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그대는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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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kbs001] 쪽지 캡슐

1999-11-05 ㅣ No.863

노을

 

얼마나 더 쓰라린 사랑이어야 그대에게로 갈 수 있느냐.

 

모반의 암호들이 어지러운 소음으로 번성하는 도시. 나는 오늘도 폐쇄된 감성의 창문을

 

열고 먼 하늘 끝으로 새 한 마리를 날린다. 인생은 절망 때문에 아름답고 이별은 상처

 

때문에 망각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칸나꽃 불타는 유년의 뒤안길.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 새 여름은 기울고 서산머리 통곡의 강물로 흐르는 노을.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대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술래가 외어 그대를 찾아

 

헤매고 있다.  산그늘 짙어지는 들녘에 나가 보아도 그대는 보이지 않고, 물소리

 

침잠하는 강변에 나가 보아도 그대는 보이지 않는다. 허무의 풀잎들이 스산하게

 

흔들리는 간이역. 새벽까지 기다려 보아도 그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리를 걷는다. 의지를 상실한 채 범람하는 허영의 물결 속에 표류되는 꿈이여.

 

낭만은 소멸되고 욕망은 번성한다. 도처에 공장이 들어서고 도처에 폐기물이 퇴적된다.

 

거대하게 발기된 굴뚝들이 끊임없이 성욕을 방출한다. 실성한 태양이 현기증을 앓으며

 

서산 너머로 기울어지면 겁탈당한 구름만 통곡의 강물 위로 표류한다.

 

그대에게로 날려보낸 새 한 마리는 질식한 채 추락해 버린다.

 

이제 그리움은 노래가 되지 않는다. 그대를 위해 채집된 시어들은 어두운 서랍 속에서

 

말라 죽고, 유년의 안타까운 기억들마저도 흑백사진처럼 퇴락해 가고 있다.

 

결별 끝에 아물지 않은 상처들만 하늘로 가서 저토록 쓰라린 아픔으로 가슴을

 

물들인다.

 

 

이 외수님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중에서

 

 

 

우리 자손들에게는 맑은 공기가 필요 없을까요? 봉신(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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