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주님의 쓰임을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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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실 [pureangel] 쪽지 캡슐

2000-02-17 ㅣ No.627

모든분들의 행복을 빌며 글을 시작합니다...                           

우선 이번 청년 피정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주아주 환상적이었습니다...음...정말 이 피정을 주신 주님과 모든분들께 작지만 이글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음.. 제가 작년 여름 방학때 학교에서 같이 study 하고 있는 교수님과 선배들과 봉사를 다녀왔습니다...그때 만난분에 대해 소개를 드리려고 합니다...전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그때 너무나 놀라운 경험들을 했었거든요...

이분은 지금 음성 꽃동네에서 평신도 수사로서의 삶을 살고 계신 분입니다...

이분께서는 말씀도 잘하지 못하시고 글은 물론 쓰지 못하시기 때문에 다른분께서 이분의 말씀을 잘 듣고..쓰신 글을 올리겠습니다...정말 이분을 보면 살아있는 성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주님의 일은 정말 놀랍고 무한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실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 곳은 충북 제천군 모산리이다. 우리 고향은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동네 가운데에는 크고 아름다운 저수지가 있고 그곳으로 흐르는 폭포수가 있기 때문에 각지의 많은 사람이 다녀가곤 했다. 내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너무 가난하여 아이를 낳고도 병원은 고사하고 기저귀 라나 없이 볏집을 깨끗이 씻어서 그위에서 아이를 낳곤 하였다.산파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심지어 남편이 산모를 도우기도 하였다.그렇게 가난하녀도 자식만 많이 낳으면 모든 사람이 기뻐하였으며, 그것도 복이라고 할정도였다.때문에 15살정도되면 결혼하였고 10명 이상씩 낳는 사람도 많았지만 가난하였기 때문에 미역국도 못먹었지만 산모나 신생아의 건강에는 별무리가 없었다.하지만 예방접종도 제대로 못하는때라 병을 앓고 죽는 경우도 많았다.우리 부모들도 무척 가난하여 집에서 날낳으셨다..나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부모님뿐 아니라 친척들,이웃분들이 아들을 낳았다고 축하해주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뿐이고 태어난지 7일만에 경끼(일종의 소아마비)를 만나 밤낮으로 울면서 부모를 괴롭혔고 죽었다 깨어나기를 수없이 하곤 했다.아들이 태어났다고 기뻐하던만큼 실망도 컸고 또 어더ㅎ게 해서든지 낫게 하려고 한약 양약등 없는 살림에 모든 수를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귀엽게 키웠겠지만 그때 부모님은 아무런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내가 죽었으면 하는 바램까지 생겼다고 한다.여하튼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걷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누나가 날 업어 키웠으니 부모님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태어났고 남동생은 그후에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나를 자식같이 생각하지 않으셨고 오직 동생들만 끔찍히 위하셨으나 어머니만큼은 날 무척 .위해 주셨다.하지만 어머니께서는 35살의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돌아가셨고 더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전에 16살된 누나가 결혼하였기 때문에 집에는 날 아껴주는 사람이 없었고 구박만 더 심해졌다.밥을 먹어도 나는 동생들과 같이 못먹고 한쪽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먹곤 했다.아침에서 점심밥까지 하여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두곤 하였는데 어찌나 배가 고픈지 아버지 일나가시면 조금씩 훔쳐먹곤 했지만 아버지한테 들켜 밥만 먹는다고 야단을 치고 때리고 하셨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이웃집 잔치나 초상집에 형제들을 데리고 가셨고 그때만큼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못가실때는 맛잇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장롱 속에 감추고 동생들에게만 주고 나에게는 주지도 않았다. 그리곤 나보고 매일 나가 죽으라는등..구박하여 괴롭혔고 죽었다 깨어나기를 수없이 하였다. 아들이 태어났다고 기뻐하던 만큼 실망도 컸고 또 어떻게 하든 낫게 하려고 그때 당시 남의 소를 2년동안 키워주면 그 소가 낳은 송아지는 자기 갖고 어미 소는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관습이 있었다. 나는 동네 부잣집에서 빌려온 소를 열심히 키웠고 그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하루는 아버지가 그 송아지를 팔아 다른 동생에게 선물을 사주시고 정작 소를 키운 나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 너무 화가 나서 막 울었더니 나중에는 양복 한벌을 사주셨다. 