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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29 아름다운 쉼터(모두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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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9-29 ㅣ No.512

모두가 스승이다(노회찬, ‘행복한 동행’ 중에서)

1992년. 2년 6개월 만에 만기 출소한 나에게 바깥세상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어두운 밤, 길 잃은 배처럼 아무리 찾아도 등댓불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에게 푸념처럼 말했다. 믿고 따를 만한 스승이 없다고, 온화한 성품의 선배는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그러나 누굴 스승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지 말하진 않았다.

사실 그때 나는 영웅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무언가 막힌 길을 뚫어 낼 만사형통의 완벽한 지도자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느새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거나 배움이 짧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정치가 가야 할 길을 배우고 시장 좌판 할머니의 갈라진 손에서 경제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배우곤 한다.

그렇다.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내가 갖지 못한 것, 배워야 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그것을 발견해 내고 배우려 하기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스승’을 안이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이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모든 존재의 걸음걸이, 앉는 모양새까지 삶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세계 최초로 8000미터급 정상을 16군데나 오른 것으로 유명한 등산가 엄홍길 대장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물었다.

“세계 최고봉을 다 올랐는데 아직 올라야 할 산이 남아 있는가요?”

엄 대장은 이렇게 답했다.

“낮은 산 역시 그 나름대로 오르는 묘미가 있죠. 산이 낮다고 해서 오르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높든 낮든 산은 산이고 거기서 배울 것이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

좋은 환경, 좋은 사람에게서만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제자는 스승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서든 소중한 진리와 삶의 이치를 터득해 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제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제자가 많은 스승보다 스승이 많은 제자가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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