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성당 게시판

학교를 아이들의 천국으로 가꾸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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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수 [yds720] 쪽지 캡슐

2001-06-02 ㅣ No.594

<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다 건강을 잃고 투병중이신 문관식 선생님의 쾌유를 빌며-

 

 

< 스승과 제자 함께 울었다…초등학생 암투병 교사에 눈물편지>

 

“선생님. 저 3학년 상묵이에요. 2학년때 많이 떠든 거 죄송해요. 병이 빨리 나으셔서 운동장에서 달리기해요. 선생님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선생님. 제가 동상을 타서 자전거를 받았어요. 그런데 다리가 짧아 페달을 밟을 수가 없어요. 빨리 오셔서 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주세요. 선생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새로 오신 선생님과 공부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편지를 읽는 아이들의 볼을 어루만지던 교사의 손이 가늘게 떨리며 순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30일 오후 전남 여수시 화정면 여수요양병원.

 

남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병원 1층 응접실에서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 어린이들이 병색이 완연한 50대 환자 곁에서 편지를 읽고 있었다. 환자는 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 학교 문관식(文官植·53)분교장.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은 충효분교는 최근 전교생 36명이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전국어린이글짓기대회에 나가 이중 14명이 입상해 화제가 됐던 ‘도시 속의 산골학교’.

 

당시 으뜸상을 받은 3학년 소영이는 전교생이 쓴 한묶음의 편지와 문교사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대신 받은 ‘지도교사 상장’을 내보였다. 어린이회장인 6학년 옥현이는 ‘선생님 건강하세요’라고 쓰여진 장미꽃 바구니와 카네이션 한송이를 문교사의 품에 안겼다.

 

학교에서 개구쟁이로 소문난 5학년 천희는 운동장 텃밭에서 딴 완두콩 한 보따리를 선생님께 건넸다.

 

32년간 교직에 몸담아온 문분교장은 자연의 품 속에서 때묻지 않은 동심을 어루만져 아이들의 시심(詩心)을 키워줬고 폐교가 되다시피 한 분교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가꾸었다.

 

그가 99년 9월 충효분교에 부임했을 때 학교 건물 벽은 곳곳이 곰팡이가 피고 싸리나무 울타리는 키가 자랄 대로 자라 창문을 가릴 정도였다.

 

그는 휴일도 잊은 채 학교일에 매달렸다. 학교 진입로를 닦고 페인트로 건물 곳곳을 단장했다. 방학 동안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와 잡초로 우거진 동산을 야외 학습장으로 가꾸고 풍물교실까지 만들었다.

 

과로 탓이었을까. 날로 건강이 악화되자 지난 스승의 날, 마지막일지 모르는 수업을 끝내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란 선고였다. 그는 항암치료를 포기한 채 요양병원행을 택했다.

 

“무리한 탓에 병을 얻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학교를 아이들의 천국으로 가꾸고 싶었는데….”

 

자신의 앞날을 예감한 탓일까. 문교사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쓴 교육수기에서 이렇게 적고있다.

 

“난 간종양이 무엇인줄 잘 안다. 인생은 어차피 누구나 한정되어 있다. 풍물실, 체육실, 운동장, 연못의 우렁이, 뒷밭의 콩들, 그리고 피붙이 같은 아이들…. 모두가 나를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지난 여름 필요 없는 나무를 베어버린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아이들 앞에 다시 서고 싶다….”

 

< 동아일보 2001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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