그것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처럼 나한테는 심하게 대하였지만 동생들에겐 좋은 아버지였고 또 무척 부지런하여 그동안 진 빚을 다갚고 두동생을 데리고 읍으로 이사를 갔고 나는 누나집으로 갔다. 매형은 무척 가난하였지만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카들을 돌보는 일밖엔 할 수가 없었다. 누나는 나한테 아이를 맡겨 놓고 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캐다가 팔아 가정을 이끌고 있었다. 하루는 매형이 어디서 옴에 걸려 집에 돌아왔다. 그때문에 온 식구가 옴에 걸려 무척 고생하였지만 얼마 뒤 모두 나았다. 하지만 나만은 그병이 낫지 않고 3년을 앓았다. 그것이 그당시엔 몰랐지만 하느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후로 누나와 매형이 나 때문에 무척 다투었고 그래서 나는 그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하였고 그때가 16살 늦가을이었다. 나는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머리부ㅌ터 발끝까지 온 몸이 진물투성이었고 어디를 가도 날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때는 모두 날 외면하였고 아버지마저 날 버렸다. 하루는 이웃이 너무 측은하였던지 들어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여 찬밥을 먹고 있는데 옷 속에서 이가 기어나와 집주인이 볼까봐 옷 속으로 집어넣고 또 기어나오면 집어넣곤 했다. 내가 태어난 동네에서 얻어먹고 다녔지만 그때는 부끄러운 것도 몰랐고 창피한 것도 몰랐고 가장 큰 소원은 오직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데서 잠 자는 것이었다. 이웃에서도 밥은 주어도 병과 이가 옮을까봐 잠을 재워주지 않아 남의 집 아궁이나 짚을 쌓아두던 곳에서 쪼그리고 자곤 했다. 그러한 고생을 하다보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밥만 얻어먹고 다니던 나는 동냥을 하기 시작했고 돈을 조금 모으면 그때 당시는 날 버렸지만 그래도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아버지 생각에 그 돈을 모두 아버지에게 보내주었다. 그 뒤로 해방 되었고 곧 6.25 사변이 터져 남동생은 전쟁에 나가 전사하였고 여동생은 피난길에 폭격에 죽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암에 걸려 남의 집에 방을 하나 빌려 앓고 계셨고 나는 서울에서 동냥을 하여 그돈으로 고향에다 집을 지어 아버지를 그집에 모셔 왔으나 곧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는 비로소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셨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셨으며 그리고 제천 성당 신부님께 영세를 받고 종부성사를 받았다. 돌아가신 후 내 손으로 장례를 치렀고 그후로 누나 가족이 그 집에 와서 살았고 나는 또 돈을 벌러 거리로 나와 영세를 받았다. 이때부터 나의 신앙이 시작 되었던 것이다. 살아계셨을때 효도 한번 못하고 건강한 몸을 갖지 못한 못난 자식이라 지금까지도 한이 맺혀 있는 것이다. 그때문에 지금도 산소에 찾아가 벌초도 하곤 하지만 또 사람을 시켜 묘지 관리도 하곤 하지만 그것으로 이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 또 돌아가신 분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직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건 미사봉헌과 기도 밖에는 없다. 제천에서 동냥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서 동냥생활을 하다가 아는 성당이라곤 명동성당밖에 모르니 거기로 미사를 보러갔다. 그것이 명동 성당에서 생활하게된 동기이다. 깡통을 들고 다 떨어진 옷을 입은 거지가 한국의 젤 큰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하려니 무척 떨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신자의 도리인 주일미사를 어길 수가 없어서 용기를 내어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미사에 참석했으나 영성체가 문제였다. 다들 성체 모시러 가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주님을 모시고 싶은 욕망에 주님만 믿고 성체를 모시러 나갔으나 아니나 다를까... 모든 신자들이 왠 거지가 감히 성체를 모시러 나오느냐며 나를 밖으로 끌고 나오려 하였다. 그러나 주님을 모시고 싶은 욕망에 주님을 갈망하는 목마름에 교우들에게 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예 명동성당 마당이나 문화관에서 잠을 자며 한달 가까이 교우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새벽미사에 참석하여 성체를 모시려고 하였고 교우들은 나를 끄집어내려고 하곤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큰 힘이라도 주님께 향하는 나의 마음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번번이 교우들은 나한테 지곤 했던 것이다. 그러한 싸움이 한달가량 되었을때... 그때부터 교우들은 나를 신자로 인정하기 시작하였고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명동성당에서 계속 지내게 되었고 신부님들과 모든 신자들이 나를 알게 되었다.

