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자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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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종성 [clown] 쪽지 캡슐

2000-01-19 ㅣ No.840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이것은,살아서 인식하고 있는 모든 존재에 해당되는 진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반성적이고, 추상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것은 오직 인간뿐이며, 인간이 실제로 그렇게 의식할 때에, 거기에 인간의 철학적인 사유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태양을 알고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태양을 보는 눈이 있고, 대지를 느끼는 손이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세계는 자기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고 하는 표상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것이 명백하고 확실해 진다.만약 선험적 진리라는것이 말해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그 진리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진리는 시간, 공간, 인과와 같은 다른 모든 형성보다 한층 더 보편적인,생각이 가능한 모든 경험의 형식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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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진리처럼 확실하고 다른 모든 진리에 의존하지 않으며 또 증명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것은 없으며 ,인식에 의해 존재하는 일체의 것, 즉 이 세계는 주관과의 관계에 있어서 존재하는 객관에 불과하며, 직관하는 자의 직관, 한마디로말해 표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진리는 현재에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먼것에도 그리고 가까운 것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 진리는 이 모든 것을 구별해 주는 유일한 것인 시간과 공간 그 자체에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속하는 것과 속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주관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러한 제약을 받는것이며, 그래서 주관에 의해서만 존재하는것이다. 세계는 표상이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제 1 고찰 1장"중

 

 

 

오늘 하늘이 참 푸르렀다. 그리고 난 오늘 나무를 보았다. 한동안 나는 나무를 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은 모르나 나무가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나무를 바라보지 못할 만큼 나는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있었다. 바로 그 나무를 오늘 본것이다. 때가 되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그런 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자유"라는 주제로 글을 올렸는데, 내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자유라는 말을 언급한 것 같다. 내가 남들보다는 조금더 자유롭다고 느꼈기에, 나의 자유를 나누고 싶었고 내 식구들이 그것을 보고 조금더 자유롭게 되었으면 했는데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나의 자유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는 예수 안에서만 가능한 것을...내가 교만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의 한낱 소망일 뿐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광대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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