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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아름다운 쉼터(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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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10-20 ㅣ No.522

거짓말(조인선, ‘좋은생각’ 중에서)

작년에 유치원 다니는 큰딸이 원생 대표로 답사를 했다. 그래서 올봄 동시 낭송 대회 때, 또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아이에게 혹시 상 받았느냐고 물으니 웃으며 받았다고 했다. 보여 달랬더니 선생님이 “가져가면 잃어버리니 유치원에 두고 가라.” 하셨단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어머님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보라고 하셨다. “부모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나 봐요. 예쁘게 봐주세요.”

일곱 살이 되도록 딸아이의 거짓말은 처음이라 충격이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나도 거짓말을 많이 했다. 소를 키우고 생활하는지라 장사꾼들과 거래하는데 새끼를 두 번 낳았다고, 비육 기간은 몇 개월이라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거짓말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돈이 뭔지 양심에 슬픔도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노총각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이 급한 터라 두 번째 만남에 기대가 컸는데 상대방은 내 기대와 정반대로 미안하단 말을 전하러 나왔다고 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화부터 나서 “어머님이 아픈데도 당신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라고 거짓말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도망쳤다. 그녀가 자리에 나온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했는데 몹시 후회스럽고, 지금까지 그녀를 소개해 준 후배 볼 낯이 없다. 사랑보다 욕심이 앞서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뒤 서른여덟에 국제결혼을 했다. 아내는 베트남 사람이다. 몇 년 전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방송국에서 아내의 학력을 묻지도 않았는데 대졸이라 했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내는 결혼한 지 3년이 되어서야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고통스럽게 고백했다. 그때 나는 아내의 자존심을 보았고 사랑을 보았다. 내 헛된 허영심도 보았다.

그동안 욕심 담긴 말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시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 그래야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다. 그런데 큰딸의 거짓말은 그대로 시가 된다. 감동을 준다. 돌이켜 보니 그 마음이 사랑이라면 나의 따뜻한 한마디에 세상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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