그 뒤 나의 생활은 낮에는 거리로 동냥하러 다니고 밤에는 성당안 문화원 바닥이나 처마밑 또는 종탑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우들도 나를 멀리하였지만 그때부턴 나에게 먹을것을 갖다주고 입을 옷도 갖다주며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여르메 동냥으로 번 돈을 가지고 겨울에는 집에 내려가 생활하였다.. 서울서 번 돈으로 소를 사서 키우고 그 소를 팔아 땅도 사고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면 다시 서울로 올라와 명동성당에서 지내곤 하였다. 겨울엔 제천에는 성당이 하나밖에 없는데 집에서 십리길을 넘어 미사에 참석하려면 무척 힘들었다. 더구나 길이 험해 새벽미사에 가려면 새벽 2시나 2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하루는 시골에서 조카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누나집이 무척 가난하다보니 먹고 살기가 힘들고 그래서 나한테 취직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하지만 배운것도 없고 기술도 없어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시키려고 하는데 그때는 안내양이 되려면 한달은 학원에서 배워야 했다. 동냥한 돈으로 공부시키며 밥 먹이곤 하였고 학원 수료후 안내양으로 취직 되었으나 생활은 나하고 같이 했다. 그후로 그집을 비우라고 하여 다시 오갈데가 없는 신세가 되자 주임 신부님께 말씀 드렸더니 성당 뒤편에 판자로 된집을 지어 주셨고 그곳에서 3년을 살았으며 그 뒤로 그곳에서 살다가 84년에 교화님이 오신다고 해서 성당주변을 정리하는 바람에 꽃동네로 오게 된것이다...

