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사순의 말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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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승 [stpeter] 쪽지 캡슐

2000-04-10 ㅣ No.4189

오늘 복음의 묵상이 참 감명이 깊어 옮겨 봅니다.  시가 특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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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께서 올리브산으로 가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요한 8,1­11)

 

●사순시기가 되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윤리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반성하고 앞으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그 효과가 보잘것없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결심한 대로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 모멸감에 빠져들면서 낙담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고 있습니다. 허나 단죄하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그 여인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여인을 예수님께서 감싸안으십니다. 이처럼 어느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기 싫고 꼴도 보기 싫을 그때 그런 나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품어 안고 격려해 주고 다시금 일어나 걸어갈 힘과 용기를 주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를 분별하여 올바르고 좋은 것만으로써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려고 애씁니다. 또한 그런 모습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인간의 생각일 뿐 절대적 진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따뜻한 눈과 가슴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우리가 취해야 할 길입니다.

 

미츠하라 유리라는 일본 시인은 ‘하얀 길’이란 시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헤매이다

마침내 바른길 찾아오면

길은 아무 말 하지 않아

 

칭찬도 나무람도

짐 될까 저어하여

'돌아왔니’ 한마디조차

 

다만

지금부터 걸어갈 길

오롯이 하얗게 가리킬 뿐

 

걸어온 길보담

지금부터 걸어갈 길이

늘 중요하니까

 

야곱의 우물 4월호 매일 성서 묵상 발췌 - 유시찬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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