈같은 5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추억같은 일이 되었지만, 그 날로 돌아가 보면 막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개포와 수서로 흩어져 미사를 드리던 일원동 신자들만 한데 모았을 뿐이지, 정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땅이 있었습니까, 넘겨 받은 돈이 있었습니까, 고작 사제관으로 세 얻어준 아파트 한채가 전부였습니다.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막막했을지 모르지만 주임 신부님으로 첫 부임하신 사제의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원동에 하상회관이 있어, 교구의 협조를 얻어 100평도 채 안되는 지하성당에 세들어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말이 지하성당이지 여름이 닥치자 물이 새 냄새가 나고 모기가 득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직접 성당에 모기향을 뿌리시고 동창신부님으로부터 철제의자 200개를 얻어다 복도에 보조 자리를 만드시고 TV 생중계를 하시면서 양들을 불러 모아 주님께 정성스럽게 미사를 드렸습니다.

  낮으로는 총구역장님과 일일이 가정방문을 다니시고 밤이면 구역미사와 형제회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습니다. 그러나 갈라졌던 몇 개월 때문인지 개포 출신이다, 수서 출신이다 갈등했던 저희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습니까. 또 술 잘 드시는 형제님들의 폭탄주까지 일일이 상대하시느라 파김치가 되어 새벽 2시 3시가 넘어 사제관으로 돌아오시는 신부님의 건강을 누가 챙겨주었습니까. 세 아닌 세를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으면 상가 건물을 알아보시고 빈 땅에 천막을 치고 미사 드릴 생각까지 하셨겠습니까. 식복사도 없이 혼자 상을 차려 드시고 이런 상처 저런 상처 다 받으셔 건강이 날로 나빠지신 신부님이 누룩이 되어  일원동 신자들은 한가족으로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로 부풀어 갔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단합된 공동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성전을 마련케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저희 공동체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께서는 정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신부님. 그때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리라 생각이나 했습니까? 더욱이 500평의 성전부지를 마련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습니까? 입찰하던 날, 상대가 교통체증으로 막혀 단독입찰하게 됐고 저희에게 낙찰되었던 기적같은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교구의 도움을 끌어내고 신협으로부터 일부를 빌려 땅값을 해결하신 신부님께서는 이때부터 신자들의 자발적인 정성을 모아 성전건축에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일각에서는 무리라는 소리와 일단 땅이 확보됐으니 간이건물을 지어 당분간 미사를 드리고 천천히 성전을 짓자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신부님께서는 믿음을 갖고 뚝심있게 밀고 나갔습니다. 그 믿음과 기도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신부님께서 황량한 일원동에 오신지 3년 9개월, 그것도 IMF의 충격이 닥치기 직전에 아름다운 성전을 완성하고 성탄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적이었습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것이 가능했겠습니까? 또 당신을 이곳에 파견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드라마 같은 일이 이루어졌겠습니까?

  성전을 주님께 봉헌하던 날 정진석 대주교님께서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빚 없이 성전을 완성하여 봉헌한 본당은 처음”이라며 신부님의 탁월한 리더십과 단합된 일원동 공동체를 칭찬하셨습니다.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5년 6개월. 어찌 보면 긴 시간이었지만 참 빨리 지나갔습니다. 지하 성당에서 있었던 첫 영세식의 감격부터 시작하여, 딱따구리와 함께 강원도 인구공소에서 보낸 여름가족캠프, 미리내에서의 긴 성지순례, 형제 자매 어른 아이 어우러졌던 체육대회, 야외미사, 어렵게 마련한 성전 부지 위에서 성모의 밤과 작은 음악회, 구역장 반장들 고생한다고 보내주신 제주도 피정,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새 성전으로의 이사 행렬, 그 해 겨울 새 성전을 짓고 가슴 벅차게 드린 성탄미사 등 신부님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 김용화 바오로 신부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고향 일원동과 네 형제 자매와 아버지의 집 한국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쓰시려고 그 먼 이국 땅으로 보내시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통해 어떤 큰 영광을 드러 내시려고 하시는 일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희 일원동 신자들은 다만 주님의 부르심에,“아멘”하고 순명하시며 떠나시는 당신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어디에 가시거나 항상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김용화 바오로 신부님,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건강하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위해 더 큰 일을 하십시오.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8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