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공부방이 생기던 날 |
---|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하늘이 머리에 닿을 듯한 가파른 달동네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사업실패의 충격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누워 계시고 어머니와 우리 두 형제까지 복작대는 단칸방.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서로의 체온과 이불 두 채로 겨울은 그럭저럭 날만 했습니다. 하지만 봄이 되어 날이 풀리자 거동을 못하는 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고역이었습니다. "으... 냄새." 사춘기였던 나는 조금씩 비뚤어져 갔습니다. "에휴, 원 녀석하고는...." 반에서 1,2등을 다투던 성적 또한 점점 바닥으로 추락해 갔습니다. 자꾸만 어긋나는 아들을 보다못한 어머니는 난생 처음으로 내 종아리를 때리고는 서럽게 우셨습니다. "왜, 왜 정신을 못 차려. 왜. 날보고 어떻게 하라고... 흑흑." 나는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기는 커녕 철없는 말로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습니다. "나도 내 방을 갖고 싶단 말이에요. 책상도 없이 냄새나는 방에서 공부를 어떻게 하냐구뇨." 그렇게 집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갈 곳도 없을 뿐더러 어머니의 슬픈 얼굴이 자꾸만 더올라 마음이 아리던 나는 결국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방문을 열자 좁은 방의 삼분의 일을 가리고 있는 낯선 황토색 커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어어?" 그 커튼을 젖힌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커튼으로 가린 공간에는 푹신한 방석과 함께 책상 대신 앉은뱅이 밥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던 것입니다. 밥상 위엔, 아니 책상 위엔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미안하구나, 엔젠간 꼭 내 방을 만들어 주마.’
집안 형편을 빤히 알면서도 공부방을 만들어내라는 막내의 투정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나는 그 편지를 지금도 내 수첩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