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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다사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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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1 ㅣ No.2377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77.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묵상 동영상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 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77.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

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복습 0부터 복습 3까지 매우 간략한 복습: 01:05-10:33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views_0-3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1:05-10:33 [즉, 01분05초-10분3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views_0-3_2377"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7/다해대림제3주일.mp4 18:01-19: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01-19:50[즉, 18분01초-19분50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alism_231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 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 필독 권고

 

복습 2: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2:38[즉, 32분38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iety"][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301.htm]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한문 문화권 안에는 없는 개념인 것으로 파악되기에,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titude.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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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시기(jealousy), 질투(envy): 15:48-16:4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48-16:48 [즉, 15분48초-16분4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envy_2340"]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시기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질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 

복습 6: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ii) 교의적으로 ‘하느님의 외 아드님(성자, Son of God)’ = ‘(유일하신) 말씀(the Word)’ = ‘(영원한) 지혜(eternal Wisdom)’ = ‘로고스(Logos)’이 성립함에 대한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8) 해설의 각주에 주어져 있으니 참고하라. 혹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7.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 여기를 클릭한 후에, [꼭필독] 라벨이 붙은 글들을 꼭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v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v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지 아니 한, 즉,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되지 않은, 따라서 대부분의 개신교회 측의 세례가 포함되는,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ix)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ealed_character_23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5:22[즉, 55분22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ealed_character"]

 

(a)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personal) 친밀한 대화’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영혼(soul)을 그 형상(form)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서 훼손된, 자신의 형상인(formal cause)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 함이며, 그리고 바로 이 형상인의 완미한 회복(perfect recovery)을 위하여, 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deacon)에 의하여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새겨지는 ‘인호’(印號, the sealed, character)를 받아야 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b)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주관하시는 신성적(divine) 인과 관계의 지속적 형성에 있어, 인간/사람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자신의 형상인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만 비로소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에의 참여자 및 수혜자가 될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자연계의 물리 법칙에서처럼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resonance)이, 하느님과 사람/인간 사이에 ‘영적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spiritual resonanc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라는 한 개의 기적(mir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또한 은총(grace)이라는 도움에 의하여 ‘악습(vices)들’이 ‘덕들’(virtues)로 교정되는 습관에 있어서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어, 하느님 쪽으로 ‘회심’/‘윤리적으로 변화’(‘conversion‘ to God)라는 한 개의 윤리적 기적(a moral mi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유관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weakness_229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

다해 연중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5/다해연중제5주일.mp4 <----- "은총"의 정의(definition): 12:00-12:41; 47:10-48:58; 50:50-56:0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04:11과 18:59에서 "팔삭둥이"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칠삭둥이"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18:59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형이하학적"으로 교체합니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2:00-12:41; 47:10-48:58; 50:50-56:06 [즉, 12분:00초-12분:41초; 47분:10초-48분:58초; 50분:50초-56분:0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race_2343"]

 

복습 1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번역 용어인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출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1.htm [출처]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 꼭 필독 권고 

 

%%%%%%%%%%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번역 표현의 정의(definition),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34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복습 14:

가.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4/나해그리스도왕대축일.mp4 [오류 정정: 이 동영상 중의 육성(肉聲) 설명에서, (i) 18:29-18:36[18분29초-18분36초] 사이에 말해진 "하스모니아 왕조""셀레우키드 왕조"로, (ii) 31:26-31:29[31분26초-31분29초] 사이에 말해진 "예수님께 제몰로"를, 교재 본문과 동일하게, "하느님께 제물로"로, 그리고 (iii) 33:50-35:23[33분50초-35분23초] 사이에 말해진 "순음력""태음력"으로, 바로 잡습니다.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주일_전례성경_학습자들을_위한_입문자료_모음_2007-10-09.pdf]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_2305.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6:30-39:15[즉, 36분:30초-39분15초]를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 (*)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_2305"]

 

