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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다연중7주일> mer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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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8 ㅣ No.2356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5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묵상 동영상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 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56.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7/다해대림제3주일.mp4 18:01-19: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01-19:50[즉, 18분01초-19분50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alism_231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 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 필독 권고

 

복습 2: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2:38[즉, 32분38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iety"][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301.htm]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한문 문화권 안에는 없는 개념인 것으로 파악되기에,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 

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시기(jealousy), 질투(envy): 15:48-16:4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48-16:48 [즉, 15분48초-16분4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envy_2340"]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시기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질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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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6: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ii) 교의적으로 ‘하느님의 외 아드님(성자, Son of God)’ = ‘(유일하신) 말씀(the Word)’ = ‘(영원한) 지혜(eternal Wisdom)’ = ‘로고스(Logos)’이 성립함에 대한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8) 해설의 각주에 주어져 있으니 참고하라. 혹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7.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 여기를 클릭한 후에, [꼭필독] 라벨이 붙은 글들을 꼭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v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v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지 아니 한, 즉,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되지 않은, 따라서 대부분의 개신교회 측의 세례가 포함되는,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ix)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ealed_character_23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5:22[즉, 55분22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ealed_character"]

 

(a)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personal) 친밀한 대화’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영혼(soul)을 그 형상(form)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서 훼손된, 자신의 형상인(formal cause)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 함이며, 그리고 바로 이 형상인의 완미한 회복(perfect recovery)을 위하여, 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deacon)에 의하여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새겨지는 ‘인호’(印號, the sealed, character)를 받아야 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b)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주관하시는 신성적(divine) 인과 관계의 지속적 형성에 있어, 인간/사람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자신의 형상인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만 비로소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에의 참여자 및 수혜자가 될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자연계의 물리 법칙에서처럼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resonance)이, 하느님과 사람/인간 사이에 ‘영적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spiritual resonanc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라는 한 개의 기적(mir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또한 은총(grace)이라는 도움에 의하여 ‘악습(vices)들’이 ‘덕들’(virtues)로 교정되는 습관에 있어서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어, 하느님 쪽으로 ‘회심’/‘윤리적으로 변화’(‘conversion‘ to God)라는 한 개의 윤리적 기적(a moral mir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유관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weakness_229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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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5/다해연중제5주일.mp4 <----- "은총"의 정의(definition): 12:00-12:41; 47:10-48:58; 50:50-56:0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04:11과 18:59에서 "팔삭둥이"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칠삭둥이"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18:59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형이하학적"으로 교체합니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2:00-12:41; 47:10-48:58; 50:50-56:06 [즉, 12분:00초-12분:41초; 47분:10초-48분:58초; 50분:50초-56분:0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race_2343"]

 

복습 1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번역 용어인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출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1.htm [출처]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 꼭 필독 권고 

 

%%%%%%%%%%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번역 표현의 정의(definition),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34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복습 14:

가.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4/나해그리스도왕대축일.mp4 [오류 정정: 이 동영상 중의 육성(肉聲) 설명에서, (i) 18:29-18:36[18분29초-18분36초] 사이에 말해진 "하스모니아 왕조""셀레우키드 왕조"로, (ii) 31:26-31:29[31분26초-31분29초] 사이에 말해진 "예수님께 제몰로"를, 교재 본문과 동일하게, "하느님께 제물로"로, 그리고 (iii) 33:50-35:23[33분50초-35분23초] 사이에 말해진 "순음력""태음력"으로, 바로 잡습니다.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주일_전례성경_학습자들을_위한_입문자료_모음_2007-10-09.pdf]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_2305.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6:30-39:15[즉, 36분:30초-39분15초]를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 (*)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_2305"]

 

나.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4:31[즉, 04분31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ion"][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情(정, passion)과 욕정(欲情, lust)의 차이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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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교만(pride): 14:30-15: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ride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30-15:13 [즉, 14분30초-15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ride_2340"]

 

