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불장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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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쥐불놀하면 어려서 하던 불장난이 떠오른다. 왜 그랬는지 그 때는 불장난이 엄청 재미있었다. 성냥이 귀했었나? 성냥을 켤 때의 냄새를 그 때도 좋아했었던가? 여하튼 동생과 나는 성냥을 보면 꼭 불장난을 해서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드렸다. "불장난 하면 밤에 이불에 오줌싼다"라는 협박에 걱정을 해가면서도 몰래 성냥에 불을 붙여 종이도 태워보고 그러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기겁을 한 적도 많았다. ( 부전자전이 아니라 모전자전인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화장실 세면대에서 성냥 거의 한 통을 다 지펴보고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놀랜적이있다.)
나의 불장난은 아주 어렸던 다섯살, 아니 여섯살 때였던가쯤으로 올라가는데..
우리집은 전형적인 시골의 "ㄱ"자 집이었다. 한쪽 끝은 제대로 된 부엌이 있었고 반대편 끝은 방을 뎁힐 수 있는 아궁이만 있었던 것 같다. 부엌은 연탄아궁이가 있었지만 반대쪽은 불을 때는 아궁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게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든지. 그런데 옆에서 같이 쪼그리고 앉아 구경은 해도 절대로 혼자 불을 때보는 걸 허락하진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얼마나 귀찮으셨을까싶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꿈을 이뤄 보기로 맘을 먹고 실행에 옮겼는 데.. 불을 다 지피신 후라 불은 꺼졌지만 까만 재속을 엄마가 하던대로 긴 막대기로 살살 떠들어보니 빨간 불씨가 남아있는게 아닌가! 옆에있던 벼짚을 가져다가 불씨에대고 호호입김을 불어댔더니 금방 불이 볏짚에 붙어 오는 것이었다.
그 황홀함이란! 어지간이 재미가 있었는지 옆에 약간 남아있던 볏짚으로 만족을 못하고 드디어 벼짚 한단을 끌고 오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한 겨울 건조한 날씨속에 잘 마른 볏단에 붙은 불은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아궁이속의 것을 혀를 날름거리며 다 짐어삼키더니 나의 통제능력을 벗어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밖으로 나와서는 옆에 끌어다논 볏단에 옮겨 붙기 시작하여 그 부엌에 있던 볏단에 옮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너무 무서워 밖으로 도망을 쳤다. 다행히 샘에 물을 길러 가시던 엄마가 보셔서 사태는 수습이 되었지만, 옆집에서 사람들이 오고 집안은 엉망이되고... 그런데 왜 그랬는지 나는 친구집이나 아니면 멀리 도망친게 아니라 우리집 대문 밖 담벼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사태가 수습되는 소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 들으며,엄마가 나를 찾아서 들어오라는 목소리만 기다린채..
아마 한 참이 흘렀나 보다. 퇴근해 들어 오시는 아버지께서 추운데 서있는 나를 보시고 놀라며 이유를 묻는 게 아닌가. 내가 무슨 말인 가를 울먹이며 했던 것 같은 데, 아빠는 잠시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집으로 들어가자며 손을 잡아끄셨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내가 아마 안 들어가겠다고 했었나보다. 그때 아빠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껌"(청회색 포장지에 펭귄이 그려 있었던가?)을 주시며 괜찮다고 나를 안아주셨는 데 그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안아주시며 무거움과 걱정을 일순간에 털어 주셨던 아버지! 마치 성냥게비가 불을 지펴내는 마술을 부리듯 아버지의 출현으로 엄청난 일이 마술처럼 녹아 평온을 되찾은 것이었다.
그 아버지가 요즘 건강이 않좋으시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홍어 사들고 찾아 뵈야겠다. (그런데 지금이 홍어 철인가? 추울때 먹었던 것 같은 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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