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담요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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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0-01 ㅣ No.5400

 

남도의 작은 섬 소록도에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 떠밀린 한센병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자리내린 소록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병원이요, 800명 남짓한 주민 모두가 닮은 아픔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6.25전쟁통으로 남으로 남으로 줄지은 피난민 물결에 묻어 내려온 후 아내도 자식도 없이 홀로 살아온 남자.

그가 한센병에 걸려 섬에 격리된 것은 20년 전이었습니다.

혼자 눈뜨고 혼자 일어나 뭉툭하게 굳어버린 손으로 혼자서 밥을 끓여먹는 서글픈 나날....

"할아버지, 아침 드시네요? 설거지는 제가 해드릴게요."

하루 한 번씩 섬복판의 큰 병원에서 오는 자원봉사자가 초라한 집의 유일한 마실꾼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방바닥이 이렇게 찬데 이불이라도 두껍게 덮지 그러세요."

"아, 이불이 있어야 덮지."

"저건 이불이 아니고 뭐예요?"

"저거는 안 돼."

할아버지의 오두막 선반 위엔 벌써 10년째 꽁꽁 여민 이불보따리가 얹혀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아무리 추워도 그걸 풀려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 이불을 덮으라고 있는 거지. 신주단지처럼 모셔두면 뭐해요?"

속 모르는 자원봉사자가 성화를 대자 할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이불보따리가 신주단지가 된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보따리에 든 것은 10년 전에 병원에서 배급받은 담요 두 장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때고 통일이 돼서 북한에 가게 되면 동생들 줄라고 아끼는 겨. 내가 그날 못보고 죽으면 누구한테 부탁이라도 해서 갖다 줘야지."

해마다 장마철에 습기라도 차면 볕에 말려 소독까지 해가면서 10년을 간수해왔다는 담요 두 장.

그것은 할아버지를 살아 있게 하는 약이며 할아버지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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