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눈길 따라 다녀온 순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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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애 [sophia1008] 쪽지 캡슐

2004-01-18 ㅣ No.2888

매괴 성모 순례지

 

천주교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옛 장호원 성당)을  가다..

 

  오늘은  겨울답지않게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  쬐는 화창한  날씨였다.

작은  등대로  살고자  하는 몇몇  자매님들이   오늘은   장호원  감곡  성당으로  피정을  떠났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눈  경치는  마음의  찌꺼기를  다  씻어버리는

깨끗한  기분이 들었다.

감곡 성당에  도착하니  11시가  되어 미사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미사를 드리고  이곳의  역사를 들은 다음  성당에서 마련해 주신 따뜻한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쁜 동산으로 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한바퀴 돌았다.

 

동산은 하얀 눈으로  덮혀  깨끗하고 상쾌하였다.

14처상을 묵상하면서 걷는 길은  밟지 않은 하얀 눈밭도 있고  햇빛에 녹아

미끄러운 길도 있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묵상하면서....  

순탄한 길도 가셨고..  높고 험한 길도 가셨고..   미끄러워서  걷기 힘든 길도

가심..을 생각케 하였다.

조심 조심 하였건만 한 자매님은 미끄러 지기도 하였다.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자연스레  감곡성당(순례성지)을  돌면서 박물관에서  감곡성당의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신부님의 음악 피정이 있었다..

지루하지 않게  키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피정을  하였다..

노래 한곡 부르고  묵상...또  노래 한곡  부르고  묵상........   

주님은 계시고  성체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어려울때  주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꽉 짜여진  피정이 오늘 하루를 보람있는 날이 되게 하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민들레 홀씨되어  라는 가요를 다같이 부르면서  팀웍도 다지고  마음 뿌듯하게  담아오는 것도 많은 좋은 피정이 되었다.

 

 

 

    감곡성당이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되고

     (매괴 성당)이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임가말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

로 1893년 서품을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 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

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사목지가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사목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

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먼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것 입니다."라고 기도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 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 성월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 가말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 대로

감곡성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 곳이 감곡 매괴 성모 성당이 된 것이다.

 

 

   매괴 성당은 늘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며

   성모님 본연의 역할인 전구하심이

   크게 드러나는 곳 입니다.

 

 

    성모광장

 

 1943년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자 임 가밀로 신부가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 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사 중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2년 만에 해방이 되면서 물러가게 된다.

신사 터가 될 뻔했던 곳이 1955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성모 광장으로 봉헌되고 매년 거행되는 성체거동 때 현양대회 미사를 그곳에서 지금까지 거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섭리라 생각된다.

 

 

     수난 받은 성모님

 

 매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제작하여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되었는데 한국 전쟁 때 인민군의 총을 7번이나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총 구멍만 남아 있고 건재하게 서계신 성모님의 모습은 주보성인으로서 본당을 수호해 주시고 늘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다. 7발의 충알은 성모님께서 당하셨던 "성모칠고"와 깊은 관계가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성체거동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사랑을 바탕으로 신앙의 기초를 놓았지만 우리 신앙의 핵심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며 성체성사가 신앙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 1914년 부터 한국 최초의 성체 신심 행사인 성체

거동을 거행하게 된다. 1914년 성체성혈 대축일 이래 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만을 제외하고 매년 거행되고 있다.

 

 

 

 

성모님 사랑의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와 매괴 성모 순례지

 

1.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51년동안 본당에서 사목 생활을 하셨던 임가밀로 신부는1947년 10월 25일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전 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이는 이 민족과 신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잘 말해 준다 .

임 가밀로 신부는 프랑스 타르브교구,빌레아두르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그 곳은 루르드에서 20Km 떨어진 곳으로 어렸을 때 부터 엄마 손을 잡고 정기적으로 루르드를 방문하여 루르드의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성장했다는 것이 기록

으로 전해지고 있다.

 

 

 2.매괴 성모 순례지

 

 감곡 매괴 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 된 어머니 성당임을 알 수 있다.

성모님 사랑과 성체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가 된 곳이며, 150여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이다. 또한 임 가말로 신부를 통한

성모님 사랑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이며, 늘 성모님께서 함께 하면서 전구

하심이 크게 드러나는 곳 이다. 이제 이 곳은 매괴성당 신자들만의 성당이 아니라 모든 신자 들의 성당, 섬모님의 사랑과 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매괴 성모 순례지, 기도의 순례지로 개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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