복습 22: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ride.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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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허영(vainglory): 15:13-15:48; 기적, 망망, 허영: 30:08-37: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vainglor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13-15:48 30:08-37:13[즉, 15분13초-15분48초 30분:08초-37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vainglory_2340"]

 

(ii) ‘교만’의 딸(daughters)들 중의 하나로서, 그 자체로는 소죄(venial sin)로 분류되는, ‘허영(vanity, vainglory)’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2_vainglory.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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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2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공생활 전후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ChristHR.jpg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the_journey_&_deeds_of_Jesus_&_scriptual_index.htm <----- 되도록 자주 참조하라

[주: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행적들이, 4복음서들 중의 근거 구절들의 제시와 함께,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임. 확대하여 보도록 하라. 다만, 1881년에 출판된 지도이다보니,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 오류, "Coasts of Judea"(마태오 19,1; 마르코 10,1) 표기 오류 등의 오류들이 있음]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를 고고학 고증를 거쳐 찾아내는 과정 등에 대한 글[제목: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마태오 19,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마르코 10,1)???; 게시일자: 2021-10-02]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복습 24: 나해 연중 제30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9/나해연중제30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1:00[즉, 11분0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cupiscenc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사욕편정’(慾偏情, concupiscence)이 죄가 아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사악할 사; 주: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 수록된 옛 발음은 ) 낱글자를 사용하는 ‘慾偏情’이라는 한자표기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단(heresy)으로 단죄된 마르틴 루터의 주장에 동의하여, 바로 이 ‘사욕편정’이 죄임을 말하기 때문에, 명백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부제: 죄가 아닌, 죄 쪽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말하는,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등에 대하여;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cupiscence_229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upiscenc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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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2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5,3; 루카 복음서 6,20에서, "복되도다" 혹은 "복되어라" 대신에, 1970년대"공동번역성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행복하여랴!"로 번역된 표현이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임을 지적하는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essed_are_2350.htm <----- 필독 권고

 

 

<다연중7주일> 다해 연중 제7주일

 

1사무엘 26,2.7-9.12-13.22-23; 루카 복음서 6,27-38; 1코린토 15,45-49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 I, 제255-266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1사무엘 26,23ㄱ)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복음서 6,35-36)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1코린토 15,45ㄴ)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오늘의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에서 교재 본문 중의 특정 내용들에 대한 추가 설명들이 주어지고 있는 부분들:  

 

*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및 교리 메시지: 01:45-03:00-14:55; 48:40-49:32

* 오늘의 제1독서 입문: 34:59-39:57

* 오늘의 복음 말씀 입문: 42:50-44:11

* 오늘의 제2독서 입문: 49:38-51:43

* 오늘의 3분 복음/교리 묵상: 정(passions), 칠극, 윤리(morality): 14:55-23:07; 55;40-58;17; 23:20-23:58

* 완미하다(perfect)와 완전하다(complete)의 커다란 차이점: 06:11-09:10; 31:32-34:02 

* "사랑하다(to love)"라는 동사의 정의(definition): 24:43-26:24; 26:40-27:00; 30:04-30:23

* "마지막 아담", "새 하와",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총귀"/"총괄복귀": 26:24-26:40; 29:30-30:04; 34:02-34:58; 51:43-55:11

* 모음들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없는 히브리어: 26:40-28:10

* 복수와 보복의 차이점, 황금률, 애덕에 근거한 그 이상의 논리: 03:00-14:55; 30:23-30:39

* 하느님의 자비/애긍: 30:39-31:32; 46:16-47:43

* "거룩함"을 획득하기 위한 충분 조건 한 개(1요한 4,12): 31:32-34:02  

 

