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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등과 piety(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1444_piety Decalogue 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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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8 ㅣ No.1681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게시글 번호의 순서대로, 즉, 작성 날짜 순서대로,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또한 클릭하여 살펴 보십시오

 

질문: 영어로 "piety"로 번역되는 "pietas" 라는 한 개의 자연적 윤리덕(moral virtue)이 지중해 지역 문화권에 널리 알려진 시기는 언제부터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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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원 출처: http://trinitas.mju.ac.kr/frames/fiatlux2000.jpg  

 

질문: 영어로 "piety"로 번역되는 "pietas" 라는 한 개의 자연적 윤리덕(moral virtue)이 지중해 지역 문화권에 널리 알려진 시기는 언제부터인지요?

 

1. 들어가면서

이번 글에서는,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이 지중해 지역 문화권에, 얼마나 널리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한 개의 중요한 자연적(natural) 윤리덕(moral virtue)으로서, 마음의 틀(the fame of mind)/사고의 틀(the frame of thought)의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게시글 번호의 순서대로, 즉, 작성 날짜 순서대로,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또한 클릭하여 살펴 보십시오

 

1-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끝까지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자구적 어의(literal sense)에 대한 고찰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은 "pietas(piety)"기원전 8세기에 역사에 등장하는 로마(Rome)의 가정 교육에 있어, 자녀들의 가르침에 포함된, 대단히 중요한 덕(virue)[즉, 윤리덕(moral virtue)]이었음에 대한 문헌 출처들을 또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바로 위의 제1-1항에서 정의된 개념이 지중해 지역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을 고찰하는데, 될 수 있는 한, 연대순으로 나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2.

2-1. 구약 성경의 창세기 11,28.31; 15,7; 느헤미야서 9,7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1), 아브람(Abram)은 다신교 지역인 그의 고향,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커다란 성읍이었던, 칼데아의 우르(Ur of Chaldeans)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이끌어 내셨고, 그리고 그는 하란에서 처음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렀는데(창세기 12,1-6), 그 시기는 기원전 1850년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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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다음의 NAB(New American Bible), 느헤미야 9,7을 참고하라: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PC5.HTM#6M

 

(*2) (i) 이 연대는, 예를 들어, 다음에 있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수석 편집자에 의한 창세기 입문에서도 이와 같이 서술되고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intro_Genesis_AF.htm

(발췌 시작)

From this text and from non-biblical documents we learn that around 1850 B.C. a man by the name of Abraham, the son of polytheist parents, a shepherd living in Ur of the Chaldees, moved with his family to a new land, Canaan. He did so because of his unconditional faith in a calling he received from God, a calling which had nothing to do with any merit on his part.
(이삳,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3월 7일]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칼데아의 우르(Ur of Chaldeans)라고 불리는 성읍이, 통상적으로 알려진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번성한 항구 도시가 아니고 아브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떠난 지역인 하란의 북부에 위치한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한 성읍일 수도 있다는 역사학자인 Prof. Gary Rendsburg (the Blanche and Irving Laurie Professor of Jewish History in the Department of Jewish Studies at Rutgers University)의 논문을 읽을 수 있다:

https://www.thetorah.com/article/ur-kasdim-where-is-abrahams-birthplace 

 

참고: https://jewishstudies.rutgers.edu/people/core-faculty/gary-a-rendsburg 

[이상, 2023년 3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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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은 함무라비 법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저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기원전 18세기의 바로 이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에 적힌 내용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에 대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The prologue consists essentially of a hymn of glory to Hammurabi (Wiseman, 1962), announcing his divine election to kingship and praising his piety. Hammurabi is concerned to establish "equity" (misarum: Sumerian: nigsisa) in the land, "to destroy the wicked and evil so that the strong do not oppress the weak" (raggum u senam ana hulluquim dannum ensam ana la habalim). The prologue then accounts his beneficent accomplishments on behalf of the population and local gods of various cities under his control, and it portrays the general prosperity that his reign will bring to all of Mesopotamia.

