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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하나님은 왜 이런 기형아를 만드시는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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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5.*]

2006-09-11 ㅣ No.4448

1.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수단으로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들은 나중에, 현세에서든 내세에서든 뭔가 보상이 주어질까요 ?

 

: 하느님의 역사 하심에서 '수단'이라기보다는 욥의 생명만은 침탈하지 말 것을 사탄에게 명령하신 '섭리'로 여겨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님의 이웃에 대한 측은지심이 필자의 그것보다 훨씬 거룩하고 경건하지만 이 또한 '님'을 깊은 님으로 여겨주실 줄 믿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느님의 은총은 늘 현존하십니다. 또한 지상에서 고통을 많이 겪을 분일수록 천상에 더욱 빨리 오르실 수 있다고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일지기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 당시 교권에 도전을 하면서 '오직 성령,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이라는 모토를 주장하였는데 이로서 우리 다수의 그것처럼 말씀의 앞 뒤 자체를 맞출 수 없는 능력의 우리이기에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조차 때론 부질없다 여겨집니다. 이는 가톨릭의 침묵이 살아있는 중요한 사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우님의 지금의 그 측은지심의 발로이신 주님의 권능이 있을 뿐입니다. 의심하지 마시고 계속 평화의 도구가 되어 주십시오. 필연으로 우리가 바라는 기적조차 초월하는 하느님의 사랑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2. 혹시, 이 아이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면, 그래도 이 아이의 영혼은 구제받지 못하는 걸까요? 

 

: 아이는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고 뒤집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면 하느님을 흠숭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빛의 자녀들이 그만큼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둠은 없다 합니다. 오히려 빛에게 백전 백패의 어둠이 스며드는 매우 깊은 밤에도 빛이 적을 뿐이지 100%의 어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대낮에도 빛이신 주님을 더 영접하려는 욕심을 앞세우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님을 더 영접합시다. 보고있어도 보고 싶었던 부부들이 신혼의 시절을 묵상하듯 그렇게 나아갑시다. 하느님이 우리를 무조건 구원하여 주시고 싶어하듯 우리도 그렇게 나아가면 그 뿐일 것입니다.

 

천주교는 가톨릭(보편성)의 뜻이 보편적인 사랑이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고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삶을 바치는 개미형의 삶과 님처럼의 꿀벌처럼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도 보다 적극적인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아이들에게 어찌 주님께서 구원해 주심을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개미형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어찌 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당시의 기독교(그리스도교)에 대한 반항심리로 오직 성령, 오직 예수, 오직 성경만을 앞세운다던 마르틴 루터 사제의 착오로 인한 그리스도교의 연옥 교회에 대한 인간적인 누락과 관련이 있는 질문입니다.

 

가톨릭은 천상교회와 연옥교회와 지상교회를 함께 기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제와 하나되어 교회와 하나되어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사를 보거나 참례(예배)하는 것입니다. 님도 크리스마스(그리스도미사)로 산타크로스(거룩한 십자가)의 선물을 기대하였고 예배하십니다.

 

천상 교회가 꿀벌형 삶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면 연옥 교회는 개미형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지상은 어둠속에 진을 치고 연약한 이들을 잡아 먹으려는 거미형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때때로의 우리들의 자아일 뿐입니다.

 

억대 연봉자등의 말씀의 은사를 가진 목사님들도 욥의 고통을 겪는다면 나중에 성부에 대한 사랑속에서 성모님의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할 것이며 이러한 골수 개신교우들이 결국 가톨릭으로 귀의하는 것도 같은 여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내의 나약하고 자아가 많은 신자들이 정통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며 성경을 교의적으로 활용하는 여호와의 증인등에게 밥이 되고 자주 자리를 이동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인 것입니다.

 

아무튼 2,000여년전 사도시대보다 더 성령이 충만한 시대가 도래함을 믿으시고 열심히 기도하시고 공부하시고 봉사하시고 또한 개신교우들이 쉽고 편안하게 젖기 쉬운 환경의 준 성사생활의 오류를 쇄신 받을 때 가톨릭의 성사생활도 함께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공동체 생활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초대 공동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개신교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을 피력한 것도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염치 없으나 님께서도 믿는 그분께 그것을 의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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