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성당 게시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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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렬 [seve] 쪽지 캡슐

1999-09-18 ㅣ No.1530

난 창가쪽 사람일까, 벽쪽사람일까?

 

높은 건물 작은 병실에 두사람의

환자가 있었다.

한사람은 창가쪽 침대에,

한사람은 벽쪽 침대에 누워있었다.

창가쪽 침대의 환자는 벽쪽 침대의 환자에게

창밖에 보이는 것들을

그림 그리듯 자세히 설명해주곤 했다.

밀폐된 공간같은 병실에서

바깥세계의 공기처럼 그 이야기는 신선했다.

"지금 빨간 꽃들이 핀 길로 유모차를 밀고 젊은 엄마가 지나가고 있지요.

그 옆에는 하얀 모자를 쓴 서너살쯤 된 귀여운 아이가

풍선을 들고 따라가고 있어요.

아이가 든 풍선은 노란 색이고 아이는

하늘색 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은

아주 귀여운 사내 아이예요. 저런 넘어져버렸네...."

벽쪽의 환자는 창가쪽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잔디와 꽃들과 날아다니는 새들

그리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창쪽에 누워있던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고 있었다.

벽쪽 환자는 순간 그가 위험한 순간을 맞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간호사를 부르는 벨을 누르려다가

갑자기

’저 환자가 죽어나가면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창쪽에 누워있던 환자가 주검으로 실려나가던 날

그의 자리는 창쪽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가 내다본 바깥 세상에는

꽃도, 새도, 풍선을 든 아이도 없었다.

높은 회색 담이 가로놓여 있었을 뿐이엇다.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비극적인 이야기다.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사랑을 죽여 가는 일이 지금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또다른 병든 자를 위해 아름다움을 지어냈던 창가쪽 환자의 역을 맡아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이 지금도 있기에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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