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봄비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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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2-04-07 ㅣ No.2292

 

 



          봄비 속을 걷다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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