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내가 만든 이쁜 메주와 농촌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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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11-14 ㅣ No.5108

우리농 메주쑤기 행사는 추수가 끝나 볏짚이 깔려 있는 메산리의 논위에서,

 

한 해의 수확에 감사를 올리는 말씀의 전례로 시작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한 자리에 둥글게 모여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 순수한 마음으로 농부이신 예수님을 함께 모시고, 기도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세상의 많은 유혹들에도 굴하지 않으며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려는 촛불과 같은 작은 힘을 지닌 사람들의 얼굴은 소박하고도 진실해 보였다.

 

땅을 딛고선 우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생명을 살리는 땅의 소중함과 도시 소비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농부님들의 수고로움을 새길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어린 날 집안의 큰 행사 중의 하나였던 메주를 쑤는 날이면 의레 부뚜막에 둘러 앉아 삶은 콩을 배가 터져라 먹어대다가 설사를 하곤 하던 기억이 가물거려왔다.

 

그 기억을 되살리며 삶은 콩을 몇 개 집어 먹어보았지만, 도시의 입맛에 길들여져 버린 혀가 그 맛을 잃어버린 듯 해서 못내 씁쓸해졌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삶아 놓은 콩을, 조별로 분담하여 갈고, 메주틀에 붓고 다져서 메주를 찍어내는 일이 생각하기 보다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콩으로부터 메주를 만들어내는 데 흘린 작은 땀방울들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던 먹거리들에 대한 소중함과, 그 안에 깃들인 수고로운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흔히들 못생긴 사람을 메주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정성을 들여 다져놓은 메주 하나 하나가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적당히 굳은 상태에서 볏짚으로 묶고 메달아서 바람과 햇빛이 풍부한 자연 속에서 건조된 후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땀흘린 노동 후의 가을 들녘에서,

 

그 곳 마을 사람들이 준비해 주신 돼지 고기와 도토리묵 배추쌈 그리고 막걸리와 두부를 먹으며 풍물패들이 들려주는 사물놀이 장단에 흥을 돋구었다.

 

그러나 결실과 수확의 들녘에 울려퍼지던 꽹과리 장단이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돌던 이유는 그 곳에서 삶을 지탱하시는 분들의 아픔때문이었을까?

 

13년전 가난한 교회를 꿈꾸며 가방하나 달랑 메고 귀농하셨다는 정마리아 자매님이

 

기름기 하나 없는 얼굴로, 팍팍해져만 가는 농촌 인심을 송구스러워하던 모습과,

 

어느 농부님의 기도문이 꽹과리 소리위에 얹혀져서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

 

 

 

 

" 주님, 오늘 농촌의 현실은 속빈 강정과도 같습니다.

 

한 해 동안 힘겹게 일한 수고비는커녕 빚만 늘어가는 지경에다 판로까지 걱정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저희 농부들과 함께 하시어 살아갈 힘을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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