나.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4:31[즉, 04분31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ion"][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情(정, passion)과 욕정(欲情, lust)의 차이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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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교만(pride): 14:30-15: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ride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30-15:13 [즉, 14분30초-15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ride_2340"]

 

복습 22: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ride.htm <----- 필독 권고

 

%%%%%%%%%% 
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허영(vainglory): 15:13-15:48; 기적, 망망, 허영: 30:08-37: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vainglor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13-15:48 30:08-37:13[즉, 15분13초-15분48초 30분:08초-37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vainglory_2340"]

 

(ii) ‘교만’의 딸(daughters)들 중의 하나로서, 그 자체로는 소죄(venial sin)로 분류되는, ‘허영(vanity, vainglory)’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2_vainglory.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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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2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공생활 전후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ChristHR.jpg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the_journey_&_deeds_of_Jesus_&_scriptual_index.htm <----- 되도록 자주 참조하라

[주: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행적들이, 4복음서들 중의 근거 구절들의 제시와 함께,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임. 확대하여 보도록 하라. 다만, 1881년에 출판된 지도이다보니,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 오류, "Coasts of Judea"(마태오 19,1; 마르코 10,1) 표기 오류 등의 오류들이 있음]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를 고고학 고증를 거쳐 찾아내는 과정 등에 대한 글[제목: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마태오 19,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마르코 10,1)???; 게시일자: 2021-10-02]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복습 24: 나해 연중 제30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9/나해연중제30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1:00[즉, 11분0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cupiscenc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사욕편정’(慾偏情, concupiscence)이 죄가 아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사악할 사; 주: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 수록된 옛 발음은 ) 낱글자를 사용하는 ‘慾偏情’이라는 한자표기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단(heresy)으로 단죄된 마르틴 루터의 주장에 동의하여, 바로 이 ‘사욕편정’이 죄임을 말하기 때문에, 명백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부제: 죄가 아닌, 죄 쪽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말하는,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등에 대하여;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cupiscence_229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upiscenc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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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2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5,3; 루카 복음서 6,20에서, "복되도다" 혹은 "복되어라" 대신에, 1970년대"공동번역성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행복하여랴!"로 번역된 표현이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임을 지적하는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essed_are_2350.htm <----- 필독 권고

 

 

<다사순2주일> 다해 사순 제2주일

 

창세기 15,5-12.17-18; 루카 복음서 9,28ㄴ-36; 필리피 3,17-4,1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 I, 제303-316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창세기 15,6)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루카 복음서 9,29)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을 받으신(glorified)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필리피 3,21)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오늘의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에서 교재 본문 중의 특정 내용들에 대한 추가 설명들이 주어지고 있는 부분들

 

* 복습 0부터 복습 3까지 매우 간략한 복습: 01:05-10:33

*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및 교리 메시지: 10:50-14:53

*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한 개의 결과이다: 13:48-14:41; 53:31-55:08 

* 3분 복음/교리 묵상: 14:53-20:18

* 회심(conversion)과 회개(repentance)의 차이점: 14:53-18:44

* 보속(satisfaction, 속죄)의 의미: 18:44-20:18 

*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 22:38-25:00

* 제1독서 입문: 26:00-30:49

* 개신교 측에서 아브람의 의로움을 인정하셨다(imputed)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전통적 의미와는 크게 다르게, 여전히 죄의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의롭다고 보아주신다는 의미이다: 31:15-35:50

* 계약(contract)와 계약(covenant)의 차이점: 39:40-40:36

* 복음 말씀 입문: 41:40-46:23

* 고해 사제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성경 근거: 42:43-43:59

* 여드레 날, 즉, 주님의 날, 즉, 주일이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경축되는 이유: 44:37-46:22

* 제2독서 입문: 51:00-51:47

* 의방(依倣)하다의 의미 및 "가(假)성직(聖職)제도"라는 대단히 잘못된 표현의 출처 및 기원: 51:48-53:09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파라오와 그의 집안이 저주를 받게 된 이유 등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55.htm  <----- 필독 권고

 

B. 의롭게 됨(의화, justification)’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I 연중 제11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란에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제422문항 및 주석들을 필히 학습하라.