게시자 주: 바로 위의 특정 주제 목록에서, 초록색으로 굵게 표시된 특정 주제(topics)들 각각 및 입문들 등 나머지 사항들도, 바로 아래에 안내된 바처럼, 묵상 동영상 중의 특정 주제 시작 시간을 선택함으로써, 손쉽게 찾아 청취하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A. 모음들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없기 때문에 자음으로만 기록된 히브리어 성경이 기원전 3-2세기경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칠십인 역 그리스어 성경으로 번역이 될 때에 그리스어 모음이 추가가 되었던 관계로 칠십인 역 그리스어 성경이 더 두꺼워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서, 결국에 열왕기(사무엘서 포함) 및 역대기가, 각각 열왕기1-4서와 역대기 1-2서로 분책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문에 모음이 없는 히브리어 성경에 ‘모음 방점’들이 처음으로 추가된 것은, 기원후 9-10세기경에 갈릴래아 호수 서쪽 해변에 위치한 티베리아스(Tiberias)에서 편집되었던 유다교용 성경인 마소라본 히브리어 성경에서였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자료는 본 해설서의 부활 제3주일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21,1-19) 해설의 각주를 학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B.
(i)
유다 전통은 구약 성경의 예언서들을 다음과 같이 두 개의 소그룹들로 나눈다:

(1) 전기 예언서들(former prophets) 혹은 기록되지 않은 예언서들(non-writing prophets),
(2) 후기 예언서들(later prophets) 혹은 문서 예언서들(writing prophets).

유다 전통에 의하면 전기 예언서들은 여호수아, 판관기, 1&2사무엘, 1&2열왕기, 그리고 1&2역대기이다. 또한 유다 전통은 후기 예언서들을 대 예언서들(major prophets :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과 한 개의 책으로 처리된 12개의 소 예언서들(minor prophets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카, 나훔, 하바쿡, 스바니야,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로 구분한다.

 

(ii) 바로 위의 제(i)항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 연중 제4주일 제1독서 본문 해설 및 각주로부터 발췌한 것이며, 전기 예언서들에 대한 추가 설명들은 가해-II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입문 해설을 참조하고, 후기 예언서들에 대한 추가 설명은 바로 위의 다해 연중 제7주일 제1독서 입문 해설을 참조하라.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부록>>에서, 위의 제(i)항에서 말씀드린 차이점들을 비교하는 표를 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3.htm <----- 필독 권고

 

(iii) 가톨릭 교회의 전통 안에서, 전기 예언서들은 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historical writings)으로 간주되며, 구약 성경의 총 18개 예언서들 중에서 애가(Lamentations), 바룩(Baruch), 그리고 다니엘(Daniel) 등 3개의 예언서들은 유다 전통에 따른 분류인 후기 예언서들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타 사항들은 다음의 참고자료들을 보라.

 

참고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scripture_ot1.htm

참고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Heb_Xn_Bibles.htm,

참고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a_minor_prophet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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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복수와 보복의 차이점, 황금률, 애덕에 근거한 그 이상의 논리: 03:00-14:55; 30:23-30:39

 

[안내: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3:00-14:55; 30:23-30:39 [즉, 03분00초-14분55초; 30분23초-30분39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vengeance_vs_retaliation_2356"]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vengeance_vs_retaliation_2356.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동서고금의 윤리덕인 이 황금율(The Golden Rule)을 당신의 새 계명(요한 복음서 13,34) 안에서 완성하심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 등을 전달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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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사랑하다(to love)"라는 동사의 정의(definition): 24:43-26:24; 26:40-27:00; 30:04-30:23

 

[안내: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4:43-26:24; 26:40-27:00; 30:04-30:23 [즉, 24분43초-26분24초; 26분40초-27분00초; 30분04초-30분2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to_love_2356"]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o_love_2356.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D.

루카 복음서 6,27에서 말하는 ‘사랑하다’(to love)는, 소위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Christian love, charity, caritas, agape)의 동사형을 말한다.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6.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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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하느님의 자비/애긍: 30:39-31:32; 46:16-47:43

 

[안내: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0:39-31:32; 46:16-47:43 [즉, 30분39초-31분32초; 46분16초-47분4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divine_mercy_vs_human_mercy_2356"]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ivine_mercy_vs_human_mercy_2356.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F.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자비/애긍’, 즉, ‘신성적 자비/애긍’(divine merc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1.htm <----- 필독 권고 

 

