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사순3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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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yk1004] 쪽지 캡슐

1999-03-09 ㅣ No.137

1999년 3월 7일 사순 제3주일 강론

 

제1독서: 출애굽 17, 3 - 7.

제2독서: 로마 5, 1 - 2; 5 - 8.

복음: 요한 4, 5 - 42.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요한 4, 14)

   교형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달이 바뀌기가 무섭게 봄기운이 완연한 요즈음입니다.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던 겨울을 보내고 나니 봄은 갑자기 어느새 우리 곁을 찾아온 느낌입니다. 이제는 아직 걸치고 있는 겨울옷이 무겁게 느껴지고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전에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간단하게나마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과 많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는 남쪽부터 유대아, 사마리아, 갈릴래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한민족이 남쪽에 남한, 북한, 그리고 조선족의 만주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단된 지가 이제 겨우 50년이 좀 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분단은 예수님 당시에는 벌써 몇 백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핏줄로도 종교적으로도 다른 민족과 혼합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핏줄의 순수성과 종교적인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던 유대아 사람들에게 배척 당해 왔던 것이 예수님 당시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유대 사회에서도 우리 조선 시대처럼 엄격한 '남녀유별(男女有別)'의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서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쁜 민족적인 적대감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과 동시에 낯모르는 여인에게 함부로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관습적인 장벽을 무너뜨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캔달'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예수님을 보고서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관점에서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 제자들이 음식을 권할 때 분명히 목마름과 배고픔을 느끼고 있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을로 달려가는 사마리아 여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흐뭇함이 또 나중에 그리스도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몰려올 사람들을 기다리는 흐뭇함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잊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보고 '생명의 물'을 얻으러 올 것을 기다리는 예수님, 사람들을 회개와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비롯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회개가 예수님의 배고픔을 잊게 했듯이 오늘날의 우리 자신의 회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말과 행실의 증거를 통한 복음선포, 그래서 아직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생명의 물'을 찾아오게 하는 것, 다른 말로 선교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간단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여인과의 대화는 동문서답(東問西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엉뚱한 대화를 통해 '사마리아 사람과 유다인은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라든지, '낯모르는 남자는 낯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 수 없다.'든지 하는 평범한 상식 속에 묻혀 있는 이 여인에게 하느님께서 구원의 손을 펼치셨다는 것, 그래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가 그의 눈 앞에 있다는 사실로 그 여자를 이끌어 갑니다. "물을 달라." "어떻게 유다인인 당신이 나에게 말을 겁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나에게 샘솟는 물을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훌륭하다는 말입니까?"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여기서 이 여인은 예수님이 던진 낚시의 바늘을 물기 시작합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다." 여기서 이 여인의 부끄러운 과거는 완전히 폭로가 되고 맙니다. "그것을 알다니 당신은 예언자입니다. 과연 진정으로 예배드릴 곳은 저 산과 예루살렘 중 어느 곳입니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겠지요."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눈여겨 보라고 말하고 싶은 곳은 바로 이 여인이 "당신은 예언자십니다."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인정한 근거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부끄러운 현재생활을 알아 맞혔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자신과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를 남편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떳떳하지 않은 관계에 있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는 것,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 현재 부끄러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다른 이의 입에 올려지는 것이 싫은 것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여인의 입장이 되어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그분이 예언자임을 알아 보고 계속 대화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말문을 닫아 버리던지 시선을 피하던지 될 수만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하시겠습니까? 자매님들 뿐 아니라 형제님들도 많은 경우 말문들 닫는지 자리를 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의 대단한 점입니다. 피하기는커녕 예수님이 예언자임을 알고서 그분께 도리어 진정한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자임을 알아본 이 여인이 예수님이 이 세상의 구원자인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는 것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이 부분을 눈 여겨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와 현재가 들추어짐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리석어 보일 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실 때문에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었고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여인이야말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샘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여인은 동네에 가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그 근거는 자신의 과거를, 그것도 하필이면 부끄러운 과거를 알아 맞추더라는 사실을 증거로 대면서 말입니다. 이 여인은 겁 없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정말 어떤 면에서는 용감한 여인입니다. 이것이 이 여인의 회개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한 눈에 알아내더라는 그것이 이 여인에게 있어서 발목을 잡는 영원한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길로 이 여인을 밀어내는 힘이고 생명의 샘물에 대한 목마름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회개'라는 것은 힘없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스런 모습도 기꺼이 인정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샘물을 간절히 마시려 하는 진정한 용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만이 남을 위해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우리의 성당의 경우에 있어서는 성전보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일 수 있으며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 회개의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것은 용감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얻을 수 있는 승리의 월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용감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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