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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24 아름다운 쉼터(할아버지의 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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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3-24 ㅣ No.325

할아버지의 비책(지장홍, ‘아직 네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 중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부모를 잃은 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다. 비록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었지만, 서로 의지하며 누구보다 정답게 살아갔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얼후(중국 전통 현악기)를 연주하고 받은 돈으로 그날그날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병을 얻어 그만 몸져눕게 되었다. 머지않아 자신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예감한 할아버지는 아이를 불러 말했다.

“얘야, 네 얼후 안에 세상 그 어떤 사람도 모르는 비책을 넣어 두었단다. 그것만 있으면 너는 어두운 세상에서 벗어나 햇빛을 볼 수 있단다. 하지만 명심해야 해. 그 비책은 천 번째 얼후 줄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 비로소 꺼내야 한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뒤 할아버지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났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한시도 할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았다. 하루 하루 쉬지 않고 얼후를 연주하며, 끊어진 줄들을 따로 소중하게 보관했다. 마침내 천번째 얼후 줄이 끊어졌을 때, 소년은 이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얼후함을 열었다. 그러나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백지를 바라보던 그의 눈가에 촉촉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아버지가 남긴 백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비책이었다. 홀로 남겨질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려는 할아버지의 배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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