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우리들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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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5-04-01 ㅣ No.3969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에서 - 한 20여년 전, 친구한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명에서 백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OO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도 하고 괜히 혼자서 가슴을 설레어도 봤지만 그냥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1960년대만 해도 농촌교회의 새벽기도는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전깃불도 없고 석유 램프불을 켜놓고 차가운 마루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했던 기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이렇게 욕심없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루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 60년대는 참 가난했다. 그러나 그때의 교회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 당시의 교회 회계장부를 들춰보면 누가 몇백원 빌려갔다가 언제 갚았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어려운 교인들에게 교회재정에서 꾸어주고 되돌려받기도 했던 것이다. 가난한 전도사님의 사례금은 말한 나위 없이 부족했고 심지어는 좁쌀 한말, 쌀 몇되가 전부일 때도 있었다. 전도사님은 손수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때고, 무너진 교회담장을 쌓기도 하고 우물을 손수 팠다.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 상례였고, 그래서 교인들과 훨씬 인간적으로 사귈 수 있었다. 청년들은 밤마다 교회 문간방에 모여 가마니도 치고 책읽기도 했다. 밤늦도록 일하다가 고구마를 삶아 먹기도 하고 날무우를 깎아 먹기도 했다. 예배시간에 헌금봉투에 이름을 적어 바치는 그런 외식적인 것도 없었고, 오히려 남에게 알려질까봐 부끄러워했다. 물질이 풍족하지 못해 거의가 몸으로 봉사했고 마음으로 정을 나눴다. 이래서 그때의 기독교는 우리 한국민의 정서를 크게 다치지 않고 소리없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이야기 하지만, 샛들이라는 마을은 50여호가 살고 있는 산골 외딴 곳이다. 교회가 들어온 지 백년이 가까웠는데, 60년대까지만 해도 그 마을 전체가 지상천국이었다. 언덕배기와 산비탈로 옹기종기 모인 초가집과 함석지붕의 교회당이 있었다. 도둑 없고, 술 담배 먹는 사람이 없고, 고함을 치거나 욕설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그 마을엔 보릿고개가 없었다. 집집마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토를 가졌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옛날 보릿고개 때 굶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 까닭은 농토가 없는 가난한 소작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지주들은 흉년을 모르고 보릿고개도 없었다. 오늘날 가난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나라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백인 선진국들의 침략과 약탈로 인해 빚어진 가난이 계속 이어져온 까닭이다. 어쨌든 교회는 70년대에 들면서 갑자기 권위주의, 물질만능주의, 거기다 신비주의까지 밀려와서 인간상실의 역할을 단단히 했다. 조용히 가슴으로 하던 기도는 큰 소리로 미친듯이 떠들어야 했고, 장로와 집사도 직분이 아니라 명예가 되고 계급이 되고 권력이 되었다. 같은 목사님인데도 큰 교회 목사님과 작은 교회 목사님에 대한 차별이 생기고, 도시교회 목사님과 농촌교회 목사님에 대한 인격적인 차이까지 생겼다. 인간차별은 평신도들까지도 서먹서먹하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인사를 해도 마음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상대가 없어졌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이용하여 출세와 권력과 돈을 얻으려 하고,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전부가 되었다. 예수 믿어 삼년 안에 부자 못되면 그건 문제교인이 된다.

