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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전통적 해석 외 #<가사순5주토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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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6 ㅣ No.150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요한복음 11장 48절의 카야파의 "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거룩한곳과 우리민족을 짓밟고 말것이요"

하고 말한 배경설명부탁드립니다....수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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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게시자 주이 글에서는, 교리적으로도 상당히 유의미한 위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고자, 신뢰할 수 있는 자료들을 들여다 보며, 기원후 4세기 이후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수용해온, 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기원후 347-407년)의 주석/해석과 이 해석을 따르는 다른 주석자들의 해석들을 찾아 내어 연대 순으로 나열해 드리고 있습니다.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요한 복음서 11,48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요한 11,45-56)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주신 질문에 대한 고찰을 위한 최소한도의 문맥은 요한 복음서 11,45-56이며, 특히 이 부분의 경우에 있어 좀 더 나은 내용 이해를 위하여, 바로 직전 단락인 가해 사순 제5주일 복음 말씀(요한 11,1-45)을 또한 함께 고찰하여야 할 것입니다. 

 

게시자 주 1: 이 글에서는, 요한 복음서 11,48의 세속적 배경(아래의 제2항)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유다주의자들의 잘못된 신학적 명분/주장의 배경(아래의 제3항)을 또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우선적으로, "주석 성경" 에는 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주석이 전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다음와 같은 주석이, 위의 질문과 관련하여, 200주년기념 신약성서 주해서에 주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해당 성경 구절에 대한 전통적 해석 시에 사용되는 용어들 이외의 "민중운동"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그리하여 그 결과 독자들에게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연상하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기에, 상당히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예수의 활동을 저지하지 않으면 민중운동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민족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알기로, "새 번역 성경" 본문 어디에도 "민중운동"이라는 표현은 없으며, 그리고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민중운동"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처음 등장하였던 "해방신학"을 지지하는 혹은 추종하는, 소위 말하는 "수정주의자들(Revisionists)"이 자신들의 신학적/철학적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사용해온 용어들 중의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 11,48은 "계급투쟁"을 부추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민중운동"이라는 신조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하게 잘 설명되고 또 이해될 수 있으므로, 바로 위에 괄호 [] 안에 주어진 주석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어지는 글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제2항에서는 요한 복음서 11,48의 배경 설명, 즉 세속적 배경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전통적 가톨릭 해설/주석들을 연대순으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1.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 의하여 편집되어 마련된 Catena Aurea (Golden chains) 요한 복음서 중의 제11장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dhspriory.org/thomas/english/CAJohn.htm#11

 

2-2.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요한 복음서 해설에서, 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해설은 다음의 주소의 제1571항에 있습니다.

 

출처: http://dhspriory.org/thomas/english/John11.htm

(발췌 시작)

1571 Secondly, he mentions their ambition for temporal possessions when he says, and the Romans will come and destroy both our place and our nation. This seems to follow from the other, as Augustine says, for if all believed in Christ, there would be no one left to defend the temple of God against the Romans, because they would have abandoned the holy temple and the laws of their fathers, as they thought the teaching of Christ was directed against these.[37] But this does not really seem to have much bearing on the issue, since they would still be subject to the Romans and would not be planning to war against them. Thus, it seems better to say, with Chrysostom, that they said this because they observed that Christ was being honored by the people as a king.[38](*) And because the Romans had ordered that no one could be king unless they had appointed him, they were afraid that if the Romans heard that they were regarding Christ as a king, they would look upon the Jews as rebels. Then they would move against them and destroy their city and nation: "Every one who makes himself a king sets himself against Caesar"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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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의 강론은 다음에 있다:
http://www.newadvent.org/fathers/240164.htm

 

그리고, 게시자의 바쁜 일정 관계로 언제쯤에 위의 발췌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을 시작할지 미정인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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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2: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요한 복음서 11,48의 세속적 배경을 대단히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며, 이 글의 처음에 제시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생각입니다.

 

2-3. The Great Biblical Commentary of Cornelius a Lapide 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해설은 다음에 있습니다:

출처: http://www.corneliusbiblecommentary.faithweb.com/11john.htm

(발췌시작)

Ver. 48. If we let Him thus alone, &c. i.e., the Romans will destroy Judea and the whole Jewish race. S. Chrysostom and Theophylact by place understand Jerusalem, the metropolis of Judea, and thence the whole realm. But Maldonatus understands the Temple; for the chief priests feared that this with its victims and temporal gains should be taken from them by the Romans.

All will believe on Him.
See here the genius of envy, and an effect worthy of it: the chief priests wishing to obscure the glory of Christ, display it the more, in saying that all men will believe on Him.

And the Romans shall come and take away our place and nation. Some are of opinion that they thought this, viz., If all believe on Jesus, all will depart from us, our Judaism, synagogue, and state, to Him; and so there will be none to contend for us against the Roman attempts to subjugate us.