 

C.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 필청/필독 권고

 

D.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사순 제2주일의 복음 말씀은 오늘의 복음 말씀에 해당하는 마태오 복음서 17,1-9인데, 이  마태오에 의한 복음 말씀은 또한 가해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의 복음 말씀이다. 나해 사순 제 2주일의 복음 맒씀은 오늘의 복음 말씀에 해당하는 마르코 복음서 9,2-10인데, 이 마르코에 의한 복음 말씀은 또한 나해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의 복음 말씀이다. 다해 사순 제2주일의 복음 말씀은 오늘의 복음 말씀에 해당하는 루카 복음서 9,28ㄴ-36인데, 이 루카에 의한 복음 말씀은 또한 다해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의 복음 말씀이다.

 

E.
(i)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즉, 5천 명을 먹이신 '빵들의 증식 기적')을 행하셨다고 알려진 장소 한 군데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Galilee_Multiplication_of_Loaves.htm

(ii)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즉, 5천 명을 벅이신 '빵들의 증식 기적')을 행하셨다고 알려진 또다른 장소 한 군데에 대한 언급은 다음의 졸글 중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F. 모세가 하느님과 대화를 하였다고 알려진 떨기 나무(Burning Bush)가 자라는 시나이 산의 바로 그 장소라고 여겨지는 자리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St. Helena)가 4세기 초에 성 카타리나 수도원(St. Catherine's Monastery)을 설립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수도원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Sinai_St_Catherine_Monaste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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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의방(依倣)하다"의 의미 및 "가(假)성직(聖職)제도"라는 대단히 잘못된 표현의 출처 및 기원: 51:48-53:09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mprovised_korean_clergy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1:48-53:09 [즉, 51분48초-53분09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improvised_korean_clergy_2377" 

G.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신앙의 선조 제1세대에 포함되는 이승훈(1756-1801년)이 사용한 용어임이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되는 '依倣'(의방)이라는 용어가, 전후 문맥 안에서, '모방'이라는 용어보다 훨씬 더 적합함을 기술하는 졸글[제목: 가(假)성직(聖職)제도라는 표현보다는 모방(模倣)성직제도가 더 나은 표현이고, 모방(模倣)성직제도 보다는 의방(依倣)성직제도가 훨씬 더 부합하고 적합한 표현이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29.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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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이 세상의 정령(精靈)들[the elemental spirits of the universe (RSV) = the elemental powers of the world (NAB)]’이라는 표현은 갈라티아서 4,3.8; 콜로새서 2,8.20 등에 있으며 NAB 주석은 이 표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I. 이 세상의 정령(精靈)들: 이 용어가 (그리스 철학적) 흙, 공기, 불, 그리고 과 같은 요소들 혹은 종교의 초보적 형태(elementary forms)들을 언급할 수도 있는 반면에, 여기서의 의미는 아마도, 다신교 집단들 안에서 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되었던, 천상의 존재들일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엮은이 번역).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b/galatians4.htm

 

J.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번역 표현의 정의(definition),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34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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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여드레 날, 즉, 주님의 날, 즉, 주일이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경축되는 이유: 44:37-46:22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ighth_day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4:37-46:22 [즉, 44분37초-46분22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eighth_day_2377"  

K.

성경 중의 ‘여드레(the eighth day, 8번째 날, 여덟째 날) = 주님의 날(Lord's Day) = 일요일(Sunday)’과 관련하여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1) 다음의 검색 결과들로부터 우리는 새 번역 ‘성경’ 본문 중에 ‘여드레’을 언급하고 있는 절들이 구약 성경에는 21개의 절들, 그리고 신약 성경에는 7개의 절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kb/ot2_search4eighth_day.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kb/nt2_search4eighth_day.htm

 

(2) 구약 성경의 언급들을 반영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분문 중에 ‘8번째 날’을 언급하고 있는 항목들은 제349항, 제527항, 제1166항, 그리고 제2174항이다.

