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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자꾸 떠나보 싶어 집는다..어찌 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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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7-20 ㅣ No.4319

 

 

   필자와 비슷한 사례를 경험하고 계신듯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의례히 올 수 있는 어둠의 세력의 작용인듯 싶습니다. 저의 시행착오는 최근 이러한 좋은 계시를 주셨는데 자매님과 나누고자 합니다.

 

감성적인 저는 그 옛날 미혼 때에 한 여인을 매우 외사랑한적이 있었습니다. 외사랑은 자신만 아는 일방적인 사랑의 짝사랑과 달리 만인에게 알리는 역시 일방적인 사랑이지요.

 

헌데 그녀를 꼬박 일년동안 단 한순간도 서운해 한적이 없었는데 이것을 자매님은 믿으실 수 있나요?

영화의 그것을 흉내낸다고 어느 카페의 문 닫을 시간동안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기다리겠노라고 연락한 뒤 그 장시간등을 기다려야 했는데 단 한순간도 그녀를 원망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더우기 냉담의 와중인데도 어찌 이리 단 일초도 그녀에게 서운해 하지 않을 수 있었던가요?

인간이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보여지시는지요?

 

방법은 간단하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애착과 집착으로 그녀가 혹여 서운한 감성이 올때면 머리를 털어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역시 현존하시더군요. 하여 그녀 덕분에 20년 냉담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골 출신의 순박한 지금의 아내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에게도 자주 기도를 바친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반감이 아프시다는 주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기도서등을 보면서도 그런 나의 잘못된 기도와 행위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주님이 계시를 주시더군요.

 

로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민고야, 나에게도 그런 방법을 써주면 안되겠니?라고요.

 

그랬더니 내안의 슬픔, 고독, 고통의 그것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로사와의 만남으로 주님의 현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 잊었다는 공치사는 아닙니다.

 

그녀가 보고파 냉담중 찾았던 콩나물 시루와도 같던 성탄 전야 성당에서 포기하고 나오려던 찰나에 세상속 파견의 성당 문을 인파에 휩쓸려 나오려는 순간 문득 고개를 돌리니 그녀의 모녀가 보였던 사건하며,

 

당시의 인간적으로 가장 힘들도록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모녀의 모습이 각인되었으나

 

10년뒤 도민고를 오늘의 성당으로 초대한 이가 로사와 로사의 어머니라 하시며 까맣게 잊혀졌던 기억상실의 그것을 대 역전의 은총으로 제 생애 가장 큰 환희로 인도해 주심도 주님의 현존하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부부가 함께 감사의 기도를 하루 아침기도 삽십분씩 백일간 바쳐야 하였습니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심지어 첫아들을 성금요일 태어나게 하시고 최근엔 자매님처럼 잘릴 위기에 처했던 복사를 잇게 해주십니다.

 

엊그제 아들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더군요.

 

'그래, 지난번 보속을 마쳤으니 수녀님께 그만두겠다고 남자답게 말씀 드렸니?'

 

'아니요, 수녀님이 놀랄 것 같아 말 안했어요'

 

역시 주님의 현존하심과 감사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체험 신앙으로 죽어도 주일 미사를 궐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성당만 오갔고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되는 기복 신앙을 해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감히 복음 전구자가 되겠노라며 바이올렛 자매님의 그 아픔처럼 수차례 낙방의 고배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그냥 백일 기도만 했다면 금상첨화인데, 그냥 미친 사람처럼 여기 저기 봉사하면서의 그 기쁨을 봉헌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결과적으로 일 평생 직접 교회안에 몸 담겠다는 욕심을 갖게 된 것이었습니다.

 

봉사가 때론 외롭더라도 2,000여년전 사도시대보다 더 성령이 충만한 시대가 오기에 평생 봉사자로 살겠다는 결심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본인의 경우를 보더라도 번제물만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더우기 무례하거나 자기 성찰이 부족한 번제물은 싫어하십니다.

 

지금은 로사에게 했던 과정으로 돌아가는중이오니 본인에게 자주 공격성향을 드러내는 분들도 너그러운 이해를 요망하겠습니다.

 

그 낙방의 고통 당해보지 않은 사람 모르지요. 더우기 저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부부간의 육체적 대화도 참아 이겨내야 하는 이 어려운 와중에도

 

주님은 언제나 위로를 더해주십니다.

