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성당 게시판

에구,에구,예수님인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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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sugi] 쪽지 캡슐

2000-05-08 ㅣ No.1458

토요 특전 미사후, 친구와 쐬주없이 삼겹살로 주린 순대를 채우고,

코코아도 한잔 쭈~~~우~~~ㄱ,황홀한 주말이여!

근래 보기 드물게 내 마음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살랑부는 봄바람에 놓았던 정신을 여미고 보니,만성위염증세도

어디론가 봄소풍을 떠난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산행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해 출발!

(2주전 까지는 성당 코 앞이 집이었는데...)

예의 성호를 긋고 편안한 여행이 되길 기도하며 습관적으로

기사님의 심기를 살핀다.원체 겁이 많은지라,기사님의 인상이

넉넉해야 마음놓고 딴 생각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다행히

혈기만 왕성한 -1인 3역을 한다.껌 씹으며 왼손엔 핸드폰,

오른손은 핸들 완전 자연농원의 독수리요새를 탄듯- 기사님이

아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을즈음....주말이라서인지 탑승부터

만취한 손님이 기사님을 들볶기 시작한다.

" 아저씨, 이거 후곡마을 가지?"

- 네.

" 차비가 얼마야?"

- 천원입니다.

" 어? 이건 왜 천원이야,다른건 오백원인데?"

- 아저씨 이건 좌석버스예요.

" 응, 좌석버스..?"

이곳저곳을 뒤적이더니

" 아, 이거 어째.. 잔돈이 없는데?"

차들은 뒤에서 빵빵 거리고 줄서있던 손님들은 제각각

한마디씩 하는데도,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구를

’떡’하니 막고서서는 이제서야 생각이 난듯 신용카드를 갖다대며

"어? 이건 또 왜 안돼? 이거또 고장이야?"

으~~~~~

그래도 기사님은 언짢은 기색없이

- 일단 앉으시고 잔돈을 거스르던가 하세요.  하신다.

와!!! 인간성 ’짱’이다.라고 생각하려니

예수님 생각이 난다.부활하시어 그들에게 그분께서도 못 믿어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짜증내지 않고 차근차근 대답도 해주시고

그러셨으리라 생각하니 드디어 나도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라는 생각에 마냥 흐뭇하다.

그러나, 기사님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고있으려니 걸쭉하면서도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난다.

" 내가 말이야,이버스를 맨날타는데 말이야,기사들이 안내방송을

  안해...그래서...."

조금씩 불안해진다. 아저씨의 말투가 보통 짜증스러운것이 아니었고

듣는이로 하여금 ’화’를 불러일으키는 어휘선택과 더불어 끈질기기

까지하다. 꼭 싸움을 벌이고 말것이라는...

 

" 기사 너한테 하는말은 아니지만 말이지,왜 안내방송을 안해 나쁜**"

- 아저씨, 어디서 내리시는대요?

" 내가 수색에서 내리지 어디서 내려, 내가 맨날 이버스를 타는데..."

 

똑같은 말을 또 반복하신다. 반복하면 할수록 아저씨는 더 괘씸(?)

하셨던지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수색이 빨리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래도 기사님은 여전히 존칭어로 아저씨의 물음에 대답도 해주시고

사과와 변명을 하신다. 감동의 물결이 인다. 이 정도면 아무리

인생의 연륜이 깊다해도 견디기 힘들텐데 짜증한번 안낸다.

진짜 예수님이다. 운전기사님으로 변신한 나의 예수님!

 

끝내 만취한 아저씨는 고이 내리셨지만 아직도 차안은 긴장감이

남아있다.그~~~~때,  " 씨******************************"

와~우, 세상에 이런욕도 다 있구나싶다.

굉장하다. 처음듣는 욕이지만 진실성이 엿보이고 어감이 굉장히

리얼하다. 깜짝놀라 눈치껏 누가 했는지 살피려는데, 갑자기 차가

’기우뚱’ 작은 비명들과 함께 또다시 ’기우뚱’

참고 참았던 기사님의 인내력은 와르르르 무너지고 우리 모두는

이리저리 쏠리는 블럭마냥 구박아닌 구박을 받았다.

에구에구 예수님을 발견했나 했는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험한 욕을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운전기사님들은 정말 힘드시겠다는

생각을하며 나라도 내릴땐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하고 내리리라

다짐했다......그러나.....

나도 아저씨의 짜증을 불러 일으키게 될줄이야.

백석고등학교 앞에서 하차해야하는 나는  문이 열리고 닫힐때까지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차" 싶은게놓쳐버렸다.

신호가 바뀌기전에 가려는듯 악셀을 밟아대는 순간 난 그만 이렇게

외쳤다.

 " 안내방송을 왜 안하세요? 저 여기서 내려야 해요 아저씨"

~~~~~~~~~~~~~~~~~ 미안, 부끄러움,....

예수님이 될뻔한 우리의 기사님은 나를 무사히 인도에 가깝게 내려

주시고는 " 뿌  ``앙 "떠나가신다.예전엔 창피해서 한 정거장을

그냥 더가서 걸어왔겠지만, 한살씩 더해가는 나이와 더불어 얼굴에도

철판이 덧 씌워지는지 아무렇지도 않다.

기사님도 이해가 가지만 이래저래 짜증스러운 승객들도 이해가 된다.

나도 공범인걸.....

아주 가끔 버스타고 내릴때 친절하게 인사헤주시는 기사님을 뵐때면

쑥스러워 같이 인사는 못하지만 정말 기분이 좋다.

엇 그제의 일도 사과할겸 오늘은 내가 먼저 인사를 드려야겠다.

"목적지 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너무 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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