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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예감 구원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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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범 [seead] 쪽지 캡슐

2002-04-10 ㅣ No.2296

                     사랑예감 구원예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서 우리는 가끔 혼란과 의심에 빠질 수 있다.

 

과연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우린 그저 자신 안에 채워진 감정으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애써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메달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실 사랑을 등급으로 구분지어 진정한 사랑, 그렇지 않은 사랑으로

 

명확하게 정의내린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어리석게도 보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참된 사랑은 그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이 행복해 하는지

 

아니면 그 사랑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 하는 지에 달린 문제다.

 

 

 

진정한 사랑인 처럼 포장된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감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난 네가 필요해" "너없이 나는 못 살아" 등등의 표현이

 

그런 표현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오히려 진정한 사랑은

 

나의 사랑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며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은 바보같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사람을 위해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지 모르겠다.

 

 

 

이런 사랑의 행위를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구원을 선물하고 계심을 체험하게 된다.  

 

마치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드러나게 되었듯이 말이다.

 

 

 

한낱 인간의 감정으로 어찌 하느님의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차원은 단지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깊이 있는 이야기 인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자연적인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가르침을 왠지 따르고, 믿고 싶기에

 

부족한 나는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뒷 부분이 말해주고 있듯이

 

우리가 신앙으로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나약한 본성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이루어가고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들 보다 앞서서

 

오늘 나의 나약하고, 부족하고, 제한된 인간의 본성을 통해

 

세상을 향한 자신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시려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말아야겠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서 우리가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 그것은 바로

 

 

 

과연 나는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나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무엇이고,

 

난 왜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이다.

 

 

행복하세요...*^^*     노우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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