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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신학자의 사적 견해가 아니다 [교리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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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7 ㅣ No.1172


라칭거 추기경이 새 훈령에 대해 보도 기관에 발언한 내용

 
신학은 신학자의 사적 견해가 아니다.

1990.6.26. 

(번역: 대구 가톨릭대 최영철 신부)
[아래의 글은 요셉 라칭거( 교황 베네딕도 16세 2005년) 추기경이 1990년 5월 24일자
훈령(신학자의 교회적 소명 DONUM VERITATIS, ON THE ECCLESIAL VOCATION OF THE THEOLOGIAN)
소개하기 위하여 마련된 1990년 6월 26일자 기자 회견 중에 언론인들에게 진술한 의견이다.] 

  신학자와 신학이 전체 신앙인 공동체를 위하여 중요하다는 사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회기 동안에 새로운 방식으로 명백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학은 한정된 수의 성직자들을 위한 업무로, 교회 여론의 일부분에 국한되어 겨우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선별된 이론적 활동으로 간주되었다. 신앙을 이해하고 표현함에 있어서 공의회가 천명하였던 새 방식은 새로운 영적 및 문화적 운동들과 연관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후에 시작한 새로운 신학적 반성에 의해 초래된 극적 사건의 결과 였다. 

  발전과 관련된 고지식한 낙관주의와 더불어 자유주의적 특징을 띤 근본 방향은 전쟁 공포의 와중에 와해되었고 또한 그것과 함께 신앙을 세계의 자유주의적 관점에 적용시키려 도모해 온 신학적 근대주의도 붕괴되어 왔다. 전례 운동, 성서 운동 및 교회 일치 운동 그리고 영향력이 컸던 마리아 운동은 새로운 신학을 성장 발전시켰으며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안 전체 교회에 큰 이득을 가져다 준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주교들은 부분적으로 아직도 그 자신들에게 상당히 친숙하지 아니한 신학의 풍성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고 또한 신학자들로부터 조언받기를 기꺼이 원하였다. 이리하여 신학자들은 주교들이 아직 탐색하지 아니한 영역을 비추어 주는 안내자였지만 최종 결정들 즉 공의회의 선언문들 또한 따라서 교회 자체의 선언문들이 될 수 있었던 결정 사항들은 여전히 교부들의 권한에 위임되어 있었다. 

  공의회 이후에 이 같은 진전의 활력은 지속되었다. 즉 신학자들은 갈수록 더 스스로 교회의 참 교사라고 생각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주교들의 교사로 자각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공의회의 개최와 더불어 신학자들은 대중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매스컴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 교황청의 교도직은 더욱더 진부한 권위주의의 최종  유물처럼 보였다. 이리하여 신학과 신학자들의 역할 그리고 이들의 교도직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반성이 요구되었다. 신학과 신학자 쌍방을 그들의 내적 논리로부터 시작하여 파악하려 노력하고 또한 따라서 교회에 봉사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앙과 이성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고유한 방도를 강구하는데에 기여 할 수 있을 새로운 반성이 필요하였다. 

   이 훈령은 이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근본 문제는 인간학적인 문제이다. 즉 종교와 이성이 올바른 관계를 수립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 사람들의 영적 생활은 한편 일률적이고 기계적인 합리주의에로 그리고 반면에 비관적인 비이성주의에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밀교(密敎)현상의 바람은 우세한 실증주의적 합리주의 안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층들이 더 이상 통합될 수 없으며 또한 따라서 여러 유형의 미신이 다시금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

  실증주의는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능력을 부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인식을 행해지고 체험되는 바에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비이성적인 것은 우리가 행동의 영역을 포기하는 그 지점에서 득세한다. 인간은 겉으로 온전히 해방된 것처럼 보여지지만 알 수 없는 세력들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어 있다. 바로 이런 연유로 인해 훈령은 신학적 주제를 진리와 참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능력의 문제라는 광범위한 범위 안에서 논의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소일거리가 아니며 그리고 교회는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다른 회원들로 구성된 클럽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신앙은 인간의 기원과 운명에 관한 인간의 기본 문제에 해답을 준다.

  신앙의 기초에 있어서 으뜸자리를 차지하는 명제는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셨다는 것 또는 사물들은 처음부터 합리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앙은 인간에게 일종의 정신 요법을 제공해 주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앙의 정신 요법은 진리이다. 바로 그런 까닭으로 신앙은 그 본질에 있어서 보편적이고 선교적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 자체 안에서 시작되는 신앙은 교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해를 추구 한다(quaerens intellectum). 따라서 이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 말씀에 대한 관심의 합리적 획득- 는 구성적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속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신학이 생겨나게 한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이 요인 때문에 종교 역사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되는 것이다.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구조에서부터 나오는, 특유하게 그리스도교적 현상이다.    

