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성냥개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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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1-09-10 ㅣ No.2023

 

  그런 풍경이 있었지요.

  대학 다니던 시절에

  할 일 없이 다방에 앉아 시간을 죽이던 때

  통성냥을 가져다가

  성냥개비로 네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사각의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정성들여 쌓아올린 탑이 높아갈수록

  손에는 땀이 나고....

 

  그렇게 열심히 쌓아 올린 탑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나중엔

  그냥 무너뜨려 버리는 거죠.

  요즘도 이런 풍경 볼 수가 있나?

 

  그런 기분입니다.

  내가 쌓아가는 탑이

  한층 한층 높아갈 때

  행여나 무너질까 조바심하면서도

  결국은

  무너뜨리기 위해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제는 얼마 쌓지도 못한 탑에

  그만 싫증나

  아예 내손으로 무너뜨리며

  부질없는 짓거리라고

  도리질 하는 것 같은 기분.

 

  아니 아니

  부질없는 짓거리 하지 말라고

  옆에서

  후~욱 불어버리면

  그냥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한낱 성냥개비 탑같은 삶을 조바심내며 쌓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닥에 침 칠해서 세워놓은

  네 개의 성냥개비 기둥은

  높고 튼튼한 탑을 결코

  쌓아 올릴 수 없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위에 세우는 탑

 

  무너져 내리면

 

  할 일 없이 다시 기둥을 세우고 또 쌓아가는 거죠.

 

 

 

 

  그리고

 

  오늘 밤도

 

  잠자리에 누워

 

  가시관쓰신

 

  삽자가에 못박혀 매달리신

 

  그 님을 생각합니다.

 

  눈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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