 

이 서문은, 왕권에 함무라비가 신성하게 선택되었음을 선포하는 그리고 함무라비의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을 찬양하는, 함무라비에 대한 한 개의 영광의 찬미가로 본질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Wiseman, 1962). 함무라비는 토지에 있어 "공평(equity)"(misarum: Sumerian: nigsisa)을 제정하고,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악한 자(the wicked)들과 악(evil)을 파괴하는 데"에 관계하게 됩니다(raggum u senam ana hulluquim dannum ensam ana la habalim). 그러고 나서 이 서문은 그의 통제 아래에 있는 다양한 도성들의 주민과 지역 잡신(local gods)들을 대신하는 그의 자선심 많은 성취들을 설명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따라서,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라는 한 개의 자연적 윤리덕이 기원전 18세기메소포타미아 지역 문화권에서 이미 마음의 틀(the frame of mind)/사고의 틀(the frame of thought)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 바로 위의 제2-2항에서 말씀드린 바에 대하여서는, 실제로, 다음의 출처에 있는, 영어본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을 읽도록 하십시오. 함무라비가 자신의 나라의 잡신을 어떠한 태도로 섬겼는지, 그리고 임금으로서 자신의 신민들을 어떠한 태도로 섬겼는지를 읽을 수 있는데, 위의 제1-1항에 안내된,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라는 한 개의 자연적 윤리덕의 정의(definition)를 만족하는 실천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ancienttexts.org/library/mesopotamian/hammurabi.html

 

2-4.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에 613개의 계명들로 이미 구분되어 나열되었던 모세 오경의 율법들이 요약된 것이 십계명(Decalogue, Ten Commandments)들인데, 그런데 이 열 개의 계명들 중의 일부는, 바로 위의 제2-2항에 그 영문본 출처가 제시된, 기원전 18세기의 다신교 지역이었던 바빌론 제국함무라비 법전(the Code of Hammurabi)에서도 언급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2-5. 이제,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아래로 내려가면서, 끝까지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4_eusebeia_JP_II.htm <----- 필독 권고

 

기원전 13세기의 "십계명(Decalogue, Ten Commandments)들"이,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훨씬 더 명확하게 서술된정의(justice, 의로움)에 속하는 윤리덕인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에 기인하는 열 개의 구체적인 윤리적 규범들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기원전 13세기 경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자연법인 "십계명"들을 상기시켜 주실 때에, 그 당시의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문화와 전통 안에서 그리고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틀(the frame of mind)/사고의 틀(the frame of thought) 안에서 "십계명"들을 상기시킨 것인데, 지금까지 고찰한 바로부터, 바로 이 마음의 틀/사고의 틀이, 다신교 지역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하는지중해 지역 문화권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위의 제1-1항에서 그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정의(definition)를 말씀드린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이었음을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

3-1.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도시 국가였던 아테네 시민들이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399년)에게 내렸던 사형 선고의 죄목이 "impiety [asebeia, 불경죄/신성모독, 즉, 아테네의 잡신(gods)들을 향하여 정당한(due) piety[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의 제시(提示) 불이행(不履行)(failure to show)]"이었음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0.htm <----- 필독 권고

 

3-2.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였던 아테네(Athens)에서 "impiety [asebeia, 불경죄/신성모독, 즉, 아테네의 잡신(gods)들을 향하여 정당한(due) piety[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의 제시(提示) 불이행(不履行)(failure to show)]" 라는 동일한 죄목으로 아테네로부터 비난을 받았거나, 추방을 당하였거나, 혹은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 중에 어떠한 자들이 있었는지를 함께 고찰하는, 바로 위의 제3-1항에 이어지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취급을 받았던 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5.htm <----- 필독 권고

[제목: impiety 2 -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아테네]

 

3-3.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제1독서(사도행전 17,15.22-18,1)로 듣게 되는 바는. 성 바오로(St. Paul)의 두 번째 선교 여행 기간(기원후 50-52년) 중에 발생하였던, 성 바오로에 의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의 선교 내용의 일부인데, 특히 성 바오로가 사도행전 17,22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듯이, 고대 그리스 시인(poets)들에 의하여 창조되었던,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올림푸스 산의 잡신(gods)들에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심(religion)이, 소크라테스의 죽음 후 약 450년 이후인 기원후 50년 경까지도, 계속하여 유지되고 있음을 또한 바로 위의 제3-2항에 안내된 주소에 있는 글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상, 그리스도의 공생활 시기 직후의 시점까지, 적어도 1,80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이라는 자연적 윤리덕이 지중해 지역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universally) 마음의 틀(the fame of mind)/사고의 틀(the frame of thought)의 역할을 해 왔음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였습니다. 

 

이 글에 이어지는 글에서는,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 중에서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pietas)"이라는 자연적 윤리덕이 마음의 틀(the fame of mind)/사고의 틀(the frame of thought)의 역할을 해온 바들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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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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