  신학을 앞서는 하느님 말씀

  그렇지만 신학이 어떻게 종교 철학 및 세속적인 종교 학문과 구별되는가? 인간 이성이 그 자체 홀로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실로 말미암아 구별된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성을 선행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확실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는 하지만 신학 자체로부터 연유하지 않고 오히려 신학에 주어지고 또한 따라서 신학의 영역을 끊임없이 넘어서 확장한다. 말씀은 우리가 역사의 과정 중에 결코 남김없이 다 연구할 수 없는 과제로 존속한다. 신학은 하느님께서 전에 우리에게 건네 주신 말씀에 뒤이어지는 반성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전에 하느님의 마음 속에 품어져 있었으므로 우리들에게 건네졌던 것이다. 만일 신학이 이런 견고한 바탕을 포기한다면 신학이기를 중지하는 것이고 회의론으로 전락하며 또한 존재가 불가피하게 비합리주의에로 붕괴하는 것이다.

  훈령에로 되돌아 가자. 이 문헌은 이같이 폭넓은 맥락 안에서 신학자의 임무에 대해 진술하고 또한 그리하여 신학자의 사명이 지닌 중요성을 역설한다. 누구든지 문헌의 명확한 제시를 주시한다면 우리가 먼저 교도직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선사하신 진리의 주제에 관해 진술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 사실에 대해 거의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신앙의 진리는 고립된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진리를 통하여 하느님은 역사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를 원하셨다. 진리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적 주체 곧 교회 안에 있다. 우리가 진술하고 있는 두번째 사항은 신학자의 소명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교도권 그리고 쌍방간의 상호 관계가 논의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뜻한다 : 

    1. 신학이 단순히 교도직의 보조 기능만은 아니다. 즉 그것은 교도직이 가르치는 주제들에 한정되어서는 아니 된다. 신학은 그 자신의 고유한 기원을 지닌다. 문헌은 성 보나벤뚜라의 말을 언급하면서 신학이 교회 내에서 가지고 있는 두 뿌리를 밝힌다. 하나는 진리 및 신앙 안에 본래 내포되어 있는 이해에로 향한 역동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랑받는 자를 보다 깊이 더 잘 알려고 하는 사랑의 활력이다. 신학내의 두 가지 방향은 이에 상응하지만 그것들은 상호 얽혀 있다. 즉 하나는 세상 안에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 탐구와 더불어 대화를 도모하는 방향에서 밖으로 나아가려 하며 또 다른 방향은 신앙의 내적 논리와 깊이를 파고 들려고 노력하면서 안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2. 훈령은 통상 하듯이 "교도직- 신학" 이원론에서부터 시작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 다음과 같은 삼각 관계의 구도 안에서 출발하여 신학자의 교회적 사명 문제를 다룬다. 신앙심을 지닌자이며 신앙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든 이들이 속해 있는 공동 장소인 하느님의 백성과 교도직 및 신학의 삼각관계 안에서 신학자의 교회적 소명이 논의 된다. 지난 150년 동안에 이루어진 교의의 발전은 이 복합적인 삼각 관계의 가장 뚜렷한 구현인 것이다. 신앙심이 1854년, 1870년 그리고 1950년의 교의들을 재발견하였으므로 그것들이 가능하였다. 즉 교도직과 신학은 신앙심에 의해 주도되었고 또 그것들은 신앙심을 획득하려고 점차로 노력하였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미 신학의 근본적인 교회적 성격을 표현해 왔다. 신학은 한 신학자의 사사로운 견해가 결코 아니다. 신학자의 사견 그 자체는 잠시 동안 참작될 수 있겠지만 급속히 무의미의 영역에로 떨어지고 말것이다. 그 대신 교회는 역사의 변천 속에서도 견고하게 계속 버티어 오고 있는 살아 있는 주체로서 신학자의 산 영역이다. 신학이 체험해 온 하느님의 경이로운 일들이 교회 안에서 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은 그 자신의 살아있는 영역 즉 교회 안에 계속 뿌리를 내리면서 그리고 교회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교회를 인정할 때에 한하여 역사적으로 계속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와 같이 신학자들에게는 교회가 그들의 반성에 무관한 외부 기관이 아니다. 교회는 개인의 한계를 초월하는 공동체적 주체로서 신학자가 능력을 갖추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두 가지 것이 신학자를 위하여 근본되는 까닭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방법론적 명료화는 과학의 전제 조건들 안에 속한다. 훈령은 그 밖에도 신학자의 특별한 파트너로서 철학과 역사 학문 그리고 인문과학을 지적한다. 그리고 반면에 신학은 교회의 산 구조에 내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즉 기도와 관상과 생활인 신앙을 지녀야 한다. 이 요소들과 결합될 때에만 그것이 신학이 된다.  
 