 

(3) ‘안식일’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주일’로 바뀐데 대한 이유는 본 해설서의 부활 제3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제452항을 참조하라.

 

(4)‘여드레’에 대한 설명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인, 다음의 출처에 있는 ‘sabbath’의 설명을 읽도록 하라:

 

안식일(sabbath): 안식일 혹은 제7번째 ‘날’은, 성경의 시작 부분의 이야기에 설명되어 있듯이, 하느님께서 ‘6일’의 창조를 끝내신 후에 하느님께서 휴식을 취하셨던 날을 말한다. 따라서 피조물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하여 거룩하게 지켜져야 하는 날인, 안식일을 향하도록 지시되어 있다(Creation is thus ordered to the Sabbath, the day to be kept holy to the praise and worship of God.).(*) 마치 제7번째 날 혹은 안식일이 첫 창조를 완성하듯이, 마찬가지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던 날인(CCC 345-349), ‘여드레’, 주일,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하셨던 날인 주간 첫 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거룩한 날’로 경축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주일 준수는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 중의 셋째 계명을 실행하는 것이다(CCC 2175)(엮은이 번역).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

 

(*) 이 설명은 조셉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그의 저서 ‘In the Beginning ...’에서 표현한 다음의 설명에 해당할 것이다: "Creation is designed in such a way that it is oriented to worship."(피조물은, 그것이 경배 쪽으로 향하게 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5) ‘주님의 날’에 대한 역사적 배경 및 그리스도교 신앙적 의미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0년 대희년을 바라보면서 선포하신 교황 교서(Apostolic Letter)인 ‘Dies Domini’을 읽도록 하라. '주님의 날(여드레, 여덟째 날)‘에 대하여 매우 잘 설명하고 있는 자료이며 매우 좋은 내용이기에 많은 분들의 필독을 권고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ck/1998Dies_Domini_kr.htm (우리말)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apl_05071998_dd_en.htm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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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lent_2.htm <----- 필독 권고 

 

M.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c_lent_2.htm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I suggest the concept of fullness as the common thread running across all of the readings. In the Gospel, Jesus Christ reveals the fullness of the Law and of Prophecy when he appears to the disciples between Moses and Elijah; he also reveals his more-than-human fullness which shines forth in his shining and transfigured being. In Jesus Christ the extraordinary promise made to Abram reaches its fullness (first reading). In the second reading, Saint Paul teaches us that the fullness of Christ is communicated to the Christians, the citizens of heaven, who "will transfigure the wretched body of ours into the form of his glorious body."

 