 

주님만을 찾는다며 노력이 부족하다며 불만감에 휩쌓인 아내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이기도 한걸 어찌하나요?

 

문제는 나의 회복을 위한 실천이 관건일 것입니다.

 

저는 작금의 소망이 한가지 있습니다.

 

중고 지프차를 장만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일터를 회복할 수 있다면 가족과 함께 소풍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비슷한 고민을 당하시는 신자 여러분들도 몸보다 마음보다 더 소중하지만 소외받고 있는, 하느님이 빌려주신 우리들의 영혼 관리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속의 가장 귀한 생명마저 포기하려는 수많은 이웃들을 위해서도 나는 주님께 보속하고 싶습니다.

 

성당의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봉사직의 어느 노사제께서 ME때에 오죽하면 이럴때에 성체조배로 스킨쉽을 하신다 하셨을까?

 

그런가 하면 어여쁜 아내를 두고 사치스러운 이러한 말이 죄송할 뿐입니다.

 

엊그제 아무데나 첫번째로 디자인 회사에 20년 광고지기로서 교통비, 차비면 된다며 홈페이지를 배우며 일하고 싶다 했는데 역시 연락이 없군요.

 

제 글이 아무튼 문제가 많은가봅니다.

 

복음 사도직을 세상속에서 구현하겠다는 성급함에 하느님의 응답을 어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언젠가 가톨릭 신자에게 미사는 의무입니다의 신부님의 말씀을 인터넷 상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돌아온 탕자로서 주일 미사를 자주 궐하던 나의 그것을 멈추게 하여주었습니다.

 

자매님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한 사람에게 해주었던 그것처럼

 

주님께 해 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기다려주시잖습니까?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고 고독을 해매일 때 그것을 주님과 나누어보십시오.

 

주님은 이천여년전 실제로 골고다 언덕을 그 십자가의 무거움과 채찍질의 고통으로 받아 이겨내셔야 했습니다.

 

우린 그런 주님을 믿고 있지만 주님의 부활만을 믿으며 십자가 없는 예수형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저마다의 십자가를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시는 주님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자매님 역시 '여인아 너의 그것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노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신앙은 믿음이 첫째인 것입니다.

 

고요히 타오로는 촛불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더 좋은 곳에 쓰시려 하시기에 우리를 고통속에의 수련을 묵인하셔야 합니다.

 

우리도 사랑했던 그 사람에게 했던 그것처럼 백분지 일이라도 다시 주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그렇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세상이 그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라 하시며

 

돈도 명예도 무엇을 하고파 하는 우리의 조급함도 보다 건강하게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남는 시간에 주님께 기도하고 요청하였기에

 

주님의 응답을 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고, 모세가 홍해바다에서 주님께 기도만 하지 말고 지팡이를 두들기라 꾸중을 들어야 했듯, 우리가 말과 생각으로만 주님을 배교하라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않음으로서 저 감옥속에서 고통받고 돌아가셔야 했던 초대 순교자들의 그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애석한 일일것입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오늘도 묵주의 기도, 성체조배, 미사, 영성체등의 주님이 주신 성화방법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방해할 것입니다. 완전한 기도인 미사 참례로 당장 돌아오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힘든 가운데 돌아오는 여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하신다면 생활속의 준성사등을 잘 응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업어주시기에 그 발자국이 깊이 패여 홀로 걸으실 뿐입니다.

 

하느님감사합니다 의 여덟글자로 다시 찬미할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행하였던 그것으로 우리 서로 기도중 기억합시다.

 

어제는 지난번 위암, 간암을 선고받은 형제가 한달전부터 고통속에 식사를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땅에서 고통을 많이 감수해야 하는 사람은 그만큼 연옥의 고통을 면제받는다 전해주며 그 가족과 위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수고하면 그 가족을 일평생 주님안의 평화로 선교할 수 있을텐데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주 미사에는 내게 남은 자존심을 다시한번 의탁해볼 예정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에 의탁하여

 

최근 본인의 글을 허락없이 유포하고 있는 분께도 청원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상대와 일대일장으로 돌아와 조급증에서 탈피하십시오.