(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자비’(慈悲)/‘애긍’(哀矜)(merc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이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rcy.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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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완미(完美)하다(perfect)와 완전(完全)하다(complete)의 커다란 차이점: 06:11-09:10; 31:32-34:02

 

[안내: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6:11-09:10; 31:32-34:02 [즉, 06분11초-09분10초; 31분32초-34분02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_vs_complete_2356"]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_vs_complete_2356.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G.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거룩함’(holiness), ‘성덕’(sanctity, santitas) 등의 의미/정의(definitions)들 등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33.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 필독 권고 

 

(i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애덕의 완미(完美)'(perfection of charity), 즉, ‘거룩함’(holiness)을 획득하기 위한 한 개의 충분 조건(a sufficient condition)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1요한 4,12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매우 중대한 의미 등에 대하여 다루는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 꼭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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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마지막 아담", "새 하와",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총귀"/"총괄복귀": 26:24-26:40; 29:30-30:04; 34:02-34:58; 51:43-55:11

 

[안내: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6:24-26:40; 29:30-30:04; 34:02-34:58; 51:43-55:11
[
즉, 26분24-26분40초; 29분30초-30분04초; 34분02-34분58초; 51분:43초-55분11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capitulation_2356"]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capitulation_2356.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새 아담’(New Adam), ‘새 하와’(New Eve) 등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4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20.htm [주: 마지막 부분] <----- 필독 권고 

H.

(a)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새 창조, 새 아담, 새 하와라는 용어들의 신학적 의미”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0.htm <----- 꼭 필독 권고  

 

(b)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開始)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c)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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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7.htm <----- 필독 권고 

 

J.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c_ot_7.htm <-----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The point of reference of today’s liturgy seems to be generosity: David’s generosity with Saul, who persecuted him and wanted to kill him. But David kept Abishai from killing Saul (first reading). We see the generosity of Christians with all human beings, to the point of being able to love one’s enemies (Gospel), thus imitating the mercy of the heavenly Father. Finally, we learn about the generosity of Jesus Christ who, being a life-giving spirit by virtue of his resurrection, lets us all share in his spiritual and heavenly condition (second reading).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오늘의 전례의 언급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관대(generosity)인 것 같습니다: 다윗(David)을 박해하였고 그리고 그를 살해하는 것을 원하였던 자인, 사울(Saul)에 대한 다윗의 관대. 사울과는 달리(but), 다윗은 아비사이가 사울을 살해하는 것을 삼가게 하였습니다 (제1독서). 우리는, 자신들의 원수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됨에 이르기까지, 인간들 모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관대를 보는데(복음 말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thus) [우리가] 하늘에 계신 성부 하느님의 자비의방(依倣)합니다(imitating). 끝으로, 당신의 부활 덕택으로 한 분의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써, 당신의 영적 및 천상 여건(spiritual and heavenly condition)을 우리들 모두가 함께 나누도록 허락하시는(lets)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대에 관하여 배웁니다 (제2독서).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The logic of making things even. In the Bible, this logic is under two different guises. The first consists in the order of justice, in dealing with a received evil. It is the law of retaliation: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Ex 21:24). When it was first formulated, it meant improvement, evolution on the practice of vengeance, which encouraged one to return the blow doubly. Justice demanded a return in kind of the evil received. This formulation is not Christian, and indeed Jesus teaches us to "offer no resistance to the wicked" (see Mt 5:38-42). Unfortunately, after twenty centuries of Christianity, there are many Christians who continue to apply the law of retaliation. The second guise found in today’s Gospel: "Treat others as you would like people to treat you." In the Old Testament, this "golden rule" is formulated in a negative way: "Do to no one what you would not want done to you." (Tob 4:15). The formulation used by Saint Luke is positive, and is not based on justice, but on love. It is a very good rule, for we all want the best for ourselves. Perhaps the rule could be formulated in the following way: "If you want to be treated by others in the best possible way, then treat everyone in the same way." It is a fully Christian formulation, but still imperfect and incomplete. It is imperfect because the point of reference is the I, the ego. It is incomplete because the expression "others", at least according to the mentality of Jesus’ contemporaries, refers to Jews and thus excludes non-Jews and enemies. The logic of making things even in the order of love is Christian, but the radical nature of our faith goes beyond the logic of equivalence and reaches the "logic of more".