    부흥사들의 억양은 우리말의 발음까지 비뚤어지게 해놓았다. 특히 “믿습니다”는 “믿쑵니다”로 “예수님 이름 받들어”는 “예슐룸 받들어”로, “사랑”은 “샤랑”으로…. 글로는 이루 다 기술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된 억양들이, 익숙해지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을 정도다. 성령을 받거나 은사를 받으면 말투가 그렇게 되는 것인지, 참으로 불손하기 그지없다. 시장에서 가짜약을 파는 약장수도 그렇게까지는 안한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만하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다고 했잖은가? 예수님은, 기도는 골방에 숨어서 하고, 더욱이 금식할 때는 머리를 빗고 절대로 남에게 티를 내지 말라고 했다.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하고 시장거리에서 떠들지 말라고 했다. 지금 교회는 어떤가? 선교를 한답시고 온 세계에 떠들고 다니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온갖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도 하나의 공해물로 인식된다면 빛과 소금은커녕 쓰레기만 배출해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번 반성할 틈도 없이 그냥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앞으로 앞으로 가고만 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의 실상을 안다고 했던가. 물질만능과 출세지향적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떤 빛으로 도움이 되었던가. 밤이면 빨갛게 높이 빛나는 십자가가 정말 교회의 빛인가. 성폭행에 음주에 교통사고에 입시지옥에 온갖 나쁜 것만 세계 일등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산과 강물은 쓰레기로 덮이고 도시의 하늘은 매연으로 가득찼다. 정말이지, 하느님을 더 이상 속이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온갖 해로운 화학약품을 섞어 만든 식품을, 포장만 그럴 듯하게 싸서 이름있는 상표를 붙여 팔아먹는 장사꾼처럼, 예수라는 상표만 붙은 가짜 기독교를 더 이상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나’라는 개별적인 개념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아주 강한 국민이다. 그래서 ‘나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 했고, ‘우리 마을’, ‘우리나라’라는 복수개념이 일상화되어 있다. 산에 사는 노루나 토끼가 마을에 내려오면 절대 잡지 않는다. 그들이 마을에 내려온 이상, 우리 마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집안에 삭고 있는 능구렁이도 우리집을 지켜주는 집지키미가 된다. 비록 돌아가신 부모님이지만 명절날이면 그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차례를 지낸다. 우리와 함께 먹고 한자리에 계신다는 따뜻한 마음씨는 죽음이란 시공을 초월한 정 때문이다. 이것을 미신이나 우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신성을 모독하는 짓이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 회개를 부르짖고, 정의를 부르짖고, 온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도, 수십만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어도, 인간에게 따뜻한 정(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성서를 수만 번 읽고 외워도, 수만명의 병자를 고쳐도, 일류 신학교의 박사학위를 받아도, 이런 소박하고 지극히 작은 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판순이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기를 낳고 쌀이 없어 굶고 있다니까 자기 집 용단지의 쌀을 퍼가지고 가서 산모에게 밥을 지어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용단지의 쌀은 단순히 용신을 섬기는 단지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비상식량 역할도 했던 것이다. 성주단지의 곡식도 마찬가지다. 흉년이 들면 그 곡식을 함께 나누어먹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름다운 관습이 참으로 많다. 가족 중에 누군가 먼길을 떠나면 그날부터 끼니마다 밥을 한그릇씩 떠놓는다. 그 떠놓은 밥을 우연히 집에 찾아오는 나그네가 있으면 기꺼이 대접한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도 일단 집에 찾아온 손님은 박대하지 않고 먹이고 재워준다. 좀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아예 사랑채를 비워놓고 나그네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들판에서 점심을 먹다가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으면 큰 소리로 불러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렇듯 나누는 일은 철저했다. 조상에게 제사지낸 음식마저도 절대 혼자 먹지 않고 이웃끼리 나눠먹는다. ‘고수레’로 들판에 던진 음식은 벌레도 먹고 새도 먹는다. 가을 감나무 꼭대기의 까치밥과 까마귀밥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과의 사랑이다. 한국의 모든 교회는 이런 것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서구인들이 마음대로 변질시켜 놓은 예수의 참된 복음을 깨닫는다면, 창조 이래 이 땅에서 역사하신 하느님의 숨결을 금방 찾아낼 것이다. 나는 지금 20여년 전에 내가 구상하고 꿈꿨던 교회는 벌써 전에 잊었다. 교회는 새삼스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떳떳하게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살고 싶을 뿐이다. 하느님은 그것을 원하셨기에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서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며 그것을 위해 피흘려 희생하신 것이다. 이 땅위의 진짜 우상과 마귀는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다. ♬ 하늘 위에도 그대의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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