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어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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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선 [hsyy] 쪽지 캡슐

1999-07-07 ㅣ No.2093

어느날 오후 오랫동안 햇빛을 받으며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무어라고 표현키 어려운 것이 자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였다.  옷이라는 것은 이름뿐인 누더기였고 쓰고 있는 모자는 장식이 다 떨어져 나가 버렸다.  할머니는 아주 괴로우신듯 발을 끌고 가셨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나는 그 할머니 이상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두개의 지팡이에 의지하고 할머니는 걸어 가셨다.  아무에게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무엇인가 종이에 싸서 끈으로 묶은 것을 들고 있었다.  무엇일까?  빵일까?  빵이다 아무도 할머니를 위해서 물건을 사러 갈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할머니는 혼자 나오셔서 빵집까지 끔찍한 여행을 시도하셨나보다.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사람들은 할머니를 보며 :불쌍해라: 하고 중얼대고 가버린다.  할머니의 처참함!  희망도 없어 보였고, 돈도 없고 눈앞에 죽음 밖에는 없는 할머니의 처참함.  나는 거기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굶주린 할머니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이전에는 기쁨의 빛이 번쩍이셨을텐데, 이제는 눈물에 젖어 있는 저 할머니의 눈을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반성해 본다.  오늘도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기도해 본다.  할머니가 이 세상을 잘 마치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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