 

사물들을 비등하게(even) 만드는 논리. 성경에서, 바로 이 논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외양(guises)들 아래에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어떤 받아들이게 되는 악을 다룸에 있어, 정의(正義)에 기인하는 질서(the order of justice)를 그 주된 부분으로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보복(報復)의 법(the law of retaliation)을 말합니다: "한 개의 눈은 한 개의 눈으로 그리고 한 개의 이는 한 개의 이로" (탈출 21,24).(*1) 이 법이 처음으로 정식화되었을 때에, 이것은, 당사자가 두 배로(doubly) 타격(blow)을 되돌려 주는 것을 격려하였던(encourated), 복수(復讎, 원수 갚기, 앙갚음)의 관습(the practice of vengeance)에 있어 진화(evolution)인, 개선(imporvement)을 의미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의 전통적] 정의(justice)는, 받아들이게 된 악(evil received)의 종류로, 한 개의 되돌려줌을 요구하였습니다. 바로 이 정식화는 그리스도의 가르침(Christian)이 아니며,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우리들에게 "사악한 자(the wicked)들에게 어떠한 저항(resistance)도 제공하지 말라"라고 가르치십니다 (마태오 복음서 5,38-42를 보라).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의 가르침(Christianity)으로 구성된 20 세기들 이후에, 보복(報復)의 법(the law of retaliation)을 적용하는 것을 계속하는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외양(the second guise)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루카 복음서 6,31). 구약 성경에서 바로 이 "황금율"(the golden rule)은 다음과 같이 한 개의 부정문의 방식(a negative way)으로 정식화되고 있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토빗 4,15).(*2)

 

성 루카에 의하여 사용된 정식화는 긍정적이며(positive), 그리고 [고대 사회의 전통적] 정의(justice)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랑(love, charity, caritas, agape)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정식화는 한 개의 매우 좋은 규칙인데,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가 우리들 자신들을 위한 최선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규칙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식화 될 수(could)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다른 이들에 의하여 최상의 가능한 방식으로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각 사람을 동일한 방식으로 대접하라." 이것은 한 개의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식화이나, 그러나 여전히 불완미하고(imperfect) 그리고 불완전합니다(incomplete).(*3) 이것은 불완미한데(imperfect) 왜냐하면 평가의 한 개의 기준(a point of reference)이 나(I), 에고(the ego)이기 때문입니다.(*4) 이것은 불완전한데(incomplete) 왜냐하면 "다른 이들"이라는 표현은, 적어도 예수님의 동시대인들의 심리 상태에 따르면 유다인들에 대한 언급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유다인이 아닌 자들과 원수들을 배제하기(exclude) 때문입니다. 사랑의 질서(the order of love) 안에 있는 사물들을 비등하게 만드는 논리(the logic of making things even)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Christian), 그러나 우리들의 신앙의 근본적 본성(radical nature)은 등가의 논리(the logic of equivalence)를 넘어서 나아가며 그리고 "더 이상의 것의 논리"(the logic of more)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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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탈출기 21,24에 기술되어 있는 바로 이 보복(報復)의 법(the law of retaliation)기원전 18-17세기함무라비 법전에 이미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80.htm <----- 필독 권고

 

(*2) 번역자 주: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동서고금의 윤리덕인 이 황금율(토빗 4,15)을 당신의 새 계약 안에서 완성하심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 등을 전달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4.htm <----- 필독 권고 

 

(*3) 번역자 주: 복습 14  및


G.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거룩함’(holiness), ‘성덕’(sanctity, santitas) 등의 의미/정의(definitions)들 등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33.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 필독 권고 

 