저는 충만함이라는 개념(the concept of fullness)을 오늘의 독서들의 모두에 걸쳐서 속으로 퍼져 있는(run through) 공통의 맥락(the common thread)으로서 제안합니다(suggest). 복음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 사이에 나타나실 때에, 율법과 예언의 충만함을 드러내시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또한, 당신의 빛나는 그리고 변모된 있음으로 바깥으로 빛을 방출하시는, 당신의, 인간의 그것보다 더 나은, 충만함을 드러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람(Abram) 쪽으로 하셨던 비범한 약속(extraordinary promise)는 그 충만함에 도달합니다(제1독서). 제2독서에서, 성 바오로는, "우리들의 비참한 몸을 당신의 영광을 발하는(glorious) 몸의 형태로 장차 변모시키실" 분이신, 그리스도의 충만함(the fullness of Christ)이, 하늘의 시민(the citizens of heaven)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어지고 있다(is communicated)고 우리들에게 가르칩니다.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Jesus Christ, sublime fullness. We know that the term "fullness" relates to the capacity of the object or person to which it refers. But it is not only a term with a quantitative value (the capacity of a glass or a vase), for it mainly has a qualitative value (the fullness of love, of salvation...). Finally, the concept of fullness is not at the margin of history, but rather is very closely connected with it (the fullness of a historical year, of an empire...). Everything that we have said provides us with a way to better grasp the meaning of the concept that Jesus Christ is sublime fullness. First of all, his human fullness has achieved its highest degree in the Transfiguration, in which the splendor of divinity has penetrated all of his humanity, and a voice from heaven confesses that he is "Beloved Son." In this very experience of transfiguration, Jesus achieves the fullness of revelation, which is concentrated in two figures of the Old Testament, representing the two major parts in which divine revelation was divided: the Law or written tradition, whose representative is Moses, and prophecy or oral tradition, represented by Elijah. Jesus Christ is the climax which both the Law and prophecy strive for. Christ is also the fullness of the promise made to Abram: blessing, land, fruitfulness. Indeed, the Father has blessed us with all sorts of blessings in Christ, he has made us share in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he has made of us a new people made fruitful with his redeeming blood. Equally, Jesus is the fullness of history. The unfolding of history has reached its goal in the historical life of Jesus of Nazareth. Before his historical presence, all events were directed and looked towards him; after his departure from this world, Jesus is the standard-bearer of history and men and women walk behind him in the awareness of not being able to surpass him in his human and divine fullness. Finally, with his fullness Jesus Christ fills not only history but also what lies beyond history. Indeed, the fullness of Christ, which we share over time through grace, will pour over and bestow upon us the fullness that corresponds to our ability to be sons in the Son. In actual fact, heaven is nothing but the fullness of Christ present in each of the redeemed.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고한 충만함(sublime fullness)이시다. 우리는 "충만함(fullness)"이, 바로 그쪽으로 그것이 언급하는, 대상(object) 혹은 인격(person)의 수용력(capacity) 쪽으로 관련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지 (한 개의 유리잔(a glass) 혹은 한 개의 병(a vase)의 수용력 등과 같은) 어떤 정량적 가치(a quantitative value)를 가진 한 개의 용어만이 아닌데, 이는 이 단어가 (사랑의, 구원의, 충만함 등과 같은) 어떤 정성적 가치(a qualitative value)를 주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충만함이라는 개념은 역사의 변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어떤 역사적인 해(year)의, 어떤 제국의, 충만함 등과 같은) 역사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말한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고한 충만함이심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더 잘 붙잡도록 하는 어떤 길을 우리들에게 제공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인간적 충만함은, 그 안에서 신성의 광채(the splendor of divinity)가 당신의 인성(humanity)의 전부를 이미 관통한, 그리고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당신께서 "사랑받는 아드님"이심을 고백한(confesses), 바로 이 거룩한 변모 안에서 그 충만함의 가장 높은 정도를 이미 성취하였습니다. 변모라는 바로 이 경험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드러냄/계시(revelation)의 충만함을 성취하시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이, 그 안에서 신성적 계시/드러냄(divine revelation)가 나누어지는 두 개의 주된 부분들을 대표하는, 구약 성경의 두 명의 인물들에게 집중됩니다: 그것의 대표가 모세인 율법(the Law) 혹은 기술된 전승(written tradition), 그리고, 엘리야에 의하여 대표되는, 예언(prophecy) 혹은 구전(oral tradition).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과 예언 둘 다가 [도달하고자] 분투하는 바로 그 정점(the climax)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아브람(Abram)에게 하셨던 다음과 같은 약속의 충만함이십니다: 축복(blessing), 땅(land), 결실이 많음/자손의 번성(fruitfulness). 