나한테 가장 큰 기도는 미사이다. 아무리 하루종일 기도한다 하여도 나한테는 미사 한번만 못하다. 미사는 가장 큰 성사이고 사랑의 성사이며 온 인류를 기원하는 생명의 양식인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아무리 큰 제사를 지내도 구원받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피흘림 이후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이다. 그것이 미사이고 미사가 없다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미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미사 그자체는 니의 생명이고 나의 생활이고 니의 양식인 것이다. 나의 생활은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가 새옷을 갖다주면 나는 그옷을 도저히 입지 못하고 남을 주어야만 했고 돈을 벌어도 나를 위해 쓰지 못했다. 그리고 좋은 음식이 들어와도 나는 내가 먹기 보다는 남이 먹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새 옷과 헌 옷이 있는데 헌 옷을 내가 입지 않으면 그 옷을 입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맛없는 것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을 먹을 사람이 없고 결국에는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반면에 받는 사람은 좋은 것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기분이 상하는 것이 본능인 것이다. 결국 좋지 못한것은 내가 가져야 되고 좋은 것은 남을 위해 써야만 나의 마음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아놓은 재산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재물은 다없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재물을 얻었다. 친구가 많아진 것이다. 나를 아끼고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가 무척 많아진 것이다. 친구 하나하나는 수억만금을 준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하늘의 보화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때 하느님 모양대로 만드셨다. 하지만 육체는 영혼의 지배를 받고 영혼을 위한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씩 착각을 한다. 살아서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인줄 알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영혼을 살찌우기 보다 육체를 살찌운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재산 그 많은 풍요로움은 하늘 나라에 갈때 다 소용없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은 지고 가야할 짐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육신은 영혼을 위해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영혼을 위하여 지고 가야할 짐을 덜기 위하여 우리는 일해야 한다. 살아서 행복과 불행은 끝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큰 불행과 행복이라도 죽으면 끝이다. 하지만 죽음은 곧 영혼 생활의 시작이며 그것은 살아있을때 느끼는 행복과 불행처럼 그 끝이 있는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재산이 아무리 많다한들 그것은 자기것이 아니다. 금은 보화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 하여도 죽으면 자기것이 될 수 없다. 살아서 모아놓은 재물은 영원히 자기것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주님께 그만큼 빚을 진것이다. 그 재물은 주님께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고해성사때 우리는 지은 죄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성사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의 물건을 훔쳤으면 우선 돌려주고 또 남과 다투었을때는 우선 화해하고 그 후에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고 보석을 하여야만 죄의 사함을 받는다. 그 일이 죄인지 알면서도 죄를 짓고 또 부끄럽다고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더욱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것이다. 여러분도 살아계실때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죽을때까지 감사기도를 해야되고 그래도 주님께 빚을 다갚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이제껏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주님의 보살핌이 없다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죽을때까지 감사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제일 감사하는 것은 이 고통을 주신 것에 대해서이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몸으로 태어났다면 나도 수없이 많은 죄를 지었을것이다. 난 이런 고통 덕분에 죄도 덜 짓고 또 십자가 고통도 조금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것 같다.. 봉사자들이 아무리 밖에서 땀흘려 고생한다 해도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는 환자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건강한 몸을 갖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은총을 받은 것이고, 그만큼 주님께 빚을 진것이다. 또 아무리 큰 고통을 받고 죽어도 그 고통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지 못하고 악으로 받는다면 더욱더 큰 죄이다.

주님의 가장 큰 선물은 고통이다. 고통을 받음으로써 주님께 받은 빚을 덜 수 있는 것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그 선물을 감사하게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던져 버린다면 그것만치 큰 죄가 어디 있겠는가? 항상 주님께 감사하라.

+ 기도

보잘것 없는 이 죄인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 형제 자매들, 또 멀리서 찾아온 친척, 친구들께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때문에 고생하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계속하여 감사의 기도를 할 것이며 여기 모인 모든 분들과 우리 꽃동네 가족을 위해 그날까지 기도할 것이며 내가 여러분들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나의 생활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더욱 사랑하시어 여러분들 마음마음마다 주님의 사랑이 충만할 수 있는 은총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중에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다른 사람의 영혼 구제를 위한 기도를 드릴때이다.) ~ 1986년 9월 24 수요일, 나의 60회 생일을 맞이하여-배베드로

 

좀 길죠?!..........중간에 조금씩 자르긴 했는데...

정말 그 눈빛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전 세상에서 그런 눈빛을 처음봤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눈빛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이글을 그때 제가 읽었었는데 눈밑으로 물방울이 흐르더라구요...근데 제 목소리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 몸을 빌리신 주님의 목소리 같았지요...정말 전 죽는날까지 그분의 모습과..특히 그 눈을 못잊을거 같습니다... 또 그분을 통해 전 너무나 많은것을 배웠구요!! -음..이번 피정에서 전 그때 그분을 만났을때와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이번 피정이 얼마나 좋았는지 감 잡으시겠죠?~^^*

+정말 이런분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시고 이글을 올리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이글을 읽으시는분들께도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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