(i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애덕의 완미(完美)'(perfection of charity), 즉, ‘거룩함’(holiness)을 획득하기 위한 한 개의 충분 조건(a sufficient condition)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1요한 4,12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매우 중대한 의미 등에 대하여 다루는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 꼭 필독 권고 

 

(*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여기서 지적된 불완미함(imperfect)을 어떻게 극복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인,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분명하게 배척하는, 하느님, 나, 그리고 이웃 사이의 3자들 사이의 "인격주의"(personalism) 가르침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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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gic of more". In a certain way, there are figures in the Old Testament who live according to the logic of more, although the formulation of this logic is proper to Jesus Christ. Indeed, the first reading illustrates a truly generous gesture on the part of David towards King Saul, who was persecuting him and wanted his death. When David had the chance to kill him, he didn’t, "Because Yahweh has anointed him." Jesus formulates the "logic of more" in humanly disconcerting terms: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Give to everyone who asks you, and do not ask for your property back from someone who takes it" (Lk 6:27-28). The human mind asks us to hate our enemies, but Jesus asks us to love them. The human mind asks us to do evil to those who hate us, but Jesus asks us to do good to them. The human mind asks us to curse those who curse us, but Jesus asks us to bless them. The human mind asks us to expect that what we have loaned someone be returned to us, but Jesus asks us to loan things even if they are not returned to us. The human mind asks us to return slander with slander, but Jesus asks us to return slander with prayer. Here lies the purest essence of Christianity! All Christians must attend this school of Christianity, for I think that there are still many lessons for us to learn and live. In the second reading, we find the "logic of more", of generosity, in a new dimension: the dimension of eternity. The risen Christ who has vanquished death bestows upon us all the "logic of more", making us share in his life as the risen Christ. In other words, he gives us the gift of the ability to overcome death and live in a world governed by life and by the Spirit of God. Those who live out the essence of Christianity, which is charity, have the doors of new life open before them.

 

"더 이상의 것의 논리"(the logic of more). 비록 바로 이 논리의 정식화가 예수 그리스도에 고유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더 이상의 것의 논리(the logic of more)에 따라 산 인물들이 구약 성경 안에 있습니다. 정말로, 오늘의 제1독서는, 다윗을 박해하는 중이었던 그리고 그의 죽음을 원하였던, 사울(Saul) 임금 쪽으로 향하는 다윗(David)의 편(part)에 있는 한 개의 참되게 관대한 몸짓을 예증합니다(illustrates). 다윗은 사울을 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나, 그는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에게 이미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의 것의 논리"(the logicc of more)를 인간적으로 당황케 하는(disconcerting) 용어들로 다음과 같이 정식화합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루카 복음서 6,27-28.30). 인간의 마음(human mind)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원수들을 미워할(hate) 것을 요구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을 사랑할(love) 것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악(evil)을 행할 것을 요구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에게 선(good)을 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을 단죄하는/저주하는(curse) 자들을 단죄할/저주할 것을 요구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에게 복을 내릴(bless, 축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들에게 어떤 이에게 꾸어 준 바는 우리들에게 되돌아오게 될 것을 예상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꾸어 줄 것을, 비록 그들이 우리들에게 되돌아오지 않게 될지라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들에게 중상(slander)을 중상으로써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중상을 기도로써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의 가르침(敎)[Christianity, 즉, 그리스도교(敎), 즉, 基利斯督敎(기리사독교), 즉, 기독교(基督敎)]의 가장 순수한 본질이 놓여 있습니다!(*5)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Chirstianity)으로 구성된 바로 이 학교(school)에 출석하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들이 배우고 살아가야 하는 다수의 수업/교훈(lessons)들이 여전히 [바로 이 학교에] 있다는 생각을 제가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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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독교"(基督敎)라는 번역 용어가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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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제2독서에서, "더 이상의 것의 논리"(the logic of more)인, 관대(generosity)의 논리를, 영원의 양상 안에서(in the dimension of eternity) 이라는, 한 개의 새로운 양상 안에서(in a new dimension) 발견합니다. 죽음을 이미 정복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 위에 "더 이상의 것의 논리"(the logic of more) 모두[즉, 애덕(charity, caritas, agape)]를 수여하시어, 그리하여 그 결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당신의 생명(life)을 우리들이 함께 나누도록(share in) 하십니다(making). 다른 말들로, 당신께서 우리들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life)에 의하여 및 하느님의 거룩한 영(the Spirit of God)에 의하여 통치되는(governed) 한 개의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능력(ability)이라는 선물(gift)[즉, 애덕(charity, caritas, agape)]을, 제공하십니다.