정말로, 성부께서는 우리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들의 모든 종류들로써 이미 축복하셨는데, 그분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한 개의 새하늘(a new heaven)과 한 개의 새땅(a new earth)을 함께 나누도록 하셨으며, 그분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의 구속(救贖)하시는/속량하시는 피(his redeeming blood)(*)로써 한 개의 새백성(a new people)이 이미 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equally), 예수님은 역사의 충만함입니다. 역사의 펼침은 나자렛 출신 예수님의 역사적 삶 안에서 그 목표에 이미 도달하였습니다. 그분의 역사적 현존 이전에, 모든 사건들은 그분 쪽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리고 바라보게 되었으며, 그리고 바로 이 세상으로부터 그분의 떠나심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기수(旗手)이시며 그리하여 사람들과 여자들은 그분의 인성적 및 신성적 충만함 안에서 그분을 능가할 수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안에서 그분 뒤에서 따라갑니다(walk behind)(에페소 1,10 참조). 끝으로, 당신의 충만함 안엣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를 채우실뿐만이 아니라 또한 역사 넘어서에 놓여 있는 바를 채우십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은총(grace)을 통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우리들 위에 장차 쏟아질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들 위에, 성자(Son) 안에서 아들을이 될 우리들의 능력에 대응하는, 충만함을 장차 수여할 것입니다. 현실태적 사실로서(in actual fact), 하늘(heaven, 천당)은 다만, 구속(救贖)을 받은 자들/속량을 받은 자들(the redeemed)(*)의 각자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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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 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303.htm <----- 필독/필청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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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llness of Christ challenges us. It challenges Abram himself, for God’s promise and covenant with him will only reach its fulfillment in Jesus Christ. Abram believed in God, he obeyed him and thus opened the doors of history to Christ. Christ’s fullness challenges Moses, whose ten commandments yearn, so to speak, for their fullness in the Law of Christ, the crowning of the ten commandments and of all human laws. Christ’s fullness challenges Elijah, the faithful interpreter of history, as all true prophets will be, whose most genuine and final meaning will be given by Christ from the Cross and from salvation. In actual fact, Christ is not just another interpreter of a part of history, but the ultimate and final interpreter of history, of all human history. Christ’s fullness challenges Peter, John and James, who were granted a unique experience of the mystery of Christ for their future mission; through them he challenges us all, disciples and apostles. Christ’s fullness challenges Paul and the Christians who, having been elevated by Christ to the rank of citizens of heaven, must live according to what they are, and not become "enemies of Christ’s Cross." Christ, from whose fullness we have all received, challenges all people, for he is the man in fullness and at the same time he is the fullness of man.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도전합니다(challenges). 그분의 충만함이 아브람(Abram) 자신에게 도전하는데, 이는 그와 맺은 하느님의 약속과 계약(covenant)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충만함에 오로지 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하느님 쪽으로 믿었는데(believed in), 그는 당신께 순종하였으며(obeyed) 그리고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and thus) 그리스도 쪽으로 역사의 문들을 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모세(Moses)에게 도전하는데, 그의 십계명들은, 말하자면, 십계명들에게 그리고 인간의 법(human laws)들 모두에게 왕관을 씌움인, 그리스도의 율법(the Law of Christ, 즉, 그리스도의 새 계명) 안에서 그들의 충만함을 갈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그들의 미래의 선교(mission)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 신비(the mystery of Christ)에 대한 한 유일한 경험이 허용되었던, 베드로(Peter), 요한(John) 그리고 야고보(James)에게 도전하며,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당신께서는, 제자들과 사도들인, 우리들 모두에게 도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늘의 시민들의 등급/지위(rank)로 들어올려졌기에, 그들인 바(what they are, 즉,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신분(身分))에 따라 살아야 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 되지 말아야 하는, 바오로(Paul)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합니다. 당신의 충만함 떄문에(from) 우리들 모두가 받아들이는 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백성에게 도전하시는데, 이는 당신께서는 충만함에 계신 바로 그 사람(the man in fullness)이시며 그리고 동시에 당신께서는 사람의 충만함(the fullness of man)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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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회심(conversion)과 회개(repentance)의 차이점: 14:53-18:44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version_vs_repentance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53-18:44 [즉, 14분53초-18분44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version_vs_repentance_2377"]  

