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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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4-28 ㅣ No.4800

 

 

어느 날 한 초등하교 소년은 ’울지않는 호랑이’라는

권투선수 김득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내가 김득구의 원수를 갚아 줘야지’.

윤석현 님(31세). 그는 그때부터 시골 마당에 링을 돌맹이

로 그려 놓고 권투 선수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엄마, 죄송합니다.

제가 세계 챔피언이 되면 엄마 모시러 올게요’ 라는 편지

한 장 달랑 남겨 놓고 겁도 없이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갓 상경한 그에게 챔피언의 꿈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돈 없이는 당장 생계 유지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던 그는 닥치는 대로 호프집

아르바이트, 목욕탕 카운터 일, 자장면 배달, 막노동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체육관에서 권투를 했습니다.

봉천동 낡은 건물 꼭대기에 자리집은 대원체육관.

챔피언의 꿈은 안고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의 땀이 배어

있는 곳입니다. 그는 이 곳에서 언젠가는 세계 최고가 되리

라는 깡 하나로 버텼습니다.

부모님은 뭐 하러 얻어 터지는 일을 하느냐고 반대가 심했

지만 그의 꿈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해냈습니다.

1995년 한국 웰터급 챔피언을 거머쥔 것입니다.

1989년에 프로에 데뷔하고 타이틀 도전 5년 만에 거둔

수확이었습니다.

하지만 참피언이 되어도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습

니다.

스폰서가 없어 시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권투 선수가 시합을 하지 못하면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실의에 바진 그는 술을 마시며 권투 연습

을 게을리 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기만한 복서의 길을 계속 가야 할지 고민할 때 그를

잡아 준 것은 선배의 따끔한 한마디였습니다.

"평생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시골에서 올라와 그렇게

힘들게 운동을 해 왔는데 이제 와 그만두면 아깝잖냐?"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그는 다시금 운동에만 전념

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말 일본에서 있을 동양 타이틀 전을 준비

하는 중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합을 하기 위해 링에 오르면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죽어도 이기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끝내는 7라운드 TKO승을 거둔 겁니다.

동양 챔피언을 따고 돌아온 그는 아버지 묘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아버지, 저 동양 챔피언이 됐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나 기쁨도 잠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그는 동양

챔피언이 되어도 권투에만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권투를 하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일과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5킬로미터를 뛰어

체육관에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몸을 풀고 난 뒤

돈을 벌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그.  

웬만큼 점심 손님을 치러 낸 오후 2시.

그는 다시 권투도장으로 갑니다.

체육관에서도 유별난 연습 벌레로 통하는 그는 연습

경기라도 절대로 가볍게 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저 선수 죽어도 이긴다. 쟤 아무것도 아니야.

난 이길수 있어.

속으로 이렇게 마음먹고 종 땡 치길 기다립니다."

 

종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상대를 무섭게

몰아치는 그.

어느새 눈두덩이 붓고 입가에 핏물이 배지만 그는

물러서는 법을 모릅니다. 어쩌면 그는 인생에서도,

권투 시합에서도, 물러서는 법을 몰랐기에 이만큼

달려올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밤이 되면 다시 식당에 가서 일하다 10시쯤 되어서

야 반지하 집으로 들어가는 그.

그는 이처럼 아침과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

권투 연습을 하는 힘든 생활을 하지만,

집에 가서도 쉬지 않고 권투 연습을 합니다.

서른한 해 중 절반의 세월을 권투에 내던진 그에게

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만약에 우리 집이 잘살았으면 권투 안 했을

거예요. 이렇게 힘든 걸 왜 합니까? 그렇지만 너무

없다 보니까 이 꿈이 라는 걸 절대 포기 못하겠더

라고요.

이왕 시작한 거 꼭 세계 타이틀을 따고 말 겁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각의 링은 인생을 건 도전입니다.

물론 아직도 그의 세계 참피언을 향한 길은 험난

하기만 합니다. 연타를 좋아한다는 그.

연타란 링 위에서 도망가지 않고 무조건 전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계 챔피언 벨트를 가지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 뵐 그 순간까지 복서

윤석현에겐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가 그의 방 한쪽 벽에 써 놓았듯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의 정신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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