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이모부와 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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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07 ㅣ No.5418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화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마저 소식이 끊기자 나는 곧 이모부의 손에 이끌려 갔습니다.

이모부는 도봉산 기슭에서 거위를 치면서 혼자 살았습니다.

한때는 상류사회 엘리트였던 이모부 역시 사업에 실패해 가산을 탕진한 후 이혼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이! 살아서 뭐 하노!"

이모부는 술만 마시면 같은 말을 되풀이했고 해만 지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그 날도 몹시 취한 이모부가 곤히 자는 나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일나 봐라, 내캉 할 일이 있다."

그 길로 이모부는 거위들을 데리고 아래 마을에 내려가 집집마다 몇 마리씩 팔았습니다.

모조리 팔고 얻은 한 뭉치의 돈을 내게 꼭 쥐어주던 이모부의 눈엔 절망이 가득했고 어딘지 섬뜩한 결심을 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산 위의 움막으로 돌아와서는 남은 술잔을 다 비운 뒤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뭔가 아주 소란한 소리에 감에서 깬 나는 열린 문틈으로 엉거주춤 서서 어쩔 줄 모르는 이모부를 보았습니다. 이모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혼자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들이 미쳤나... 참말로."

온산이 떠나가도록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거위들이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어느새 거위 틈에 둘러싸인 이모부는 주저앉아 오래오래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래 그래, 흑흑."

그날 이후로 나는 이모부의 눈물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돌아온 거위들이 이모부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와 희망을 되찾아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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