 

CCCC 299. 세례를 받은 이들이 회심의 필요성을 가지는지요?
CCC 1427-1429


회심(回心, conversion)(*1)을 하라는 그리스도의 요청(call)은 세례를 받은 이들의 삶들 안에 계속 울려 퍼집니다(resound). 회심은 전체 교회의 지속적인 의무입니다. 교회는 거룩하나 그러나 자신의 한 가운데에 죄인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엮은이 번역).

 

(*1) ‘회심(conversion, change of heart)’의 결과로서 ‘회개(repentance)’를 하게 되므로(사도행전 26,20), ‘conversion’을 ‘회개’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라는 생각이다.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실린 ‘conversion’의 정의(definition)를 참고하라. 여기서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이며, 괄호 안의 번호들은 CCC 중의 유관 항목들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 

(발췌 시작)

CONVERSION

 

A radical reorientation of the whole life away from sin and evil, and toward God. This change of heart or conversion is a central element of Christ's preaching, of the Church's ministry of evangelization, and of the Sacrament of Penance and Reconciliation (1427, 1431, 1423; cf. 821).

 

회심(conversion)

 

죄(sin)와 악(evil)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리고 하느님 쪽으로 향하는, 전체 삶에 있어서의 어떤 근본적인 재 방향 설정/재적응(a radical reorientation)을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심장의 변화(change of heart) 혹은 회심(回心, conversion)은 그리스도의 설교의, 복음화에 있어서의 교회의 사역의, 그리고 참회 및 화해의 성사(즉, 고해성사)의, 한 개의 중추(中樞) 요소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7항, 1431항, 1423항; 그리고 제821항 참조)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또한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라: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e_conversion.htm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tdnt/conversion.htm 
참고 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conversion.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lent_2_c1427.htm

 

%%%%%%%%%%

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보속(satisfaction, 속죄)의 의미: 18:44-20:18  

[내용 추가: 보속(satisfaction)의 의미를 더 자세하게 기술한, 아래에 추가된, (*2)를 또한 꼭 읽도록 하십시오]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atisfaction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44-20:18  [즉, 18분44초-20분1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atisfaction_2377"]  

 

CCCC 302. 화해의 성사(고해성사)의 핵심 요소들이 무엇인지요?
CCC 1440-1449


화해의 성사의 핵심 요소들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회개(repentance)에 이르게 되는 자인 참회자(the penitent)의 (회개의 깊이를 나타내기 위한) 행위(acts)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허락하고 보속(補贖, satisfaction, 속죄)(*2)을 하기 위한 방법들을 정하는 사제의 사면(absolution)(엮은이 번역).

 

(*2) 보속(補贖, satisfaction)정의(definition): 만약에 어떤 자가 신성적 의로움/하느님의 의로움(divine justice)를 침범하면 그 즉시, 하느님이 아니라 해당 침범자(offender) 자신에게, 해당 침범자 스스로 야기하는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으로서 해당 침범(offence)/죄(sin)에 상응하는 정도와 크기의, 상처(injury)가 나게 되는데/위해(injury)가 가해지는데, 따라서 하느님의 의지/뜻(will)에 반하여 시공간 안에서 이미 발생한 불의(injustice), 즉, 바로 이 상처/위해 자국/흔적, 즉, 해당 침범/최로 인한 나쁜 결과, 즉, 잠벌(暫罰, temporal punishment)를 제거하기 위하여, 즉, 이미 침범한 하느님의 의로움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치유/속죄 행위를 두고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보속(補贖, satisfaction)이라고 부름에 주목하라.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i)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ii)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한자 번역 용어들인 ‘暫罰’(잠벌)‘補贖’(보속)의 출처 및 기원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81.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lent_2_c14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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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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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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