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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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림 [yelimi] 쪽지 캡슐

1999-08-19 ㅣ No.489

안녕하세요?

성서연수를 다녀와서 첨으로 글을 올립니다.

제가 연수가서 또 돌아와서 느낀것을 조금이나마 나눠보고자...*^^*

 

우린 많이들 생활과 신앙을 분리해서 살고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생활은 비 그리스도 인들과 똑같이 하고 나의 신앙은 주일 날 미사시간에만 지키고...

그러면 안된다고들 말은 하지만 잘 깨닫지는 못하죠.

그리고 솔직히 어떻게 통합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구요.

저는 연수를가서 아! 내가 그런 삶을 살았구나. 그래서 항상 뭔가 허전함을 느꼈구나..

라고는 깨달았지만 ’어떻게?’ 라는 질문의 답은 못찾고 연수에서 돌아 왔어요.

그러다가 제가 좋아하는 신해철의’일상으로의 초대를’ 흥얼거리다가

이 노래가 참 제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다르다면 문득 떠오르긴 하지만 전 아직 느끼질 못한다는것 빼고는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청년 성서모임 홈페이지에서 노래 제목과 참 비슷한 제목을 봤어요.

그래서 여기 가져와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느님을 여러분의 일상으로 초대하는데 도움이 될까해서요.

 

***일상에서의 하느님과의 만남***

   

"성프란치스코의 작은 꽃송이"에 의하면 마세오 수사

에게는 "우,우,우"하고 "우"라는 모음을 계속해서

발음하는 것이 기도였고, 또 베르나르도 수사에게는

뒷동산을 한바퀴 빙 돌며 뛰는 일이 기도였다.

 

우리는 동작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눈길로, 미소로,

한숨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다.

하다못해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하늘을 쳐다보거나

물 한모금을 마시는 것까지도 기도가 될 수 있다.

목마른 육신이 물 한모금을 마실때 우리의 육신은

생리적으로 완전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우리가 시원한 강물에서

수영을 즐길때 우리의 살갗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의 찬미기도(이런 종류의 기도는 무의식적인

것이고, 비이성적이며 때로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를 드린다.

 

사람이 하느님의 존재를 일상생활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의 매일매일의 경험은 모두 밖에서

오는 것인데 반해, 이러한 체험은 내부로부터 온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밖을 향해 있고, 외적인 감각에

의존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우리 내부에서 나오는 손

길을 느끼게 되고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걸 때는

어떤 실제의 목소리로 말씀을 하실 것이라는, 또한

그분은 우리의 귀를 통해 우리들 속으로 들어오실 것

이라는 환상을 갖고 일을 한다.

우리 내부의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분에 속한 존재임을, 우리의 진정한 실체는

이 다른 분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들 자신을 만난 우리의 가장 깊은 내부 존재에

우리의 닻을 내리는 일은 그 다른 분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일임을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포옹의 순간을 늘 추구하고 있지만

이런 노력은 외부를 향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불

분명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내부에서 부르는 그 다정한 분의

거절할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가 밖에서 오는 것으로 믿고 있다.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단지 우리는 우리 내부의 침묵속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에르네스또 까르데날 신부님의

                   <침묵속에 떠오르는 소리>중

 

"이제는 우리 자신의 하느님을

일상으로 초대해 보는것이 어떨까요?*^^*"

                                                                                -예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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