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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 아름다운 쉼터(호기심을 잃어버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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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10-01 ㅣ No.514

호기심을 잃어버렸다는 것(김태훈, ‘김태훈의 랜덤 위크’ 중에서)

직업적인 글쓰기와 방송 출연에 허덕거리는 요즈음, 언젠가부터 음악과 영화, 책 읽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듯하다. ‘쿵푸 팬더’를 보면서도 주제곡이 어떤 시점에서 나올지 신경 쓰다 보니 잭 블랙의 익살 넘치는 목소리 연기와 귀여운 판다의 재롱도 백 퍼센트 즐기지 못했다. 성석제의 ‘유쾌한 발견’을 읽는 동안도 이 화려한 상식의 세계를 어떤 프로그램에서 써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느라 정작 책을 다 읽었을 때는 그런 책을 읽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이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언젠가 주말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 중인 배철수 선배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디지털 장비가 갖추어져 멘트만 따고 음악은 파일로 붙여도 되지만, 배철수 선배는 모든 녹음을 실시간으로 음악을 들으며 진행 중이셨다.

“멘트만 녹음하시면 녹음 시간이 절반으로 줄 텐데 왜 음악을 다 듣고 계세요? 더구나 다 아시는 노래들을요.”

배철수 선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DJ가 듣지도 않는 음악을 누구에게 들려준다는 거냐?”

생각해 보면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율 부리너의 이름은 엄마 몰래 보던 흑백 TV에서 알게 되었고, 존 콜트레인의 음악은 클럽과 재즈 페스티벌을 돌아다니며 세례 받았다. 그곳엔 순수한 쾌락이 있었다. 밥 먹고 살기와는 전혀 무관했기에 행복할 수 있었고, 행복했기에 보이고 들리고 기억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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