But others more probably, If all believe Jesus to be the King and Messiah of the Jews, they will irritate against us the Romans, the lords of Judea, because we have made for ourselves a new King and Messiah, and fallen away from Tiberius Cæsar to Him; wherefore armed men will come and take away, that is, capture, ravage, and destroy Jerusalem and Judea and the entire Jewish race and nation. So Chrysostom. “They wished,” he says, “to excite the people, so as to bring Him under the risk of being suspected to be a pretender to royalty; i.e., if the Romans shall see Jesus heading throngs of people, they will suspect a pretender, and destroy the state. But what armed men and horsemen did Christ ever take about with Him? Only envy and hate blinded them, so that they plainly erred, and reasoned wrongly.”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3: 따라서, 이 주석서 또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의 해설을 따르고 있으며, 바로 위의 제2-2항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 의하여 주어진 설명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4.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주석은 다음에 있습니다: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104.html

(발췌 시작) 

Ver. 48. The Romans will come upon us, in case he be admitted as our great Messias, and our King. (Witham)

 

제48절. 그가 우리의 위대한 메시아로 그리고 우리의 왕으로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 우리에게 로마인들이 올 것입니다 (Witham).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4: 매우 간략하게 주어진 주석인데, 여전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주석을 따르고 있는, 위의 제2-2항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주석을, 그리고, 위의 제2-3항에 있는, Cornelius a Lapide의 주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5. NAB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11,48에 대한 주석은 다음에 있는데,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john/john11.htm
(발췌 시작)
[48] The Romans will come: Johannine irony; this is precisely what happened after Jesus' death.

 

[48] 로마인들이 올 것입니다: 요한 복음의 아이러니(Johannie irony)이며,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정확하게 예수님의 죽음 후에 발생하였던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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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기원후 70년에 발생하였던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대성전의 파괴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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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바로 위의 제2항에서는 요한 복음서 11,48의 세속적 배경 설명에 대하여 고찰하였습니다. 이번 항에서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유다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의회(산헤드린, 최고의회)"의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잘못된, 그 당시의 유다주의자들의 신학적 명분/주장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96항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일부 문장에 대하여 굵게 표시하고 색칠을 한 것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57803&path=110610121307&page=256

(발췌 시작)
596 예수님을 대하는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424)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회당에서 내쫓기로 이미 합의했다. 425)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 (요한 11,48)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카야파 대사제는 이렇게 예언으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11,49-50).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하느님을 모독한 자로서 “죽을죄를 지었다.” 고 426)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었으므로 427) 예수님을 정치적 반역자로 고발하여 로마인들에게 넘겨주었다. 428)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반란과 살인”(루카 23,19)으로 고발된 바라빠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셨다. 대사제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라고 정치적으로 위협하였다.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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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요한 9,16; 10,19 참조.
425. 요한 9,22 참조.
426. 마태 26,66 참조.
427. 요한 18,31 참조.
428. 루카 23,2 참조.
429. 요한 19,12.15.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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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3-2. 그리고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48항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인데,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96항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바의 성경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일부 문장에 대하여 굵게 표시하고 색칠을 한 것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57803&path=110610121307&page=236

(발췌 시작)
548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들은 성부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명한다. 290) 이 표징들은 예수님을 믿도록 권유한다. 291) 그분께서는 그분을 믿고 청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청하는 것을 주신다. 292) 그러므로 기적들은 성부의 일을 수행하시는 분에 대한 신앙을 굳건하게 한다. 기적들은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언한다. 293)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걸려 넘어지는 294)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적은 호기심이나 마술적인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한 것들이 아니다. 그렇게 분명한 기적들을 보여 주셨음에도,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으며 295) 심지어 마귀의 힘을 빌려 행동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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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요한 5,36; 10,25 참조.
291. 요한 10,38 참조.
292. 마르 5,25-34; 10,52 등 참조.
293. 요한 10,31-38 참조.
294. 마태 11,6 참조.
295. 요한 11,47-48 참조.
296. 마르 3,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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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4. 
끝으로, 가해 사순 제5주일 복음 말씀(요한 11,1-45) 및 매년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요한 11,45-56)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은 다음에 있습니다. 바로 위의 제3-2항제3-1항에 전달해 드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들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라자로를 소생시킨 결과들에 대하여 대단히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lent_5_sat.htm <----- 필독 권고

 

특히, 요한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에 의하여 요한 복음서 11,51-52에 그리스도교 신학적 중대한 의미가 주어져 있는, 그러나 자신이 무슨 내용의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언을 하였던그해의 대사제였던 카야파(*)의 발언(요한 복음서 11,49-50), 그리고 이 발언에 따른 결정(요한 복음서 11,52; 11,57)들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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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무슨 이유로 대사제인 카야파가 단순히 대사제로 불리는 대신에,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로 불리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위의 제2-2에 제시해 드린 출처의 제1573항제1574항을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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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3시간 (자료 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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