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2동성당 게시판

귀본당으로 전입하신 이정일 명혁다미아노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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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남 [ynjin] 쪽지 캡슐

2002-02-03 ㅣ No.5420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년동안 송파동에서 살다 다시 광주 봉선동으로 최근 1월에 전출 간 진용남 금구 입니다. 자양 2동의 교우도 아니면서 불쑥 제가 나타난 이유는 다름아니오라 평소 존경해오던 형제님께서 귀 본당으로 전출함에 따라 그 분께서 광주 교구 주보인 "빛고을"에 남긴 글을 여러분께 올립니다. 부지런한 일꾼을 맞아들이신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올립니다.

 

 

 

 

 사랑이신 주님! 봉선동 성당에서의 지난 12년동안 저와 저희 가족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봉오리를 맺었다고 할 수 있으며, 제 아내 엘리사벳은 초등부 아이들의 좋은 좋은 교리교사로 계속 봉사하렸으며, 큰 애가 초등학교에서 대학 진학 중 군입대까지, 작은 애가 유치원에서 대학 진학까지, 초등학교 때는 복사를하며 애들이 꿈꾸고 성장했던 많은 부분을 봉선동 성당과 연계되어 생활하였습니다.

 

 

 

 1990년 초봄 천막성당에서 주교님을 모시고 장용복 주임신부님께서 부임 첫 미사를 봉헌하시던 날 "군종 신부일때 군복무 신자를 모아놓고 미사를 하던 중’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며 신자들을 봤을 때 일곱명 밖에 되지 않아 너무 어색하였는데 이곳에서도 첫 강복이 그렇게 되질않을까 걱정하였는데 많은 교우 여러분이 함께하여 마음 든든합니다. 우리모두 힘을 모아 좋은 성전을 주님께 봉한합시다."라는 강론으로 시작하여 유난히도 비가 많았던 그해 봄, 여름은 그야말로 진흙과의 전쟁이었습니다.

 

 

 

 미사때마다 가마니를 맨바닥에 까는 작업과 친분을 도모하기 위한 차 봉사로부터 시작된 대건회에서는 성당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봉사와 친목으로 끈끈하게 맺어 졌습니다. 성당 터에 꽃동산   꾸미기, 건물 터에 새로 구입한 구가옥 철거 작업, 구가옥 둘레에 심어져 있던 몇 십년은 됨직한 태자나무 제거는 서툴은 회원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몇 번씩 튕겨져 나오는 전기톱과 싸우며 구슬 땀을 흘리던 일, 몇 달 동안 잘 마른 탱자나무를 정월 대보름에 불을 피우며 윷놀이를 하던 중 불 길을 본 어느 주민의 신고로 소방차가 출동하여 담너머에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추은 날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던 일은  추억 중에서도 백미였습니다.

 

 

 

 매년 한 두차례 치러졌던 건축기금 모금 바자회에서는 불침번 근무와 정리작업으로 대건회원의 잠 못 이루는 봉선동이 되어 심오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연례행사인  사순피정, 봄야유회, 여름 단합대회의 무안 조금나루터, 가을 성지 순례, 겨울 친목회, 명절 상품 판매 등 봉선동 성당에서의 생활은 대건회를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제 이 곳을 떠나 먼 곳으로 이사하여 그 곳 생활에 적응하다보면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교우들, 나와 나의 아내 엘리사벳의 대자 대녀들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점차 잊혀져 버릴 것만 같은 안타까움과 서운 함에 콧날이 아릿해지며 눈시울이 젖어 옵니다. 이제 정다운 봉선동 성당과 정다운 사람들을 사진첩으로 간직하려합니다.

 

 

 

 영성적인 그리스도인과 움직이는 사목회를 강조하시는 본당 고재영 신부님은 성장하는 본당의 가장 적합한 시기에 오셨습니다. 신부님을 필두로 영성적으로 더욱 성숙된 본당이 되시그를 또한 모든 분들께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이정일 명혁다미아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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