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사랑의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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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08 ㅣ No.5419

 

아내에게는 늘 똑같은 물건만 선물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다정히 해로해 온 아내는 남편이 외국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한결같이 마중 나가 기다렸습니다.

"왜 나와 있어. 언제 올 줄 알고."

"고생하셨죠?"

"뭘... 집엔 별일 없구?"

어지간히 무뚝뚝한 남편.... 그래도 선물을 잊는 법은 없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가방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아내에게 건넸습니다.

"자, 당신 선물."

"또 이거죠... 이거?"

아내는 검지와 중지로 시늉을 해 보였습니다.

"응... 그래."

화장품도 귀금속도 아닌 가위.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사들인 가위가 벌써 2백 개가 넘었지만, 아내는 가위 선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태영.

우리나라 죄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그녀에게 가위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항일운동을 하던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느라 섬섬옥수 여린 손으로 누비 이불을 만들어 팔아야 했던 아내.

쇠붙이란 쇠붙이는 무기 만든다고 다 걷어가고 이불보 자를 가위 하나 변변히 없던 시절, 그녀는 날 무딘 가위와 씨름하며 밤새 이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낮이면 그 이불 보따리를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팔았습니다.

아무것도 무르던 남편이 출옥하던 날, 그는 아내의 손을 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오른손 엄지가 90도로 꺾이고 중지와 검지도 휘어져 기형이 돼 있었습니다.

잘 드는 가위 하나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아내.

아내의 그 고생을 짐작하고도 남았던 남편은 그때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잊지 못해 온세상 좋은 가위란 가위를 죄 모아다 아내에게 바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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