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주님세례축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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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yk1004] 쪽지 캡슐

1999-01-11 ㅣ No.106

1999년 1월 10일 주님 세례 축일 강론

 

제1독서: 이사야 42, 1 - 4. 6 - 7.

제2독서: 사도행전 10, 34 - 38.

복음: 마태오 3, 13 - 17.

 

   교형,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님의 세례 축일인 오늘은 성탄 시기의 마지막 날임과 동시에 연중 시기의 시작이 되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지난 주 주님 공현 대축일 때 주임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을 통해 '공현(公顯)'이란 말의 의미를 자세히 들으셨을 것입니다. 혹시 못들으신 분이 계신가요? 예, 다른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신 것이 아니라면 고백성사 보셔야 하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공현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의 걸친 삼차원의 공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공현 대축일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방문했던 것을 기념해서 지내지만, 예수님은 만민의 구세주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각 차원의 공현은 각각 나름대로의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아니, 지난 주에 이미 공현 대축일을 기념했는데 세 가지 차원의 공현이 있고 또 세 번의 공현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고 질문을 하시고 싶으신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공현은 목동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 또한 가난하게 태어나셨지만, 이스라엘의 가난한 이들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목동들, 가난했기 때문에 배우지 못해서 율법을 몰라서 지키지 못하고, 먹고 사는 데에 급급하기 때문에 율법을 알아도 지킬 여력이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의 선택된 사람들, 예를 들어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구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건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이 가난한 목동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사건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 공현인 동방박사의 방문 사건은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 오랑캐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당연히 하느님께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방 민족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한 만민의 구세주로 보내셨다는 구세주 본연의 사명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이 두 번째 공현인 동방 박사들의 방문이 구세주의 구원의 보편성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세 번의 공현 사건 중에서 두 번째 공현인 동방 박사 방문 기념일에 지내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공현인 예수님의 세례 축일은 사실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처음 두 번의 사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처음 두 번의 사건은 예수님 태어나실 당시의 사건이고,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은 이미 서른살이 된 장성한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따라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은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세 번째 공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했던 가난한 사람들, 이방인들, 뉘우치는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이 거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 출신 신자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서 교회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이방인들이 세례받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세례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것이며 예수님 공현의 보편성에도 부합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세례 축일을 성탄 시기의 마지막과 연중 시기 처음에 오게 한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사건임과 동시에 또한 공적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활동하는 시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활동을 시작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소식을 선포하면서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을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표시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 진정한 메시아가 오실 때에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회개하는 사람들에 섞여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말대로 오히려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실 분이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은 세례를 왜 받았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공생활이 결국에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으로 끝났음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공생활의 시작이 세례 사건이고 마지막이 십자가 죽음이라면 이 두 사건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분명 관련이 있는 사건입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희생제사이듯이 예수님의 세례도 예수님 자신이 죄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죄많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세상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그런 사건이었고 또 예수님의 죽음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십자가 사건 때 예수님이 죄인처럼 죽어 갈 때에 예수님의 머리 위에 달린 예수님의 죄목을 적은 팻말에는 하느님 백성의 언어인 히브리어, 그 때 당시 사람들의 공용어인 희랍어, 온세상을 지배하는 로마 제국의 언어, 지배자의 언어인 라틴어로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진정한 왕이며 구세주라는 선언이었고 그분의 대관식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는 '야훼 종의 노래' 중 한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내용 대로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시러 오시는' 그러한 권능을 지니신 분이시지만 부러진 갈대도 잘라 버리지 않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꺼버리지 않는 온유한 분이라는 것이 세례 사건과 십자가 사건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오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지만, 죄인들과 섞여서 세례를 받는 주님의 모습은 화려하거나 장엄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어떻게 보면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세상의 왕으로 선포되는 것이 화려하고 위엄이 있기보다는 초라하고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례성사로 인해서 원죄와 자신의 지은 죄를 용서받고 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닮는 것이고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사 때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 해서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신자분들이 고백성사 보는 것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지만, 세상에 살면서 우리 영혼이 죄라는 때가 묻을 때 그 죄를 벗겨냄으로 해서 우리는 다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행실과 다른 이를 위한 봉사를 함으로 해서 우리는 순간순간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천주교에 입문합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서 천주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교파에서는 '돈많이 벌고 싶으면 예수 믿어라.'라고 한다지만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닮은 모습들, 착한 행실과 다른 이를 위해 배려하고 희생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가 참된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로 작정했고 또 닮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고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워서 똑똑하고 남들보다 능력이 많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는 데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세례 축일을 기념하는 우리의 깨달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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