 

애덕(charity, caritas, agape)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Christianity)의 본질(essence)을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실천하는(live out) 바로 그러한 자들은, 자신들 앞에 열려 있는 새 생명의 문(the doors of new life)들을 가집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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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7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7/다해연중제7주일.mp4 <----- 정(, passions)들의 정의(definitions)들, 칠극, 윤리(morality): 14:55-23:07; 55;40-58;17; 23:20-23:5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assions_2356.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55-23:07; 55;40-58;17; 23:20-23:58 [즉, 14분55초-23분07초; 55분40초-58분17초; 23분20초-23분5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assions_2356"]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370. 정(情, passions)들이 무엇인지요?
CCC 1762-1766, 1771-1772


정(情, passions)들은 느낌(feelings)들, 감정(emotions)들 혹은 감각들에 의하여 인지될 수 있는 욕구(sensible appetite, 감각 욕구)의 움직임(movements)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선(good) 혹은 악(evil)으로 인지된 바에 비추어 행동하거나 혹은 행동하지 않는 경향을 한 인격(a person)에게 가지게 하는, 인간 심리의 자연적 구성 요소들입니다. 주된 정(情, passions)들은 사랑(love, 愛)과 증오(hatred, 惡), 욕망(desire, 欲)와 두려움(fear, 懼), 기쁨(joy, 喜), 슬픔/후회(sadness, sorrow, 哀), 그리고 분노(anger, 怒)입니다. 가장 중요한(chief) 정(情, passion)은 선한 것들의 매력에 의하여 이끌리게 되는 사랑(love, 愛)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혹은 외견상의(real or apparent), 선한 바(what is good)만을 오로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1: 위의 설명에 나열된 일곱 개의 정(情)들은, 유교 한문 문화권에서 ‘사단칠정’을 말할 때에 언급되는, ‘칠정’으로서,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으로 구분되는 사람이 가진 7가지 정(情)들에 해당할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100_naver_7passions.htm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100_nate_7passions.htm 

 

불교에서 말하는 ‘칠정’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
참고 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krdic_naver_7passions.htm

 

주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들이 잘 기술되고 있는, 열 한 가지로 구분되는, ‘정’(passions)들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꼭 필독 권고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7_c1762.htm

 

CCCC 371. 정(情, passions)들은 윤리적으로 선한 것 혹은 악한 것인지요?
CCC 1767-1770, 1773-1775


정((情, passions)들은, 이들이 감각에 의하여 인지될 수 있는 욕구(sensible appetite, 감각 욕구)의 움직임(movements)들인 이상,(*) 그들 자체로는 [윤리적으로] 선하지도(good) 않으며 그리고 [윤리적으로] 악하지도(evil)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선한 행동(a good action)에 기여를 할 때에는 [윤리적으로] 선하나(good)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윤리적으로] 악합니다(evil). 이들은 덕(the virtues)들 안쪽으로 흡수될(taken up) 수 있거나 혹은 악덕/악습(vices)들에 의하여 오용될(perverted)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 바로 이 표현은, '감각 욕구'가 아닌 '다른 욕구'들이 또한 있음을 암시함에 주목하라. 예를 들어, 피조물인 천사들과 인간들에게, 소위 말하는, '죄'(sin)를 범함의 한 개의 결정적인 요건으로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당사자의 '의지(will)', 즉, '이성 욕구'(rational appetite), 즉, '지성 욕구'(intellectual appetite)가 또한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7_c1767.htm 

%%%%%%%%%%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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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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