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영자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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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민 [tearswon] 쪽지 캡슐

2000-08-25 ㅣ No.3943

중학교때 가장 좋아했던 것중의 하나가 마르세이유페스츄리란 이름을 가진 빵이었답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치면 여느 육상선수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달리기 실력을 발휘하면서 매점으로 뛰어가서는 애절한 눈빛으로 매점 아주머니를 찾아서는 몇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빵을 들고 돌아설 즈음에는 얼마나 기쁘던지...그렇게 힘들게 얻은 일용할 양식을 교실까지 돌아오는길,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비둘기가 얼마나 예뻐보인던지, 정작 제 입속으로 들어가는 양은 반정도에 불과했어요. 조각조각 빵을 나누어서는 비둘기가 모여있는 곳으로 던져주기도 하고, 때로는 3층에 자리한 교실 창문밖에서 우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해 손에 빵조각을 올려놓으면 그사이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잊은채 손위에 덥석 올라와서는 열심히 먹고 가버리는 모습에 여느 아이는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그때는 단지 하늘을 날으는 새라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다가와 좋아했던 새였는데, 요즘 제 머리위에 비둘기라도 날을라치면 소리를 지르고 마는, 연약함을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닌데, 단지 비둘기가 날면 그속에 살고 있던 벼룩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는 저도 모르는 사이 기피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최고의 낭만적 분위기로 손꼽히는, 비둘기가 주변에 산재하고 주인공은 그 가운데서 먹이를 나누어 주는, 그런 장면이 tv에서라도 보일라치면 예전의 비둘기에 대한 애정은 눈씻고 찾을수도 없고 다만 촬영후 주인공을 걱정하고 마는...그런거 같아요. 과거는 과거이기에 소중하게 기억될수 있다는거. 가끔씩 동네 가게에서 그때 최고로 손꼽혔던 마르세이유 빵을 보고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가 여지없이 실망하고 마는, 이런 맛없는 것을 목숨걸고 먹으로 달려갔다는 사실이 이해할수 없으리만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중히 여겨지는 것과 그에따라 의미부여의 대상이 되는 것도 바뀌는거 같아요.

그런데 그 시간을 초월하는 소녀가 있었어요. 어느 산골마을에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녀의 이야기 였어요. 모든 문명과 차단된채 아버지의 교육아래서 18년 동안을 살아왔는데, 그아이 보면서 새삼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어요. 그아인 시간이 지나도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특별히 과거라고 해서 추억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 지금 그 상태로 언제나 존재할거 같다는 생각...문명과 접할수 있는 것이라곤 70년대에나 유행했을법한 낡은 라디오 한대일뿐, 학교도 가지 않고, 한창 학우들과 이곳저곳 몰려다니고 있을나이에 자연과 벗하는 법을 배웠더라구요.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여느 아이들처럼 과외란 것을 받아보지도 않았고, 입시지옥에 시달리지도 않았지만,  그런 아이들 이상으로 총명함을 지녔고, 순수함을 지닌 그런 모습에 한참동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입버릇 처럼 해오던 말중의 하나가 기회가 되면 산속 어느곳에 혼자 묻혀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실없는 소리로 전락해 버릴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이 든답니다. 너무 문명이라는 것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일까요? 단 한순간의 불편함도 감내하지 못하는 인내심을 두고 산속에 묻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포부인지, 대통령이 될거라는 것보다, 유능한 과학자가 되고 의사가 되는 것보다 가장 어려운 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인거 같아요. 어린나이에 자연과 하나가 되버린 그 아이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방송을 보고 어느 시청자는 그렇게 평생을 순수함을 지닌채 그곳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말에 영자씨는 난생처음 방문한 서울에 대해 일말의 동경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아쉬움을 보이긴 했지만요. 모쪼록 영자씨 그곳에서 오래오래 순수함을 간직하기를 설령 서울에 내려오게 되더라도, 조금만 변하게 되기를, 행여 실망하고 돌아서는 일이 없게 되기를, 그렇게 응원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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