  교회 교도직

   교도직에 대한 조직적인 이해도 여기서 시작된다. 교회가 신학에 속한다고 우리가 말해 왔다. 그런데 교회는 그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다면 신도의 단순한 외부 기관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신앙은 신학을 앞선다. 즉 신학은 우리 자신이 생각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사고에 도전하지만 결코 우리의 사유에로 환원될 수 없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이해의 추구이다. 신학적 탐구에 우선하는 이 말씀은 신학의 척도이고 또 그 자신의 특유한 기관을 필요로 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그 후계자들에게 내맡겨주신 교도직을 필요로 한다. 나는 여기서 보다 충분하게 문헌이 교도직과 신학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개진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호 협력 관계"라는 소제목하에 훈령은 교도직과 신학 쌍방의 특수한 과제 그리고 그것들이 상호 협조하기 위하여 취하는 올바른 방식들을 제시한다. 교도직에 권위와 최종 결정의 권리를 부여하는 신앙의 우월 위치는 신학적 탐구의 자주성을 말살하지 않고 단순히 그것에 견고한 바탕을 부여한다. 문헌은 가장 유리한 조건하에서조차 긴장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쌍방이 각자 고유한 역할의 내적 상호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그 긴장을 직면한다면 그것이 많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가르침의 수준들

   훈령은 또한 교도직의 가르침이 상이한 수준들에서 기인되는 여러 형태의 유대 관계를 제시한다. 그것은 -그토록 명백하게는 아마 최초로 - 사항 그 자체에 있어서 최종적인 말이 될 수 없고 또 되려고 하지는 않지만 문제에 근본되는 핵심을 다루며 세심한 사목적 배려의 주요하고 으뜸가는 표현, 일종의 예견적 배려가 되는 교도직의 결정들이 있다고 진술한다. 그 가르침들의 핵심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한때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는 각 세부 사항들은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교황들이 지난 세기 동안 종교 자유에 대해서 진술한 발언뿐 아니라 금세기의 시초에 근대주의에 대항하여 내린 결정들, 그리고 특히 그 당시에 성서위원회가 내린 결정들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성급하고 피상적인 적응들에 대한 반대 목소리로서 충분히 정당한 결정으로 존족된다. 예컨대 요한 밥티스트 멧츠와 같은 인물은 교회가 근대주의를 거스려 내린 결정 사항들 덕분에 자유주의적- 부르조아 세계에로 빠져들지 않게 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의 세부 결정 사항들은 한 특정 순간에 그것들이 사목적 임무를 일단 수행하고 난 이후에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마지막 장의 둘째 부분에서, 이 같은 건전한 유형의 긴장의 맥락 안에서 그릇된 유형의 그런 긴장이 "불찬성"이라는 제목하에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60년대에 근거를 두었던 표어로 훈령 안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신학이 다수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고 또 신도에게 양자 택일적인 행동 규범을 제공해 주는 반(反)교도권을 생겨나게 할 경우에 그 본성에 따라 처신하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그것은 그 순간에 정치적 요인으로 전락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권력의 구조로 바뀌고 정치적 다수의 본보기를 따른다. 그것은 교도직으로부터 유리됨으로써 그 발판으로부터 바탕을 곧 그것을 지탱해 주는 토대 자체를 상실하게 되고 또 사고의 영역으로부터 권력놀이의 영역에로 옮아감으로써 자신의 과학적 성격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존재의 기반마저도 잃게 된다. 

  훈령이 신학과 교도직 사이의 용납될 수 없는 그릇된 유형의 대립들 그리고 건전한 유형의 긴장들간에 있는 차이점을 개진함으로써 교회내에 긴장 완화 분위기를 재조성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우리는 바란다. 교회는 건전한 신학을 필요로 한다. 신학에는 교도직의 살아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 훈령이 교도직과신학 간의 대화를 새롭게 하는 데에 기여하고 또한 그리하여 2000년대의 마지막 짧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교회에 그리고 교회와 더불어 진리와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는 인류에게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문 : Card. Ratzinger speaks to Press on New In-struction. "Theology is not private idea of theologian. L'Ossevatore Romano, N. 27, 1990년 7월 2일, 5면. 번역 : 대구 가톨릭 대학 최영철 신부) *

(출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회보 62호 53면)

영어본 출처: http://catholicism.org/theology-not-private-ratzing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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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24일자 훈령(신학자의 교회적 소명 DONUM VERITATIS, ON THE ECCLESIAL VOCATION OF THE THEOLOGIAN)의 영어본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여기를 클릭하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회보 62호 42면에 실린, 1990년 5월 24일자 훈령(신학자의 교회적 소명 DONUM VERITATIS, ON THE ECCLESIAL VOCATION OF THE THEOLOGIAN)의 우리말 번역문을 또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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