 

필자는 2004년 9월부터 이곳에서 단 한글자의 오자도 읽는이의 마음도 생각하며 그것을 경계하여 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글을 그러한 맥락에서 퇴고하는 사람이지 그 퇴고의 삼분여를 참지 못하여 비난하는 님의 사고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스스로에게 속지 말아주십시오. 공인은 그러면 비복음을 남발하게 될 것입니다.

 

굿뉴스측에 있지도 않은 사제에 대한 비난을 한사람이라 낭설을 퍼뜨리며 댓글을 지우기 시작하시는데, 본인이 평신자인줄 잘못알고 그분께 그랬다며 사과한 글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김종환 신부님께는 다시한번 죄송하단 말씀을 올립니다.

 

귀하가 계속하여 아시아 주교회의 교회일치 운동이라는 보도에 본인의 글을 허락없이 올리는 행위는 명예훼손 고소의 뜨거운 조치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개신교의 수많은 신자가 마르틴 루터를 신격화 하는 마당에서 귀하의 어조들은 실로 교회의 분열을 가중시키며 독자층으로 하여금 수많은 분심을 야기하는 코메디 수준을 탈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루틴 루터의 사후 복권 문제는 홍제동 성당의 어느 성찬봉사자로 하여금 2차에 걸쳐 제보받은 내용이기에 평소 사제의 함자를 거론하며 비난하는 돌출행동으로서 이곳에서도 자주 문제를 야기하고 이를 말리는 젊은 사제를 깔보는 귀하의 어조들도 성찰하여 부디 타인에게 상처와 분심을 주는 행위를 멈추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교회의 일치라는 명분으로 한사람의 글을 이설이라 말하며 쓰레기 같은 죄를 반복치 말아주십시오.

 

성령기도회에 몸 담고 있다며 매사에 무례한 어조들을 정화할 줄 모르는 아무개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내 글에 더이상 얼씬거리지 않기로 선언을 하였다면 어서 예수께로 돌아가십시오. 귀하의 필자에 대한 무례한 어조들은 결코 성령의 은사일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지난번 경고한바와 같이 대 반격을 시작합니다.

 

성모님의 부활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복음의 정신이 삶과 죽음이기에 더우기 우리가 부활절에 달걀을 선물하며 서로가 단단한 육의 껍질을 깨는 흰 마음을 지향하여 핵심의 노른자인 영혼관리로 돌아가자는 취지인데 무에가 그리 불만이십니까?

 

귀하의 일련의 모습들은 두번째 아담으로 오시고 창조주체로 오시는 성모신심에 대하여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교 핵심 사상인데 주님 편애 사상에 물든 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은 대단히 죄송하지만 방관형으로 가톨릭 교리적이지 못하다느니 하시는분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잖케 충고하시는 그것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말씀드린데로 타인의 희생을 볼모로 억누르려는 사람들의 말들을 쓰게 받고 있으며 솔직히 내부의 적들의 충고는 사양하고 싶은게 제 현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동안 찢기워지고 할키워진 상처를 일일히 기억해 낸다면 일전의 시노드 조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평화를 위하여 성당을 찾는 다수의 교형들에게 혼돈감을 초래할 수 있기에 이곳에서 상대방에게 언짢은 말의 열매를 제공할수 있는, 그 배려에 무심한 가운데 반복적 인습을 해매이는 두사람을 지목하여 권고하는 바입니다.

 

청조주, 창조주체로 오시는 성모마리아는 어느 가르멜 수도원장 신부님의 말씀이기도 하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웬만한 신부님도 이처럼 남녀 평등에 대하여 묵인하고 계시니 부디 인간적 답습에서 우리모두 헤어나옵시다.

 

가톨릭 교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 배례하고, 성모 마리아는 최초의 인간적 신앙 선배로서 성인의 공경보다 높고 하느님 아버지 바로 아래격인 상경지례로 바치고 있으니 확대해석도 좋치만 누구나 성찰을 겸해야 할 것입니다.

 

자매님, 주님의 평화는 크리스천에게 유일한 위로이십니다. 우리가 그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죄를 규명해 나갑시다.

 

이러한 자들과 이 못난 사람을 위하여도 기도 기억해주시고 우리 모두의 어둠의 세력을 다시한번 봉헌해 나갑시다.

 

타다 만 검은 심지에 촛불을 켜시고 조용히 자매님의 고독을 위로받으시면 좋을듯 합니다.

 

우린 모두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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