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매화 앞에서/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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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철 [shin765] 쪽지 캡슐

2003-04-14 ㅣ No.2614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

 

시를 읽다가 문득 지난 주일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옆집과의 분쟁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해결되겠지만

<꽃 파는 아줌마>와의 분쟁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저를 모르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목숨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사탄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일이

<안타깝네요.>

 

박기주 신부님이나 김영일 신부님이 계실 때에는,

<죄송하지만,> 성당에 어떤 활기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세상을 많이 잘못알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91년 12월 영세 후에 과연 신앙에 있어 어떤 성장이 있었는가

스스로 탄식만 나오네요.

 

<죽기를 각오해라>

<알고나 죽어라>

이런 말이 제 운명일 수 있다고 알고 지냅니다.

 

그러나 더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의 믿음같군요.

 

<이제 살았어.> <이젠 어느 정도 안전해> <살았다.>

이런 말도 있군요.

 

*********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정말 그렇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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